반년 기다려야 살 수 있다…'덕수궁 위스키 잔' 완판의 이유 [비크닉]

박이담 2024. 2. 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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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재재단이 내놓은 덕수궁 굿즈인 오얏꽃 오일램프와 위스키 잔. 한국문화재재단.

“상품이 전량 소진됐습니다. 올해 9월 추가 제작이 완료됩니다.”

반년은 더 기다려야 살 수 있는 이 상품, 판매 시작과 동시에 완판되는 유명 케이팝(K-POP) 아이돌의 굿즈가 아닙니다. 바로 덕수궁 굿즈 중 하나인 ‘덕수궁 위스키 잔’이에요. 대한제국 황실의 상징인 오얏꽃 문양이 새겨진 이 굿즈는 젊은 층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출시 사흘 만에 300개가 모두 품절됐습니다. 기존에 없는 제품을 선호하는 젊은 층이 최근 전통문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데다 위스키 열풍까지 겹치면서 인기가 급상승 중입니다. 하지만 이런 관심이 위스키 잔에만 몰린 건 아니에요. 오일 램프 등 다른 덕수궁 굿즈도 모두 동이 난 건 마찬가지랍니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이 내놓은 굿즈인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박이담 기자.


사실 박물관 굿즈에 대한 열기는 이미 수년 전부터 감지돼왔어요. 지난 2020년 출시된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는 지금까지 약 3만2000여개가 팔렸습니다. 국보 제83호인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국보 제83호)을 작은 크기로 만들고 다양한 색상을 입힌 제품인데, 특히 방탄소년단(BTS)의 RM이 구매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더욱 인기를 끌었죠.

오늘 비크닉에선 젊은층의 마음을 사로잡은 전통문화 굿즈에 관해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이런 굿즈를 어떻게 만들고, 어떻게 품절 대란을 일으킬 정도로 성공시켰는지도요. 그래서 두 사람을 만나봤어요. 박물관 굿즈를 기획한 김미경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상품기획팀장과 고궁 굿즈를 만든 진나라 한국문화재재단 문화상품실장이 그 주인공입니다.


의미에 쓸모까지 담다


‘일상에서 쓸 수 있는 상품을 만들자.’

국내 유명 식품기업에서 마케터로 일하던 김미경 팀장은 2016년 새로운 도전에 나섭니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의 상품기획실로 자리를 옮기죠. 당시 국립박물관에서 만들던 상품은 기념품 수준이었습니다. 유물이 새겨진 공책과 연필이나 지우개가 대부분이었고, 수학여행 오는 학생이 타깃이었죠.

김미경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상품기획팀장.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이왕 만드는 거 생활 속에서 유용한 걸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소품으로 많이 찾는 핸드폰 케이스, 에어팟 케이스, 가방, 스카프 등을 내놓으니 젊은 세대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하더라고요. 필요한 물건인데 의미까지 있으니까요’’

여기에 대표적인 예는 금동대향로 미니어처예요. 백제 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를 단순히 복제하는 데서 나아가 일상생활에서도 사용할 수 있도록 본래 향로의 기능을 살렸어요. 뚜껑을 열어 인센스나 모기향을 꼽거나 사탕 등을 보관할 수 있게 만든 거죠. 색상도 7가지로 다양하게 만들어서 각자 상황에 맞게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할 수도 있어요.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이 내놓은 얼굴무늬 수막새 양우산 제품.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이 밖에도 ‘신라의 미소’로 불리는 얼굴무늬 수막새가 새겨진 우산, 장수를 기원하는 십장생도가 새겨진 수건 등 일상에 유물의 아름다움을 더한 제품들을 개발했죠. 지난해엔 스마트폰 액세서리 브랜드인 케이스티파이와 협업해 반가사유상, 인왕제색도, 산수화훼도가 새겨진 스마트폰 케이스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결과는 성공적이에요. 지난해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이 다루는 굿즈 가운데 생활소품이 39.3%를 차지했어요. 2019년 24.7%에서 크게 늘었죠. 반면 문구·사무류는 29.1%에서 22.4%로 감소 추세입니다.

“평소에 쓰는 익숙한 제품들인데 유물로 디자인되면 신선하죠. 10대 딸이 말하길 친구들도 인스타그램에서 박물관 굿즈를 보면 예뻐서 사고 싶어한대요. 이런 젊은 층이 온라인에서 더욱 소문을 내고 홍보해주는 거 같아요. 갑자기 온라인몰 방문자가 늘어날 때가 있거든요. 유입경로를 추적해보면 젊은 층들이 모인 온라인커뮤니티에서 박물관 굿즈를 인증하고 추천하는 게시글일 때가 많더라고요.”


왕실이 품은 감성을 굿즈로


경복궁이나 덕수궁 등 고궁에 가면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젊은 층이 많습니다. 사진을 찍으며 잠시 시공간을 초월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는 거죠. 이처럼 이색적인 공간으로도, 역사적 가치로도 특별한 고궁의 이야기를 담은 굿즈를 만드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한국문화재재단이에요. 박물관의 유물을 활용하는 국립박물관문화재단과는 다루는 소재가 다르죠.
진나라 한국문화재재단 상품기획실장. 한국문화재재단.

이곳의 상품 기획은 진나라 실장이 맡고 있습니다. 재단이 운영하던 ‘한국의집’에서 궁중다과 체험과 상품을 흥행시킨 뒤 문화상품 기획까지 담당하게 되었답니다.

“그동안 매출을 분석해보니까 굿즈를 살 때 가격이 고려 대상이 아니더라고요. 가령 덕수궁 굿즈 중 하나인 오일램프 가운데 가장 크고 비싼 게 제일 먼저 품절이 됐거든요. 덕수궁이 품은 감성을 더욱 잘 느낄 수만 있으면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죠.”

조선 임금의 곤룡포의 문양을 활용해 만든 컵들. 한국문화재재단.


궁의 콘텐트는 무궁무진하다고 해요. 조선왕조 500년 동안 왕실이 만들어낸 다양한 이야기와 상징이 넘쳐나기 때문이죠. 왕이 입던 곤룡포를 활용한 잔, 경복궁 근정전 단청으로 꾸민 스마트폰 액세서리뿐 아니라 무형문화재가 만든 작품을 굿즈로 만들기도 해요. 이형근 유기장 무형문화재가 방짜유기로 만든 티스푼과 포크가 대표적이죠.

“스토리텔링에 끝이 없는 곳이 바로 궁궐이에요. 가령 왕실의 화려함을 보여준다 치면 다양한 의상도 있지만 아름다운 꽃과 식물도 존재했거든요. 이런 꽃과 식물이 가진 향과 이야기도 상품을 만들어 하반기에 출시할 계획이에요.”


더현대와 동대문 시장 누비며 만든 굿즈


전통문화 굿즈를 제작하는 과정은 비슷합니다. 우선 굿즈로 만들 대상을 정해요. 유물이나 고궁에 담긴 매력적인 스토리를 발굴합니다. 이 단계에서 보통 반가사유상, 금동대향로, 청자, 백자 등 박물관을 대표하는 유물이나 덕수궁의 감성이 담긴 대한제국 오얏꽃 문양 등이 선정되는 거죠. 그리고 상품기획팀이 함께 모여 스토리와 어울릴 상품이 무엇일지 정합니다. 이때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팝업으로 유명한 더현대 서울이나 성수동도 자주 둘러보고 온다고 해요. 젊은 층이 어떤 상품을 좋아하는지 현장에서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죠.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이 국립중앙박물관 내 운영 중인 뮤지엄샵의 모습. 박이담 기자.

어떤 굿즈를 만들지 정하면 제작 업체를 찾아요. 우리나라 문화유산을 대표하는 상품이라는 특성상 최대한 국산 제품을 씁니다. 그러다 보니 적당한 제작 업체를 찾기 어렵거나 생산 단가가 높아지기 일쑤래요. 그래도 동대문시장 등 도매시장부터 제조공장까지 누비면서 좋은 소재,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런 조건 속에서 지금까지 수천종의 굿즈가 탄생했습니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은 누적 6000종, 현재는 1000종을 판매하고 있고요. 한국문화재재단도 굿즈 550여종을 팔고 있습니다.

성과도 눈에 띕니다. 두 재단 모두 지난해 굿즈 매출이 크게 늘었어요.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의 경우 149억원인데, 2022년(117억원)에 비해 27% 성장한 수치에요. 한국문화재재단의 매출도 110억원을 기록했습니다. 2022년(83억원)에 비해 32% 늘어났죠.

한국문화재재단이 고궁박물관 내 운영 중인 '사랑'에 진열된 굿즈 모습. 박이담 기자.


이같은 상승 곡선을 타고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은 ‘뮷즈’라는 말까지 만들었어요. 뮤지엄과 굿즈의 합성어죠. 2022년 국민 공모를 통해 박물관 굿즈 브랜드명으로 선정했습니다. 상표권 등록까지 합니다.


유물은 어렵지만 상품은 쉽다


두 기획자를 만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굿즈에 대한 자부심이었어요. 베스트 셀러를 만들어서가 아니라 유물이나 고궁의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있어서였죠. 굿즈를 사는 고객이 거기에 담긴 이야기를 하나둘씩 알아가면서 자연스레 박물관과 고궁에 애정을 갖게 되는 거죠. 요즘엔 굿즈를 사러 박물관과 고궁을 찾아오는 사람까지 생길 정도라니, 어려웠던 전통문화를 굿즈로 쉽게 즐기게 문화가 생긴 거예요.

또 굿즈의 인기가 상당하다 보니 상품기획자들의 위상도 달라졌다고 해요. 최근엔 국립박물관에서 새로운 전시를 기획할 때, 상품기획자부터 찾는다고 합니다. 굿즈가 전시 홍보의 큰 수단으로 떠오르면서 전시와 연계된 굿즈를 함께 기획하는 거죠.

무궁무진한 박물관의 유물과 고궁의 이야기 가운데, 두 기획자는 앞으로는 또 어떤 이야기를 담아 굿즈를 만들까요. 주말 나들이 겸 박물관이나 고궁을 찾는다면, 한번쯤 굿즈샵도 들러 보세요.

박이담 기자 park.id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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