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에서 천하 삼분한 유비의 '사∙자∙간∙지'…이낙연∙이준석은?

유성운 2024. 2. 2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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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안철수와 2024년 이낙연·이준석은 무엇이 다른가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 장면 [출처=예슝(葉雄) 화백]

“나는 본래 잡된 책을 보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삼국지(연의)』 같은 책도 한 번도 들여다본 적이 없다.”(『정조실록』 23년 5월 5일)
정조가 이처럼 『삼국지연의』(이하 『삼국지』)를 콕 찍어 말한 이유가 있다. 조선시대 『삼국지』는 불순한 책으로 찍혀 있었다. 유학자들은 인덕을 근본으로 천하를 다스리는 왕도(王道) 정치를 강조했는데, 이를 거스르는 내용이 많아서다. 권력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조조나 사마의 같은 인물들이 승리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군주나 성리학자들은 사대부들이 『삼국지』를 탐독하면 정치가 탁해질 것이라며 ‘『삼국지』 경계론’을 설파했다.
그럼에도 정조의 최측근 홍국영조차 정조와 자신의 관계를 “소열제(昭烈帝·유비) 와 제갈공명의 만남도 대수롭지 않을 것”이라고 비유할 정도로 『삼국지』는 널리 읽혔다. 인의예지(仁義禮智)가 먹히지 않는 현실정치에 『삼국지』만큼 다양한 시사점을 주는 텍스트가 없었기 때문이다.

총선과 함께 한국 정치계에 신당의 시즌이 돌아왔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금태섭 전 의원의 새로운선택을 시작으로, 이준석 대표의 개혁신당, 이낙연 전 총리의 새로운미래 등이 우후죽순 나타났다.

새로운미래 이낙연 공동대표,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 원칙과상식 조응천 의원, 새로운선택 금태섭 공동대표 등이 2월 9일 오전 서울 용산역에서 설 귀성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삼국지』에도 신당 관련 시사점을 얻을 수 있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특히 정치적 자본이 무(無)에 가까웠던 유비가 조직을 만들어 나중엔 천하를 삼분한 과정은 신당 세력에게 이상적인 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유비의 성공과정을 통해 신당의 성공 요건 4가지를 구성해봤다.

①사람: 정치 자본이 부족했던 유비가 가장 먼저 확보한 것은 ‘사람’이다. 그는 의형제 관우, 장비 같은 장수뿐 아니라 제갈량, 방통 등 명사들을 확보해 세력을 확장했다.
또 하나, 『삼국지』는 하후돈, 장료 같은 무장들의 전투를 강조하고 이들에게 무게를 뒀지만, 실제 역사에서 삼국시대 주역은 사마의나 진등처럼 책사로 묘사된 명사들이었다. 명사는 가문과 지식을 배경으로 문화 자본을 갖춘 유명 인사들이다. 이 시기는 명사의 유무가 세력을 가늠하는 기준이었고, 유비도 서서, 제갈량 등 형주 지역의 명사들을 확보함으로써 세력화에 속도를 낼 수 있었다.

②자금: 정치에는 돈이 든다. 국회의원 선거를 한 번 하는데도 수 억원의 돈이 든다는 것은 ‘상식’이다. 하물며 창당 작업은 말할 나위도 없다. 제3세력의 성공 사례인 통일국민당이나 국민의당은 각각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과 안철수 의원처럼 천문학적 재산을 가진 인사들이 창당을 주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즉, 든든한 '돈줄'이 있었다.
유비는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돗자리를 짜고 짚신을 팔아 연명했다. 정적들에게 ‘짚신 장수’라는 경멸적인 호칭으로 불렸던 그였다. 하지만 서주 지역의 재벌인 미축의 누이동생(미부인)과 결혼하면서 그 재력을 기반으로 비로소 군웅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1992년 대선에서 통일국민당 후보로 나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중앙포토

③간판: 유비는 후한 말기 많은 의병장 중 한 명에 불과했다. 황건적의 난에서 공을 세워 벼슬을 얻고도 한동안 주요 군벌인 공손찬과 원소에 몸을 의탁하는 신세였다. 하지만 천하의 절반을 움켜쥔 조조에 대항하고, 원소가 죽은 뒤엔 반(反) 조조 세력의 구심점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사람과 자본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여기에 한나라 황실의 후손이라는 상징자본까지 결합하자 ‘미래 권력’을 만들 수 있는 대안 세력으로 인정받았다. 촉한 정권에서 유비의 존재감은 절대적이었다. 『삼국지』
「제갈량전」

에는 “다들 촉에 오로지 유비만 있다고 여겼다”는 기록이 나온다. 유비가 사망한 직후 촉나라 남부에서는 곧바로 반란이 일어났다. 심지어 위나라의 사도 화흠은 유비가 사망하자 제갈량에게 투항을 권하는 서신을 보냈다. 그만큼 촉한에서 유비라는 ‘간판’이 갖는 위상은 중요했다.

④지역: 3가지 조건을 충족한 유비는 서촉 지역을 확보해 천하삼분의 한 축이 됐다. 서촉에는 이미 유장이라는 지도자가 있었지만, 천하를 다툴 그릇으로 인정받지는 못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대권을 움켜쥘 리더는 아니었던 셈이다. 이때문에 유비의 가능성을 더 높게 본 법정, 장송 등 서촉의 주요 인사들은 유비가 점령할 수 있도록 내부에서 도왔다.

이런 유비의 사례는 2016년 총선에서 38석을 얻어 돌풍을 일으켰던 국민의당의 성공 방정식에도 적용된다.

코에이 테크모 게임즈의 '삼국지14'. 중앙포토

①사람: 삼국시대의 세력 크기가 명사를 얼마나 확보했느냐로 가늠했다면, 정당의 세력은 통상 의원 수로 환산된다. 국민의당은 2016년 총선 2개월 전, 17명의 국회의원을 확보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의 호남홀대론이 확산하고, 호남의 현역 의원들이 이탈해 국민의당에 합류하면서다. 교섭단체 성립 조건(20석)에는 못 미쳤지만, 제3당의 존재감을 확고히 하면서 거대 양당에 피로감을 느낀 유권자들을 대거 흡수했다. 그 결과 지역구에선 25석(호남 23석, 서울 2석)을, 비례대표에서는 두 번째로 많은 득표(635만5572표)로 13석을 얻었다.
반면 개혁신당에는 현역 의원이 4명뿐이다. 호남에서 민주당과 경쟁할 새로운미래는 김종민 의원뿐인데, 그의 지역구는 충남 논산-계룡-금산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가 2016년 4월 14일 오전 마포구 당사에서 선거 상황판에 당선된 후보들의 이름표를 붙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②자금: 국민의당은 2016년 총선 당시 상임 공동대표이자 창당을 주도한 안철수 의원이 있었다. 안 의원은 2016년 총선에서 1629억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안 의원은 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서도 “2016년 국민의당 창당 때 창당 비용을 다 내가 냈다”며 최근 신당들의 자금 문제를 지적했다.
5개 세력이 합친 개혁신당은 초기 현역 의원 5명을 확보한 덕분에 정당 국고보조금 6억6000만원을 받았지만, 당 주도권을 둘러싼 갈등으로 새로운미래가 이탈하고 소속 의원 수가 4명으로 줄어들면서 처지가 난감해졌다. 이준석 대표는 "보조금을 반납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③간판: 유력 대선후보 확보는 신당의 간판으로서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 꼽힌다. 안철수 의원은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무료로 보급한 전력과 2010년대 청년멘토 등의 명성을 통해 새로운 정치 리더로 급성장했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감을 토대로 한때 차기 대통령 선호도 후보 조사에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박동원 폴리컴 대표는 “당시 호남이 국민의당에 몰표를 던진 것은 ‘안철수’라는 유력 대권 주자가 있었기 때문에 차기 권력을 후원한 것”이라며 “반면 이낙연 총리(새로운미래)나 이준석 대표(개혁신당)는 아직 유력 대권 주자라는 인상을 주기에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23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전화면접조사(20~22일 실시)에 따르면 정당지지도에서 개혁신당은 3%, 새로운미래는 1%에 그쳤다.
(※여론조사 관련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이낙연, 이준석 개혁신당 공동대표가 2월 1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김성룡 기자

④지역: 한국의 정치지형은 아직까지는 이념보다 지역기반이 중시된다. 신당의 성패도 마찬가지다. 3당으로 성공한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이나 국민의당은 각각 충청과 호남에서 바람을 일으켰다. 자민련은 1996년 총선에서 대전·충청 의석 28석 중 24석을, 국민의당은 2016년 총선에서 호남 28석 중 23석을 휩쓸었다.
반면 개혁신당과 새로운미래는 각각 공략 대상인 영남과 호남의 지지율이 충분치 않다. 앞의 한국갤럽 조사에서 개혁신당은 영남에서 5%를, 새로운미래는 호남에서 2%의 지지를 얻었다. 엄태석 서원대 행정학과 교수는 “양측이 공략 지역에서 대안으로서 인정받는 유의미한 바람을 일으키지 못하면 총선 전망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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