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업 접고 보호소’ 26마리 안락사 막은 주인공 [개st하우스]

이성훈,전병준 2024. 2. 24.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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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시 위탁보호소가 문을 닫게 되면서 유기견 수십 마리가 한달 안에 갈 곳을 찾지 못하면 집단 안락사될 처지가 됐어요. 먼저 소형 품종견 10여 마리를 어찌저찌 입양을 보냈는데 문제는 남은 26마리였어요. 진도 믹스견, 치료가 필요한 부상견들이었거든요.”
-충남 아산 개인 구조자 이효경(41)씨

지난 13일 오전 7시, 충남 아산의 수공예 공방. 제보자 효경씨가 양철 대문을 열자 농구장 너비의 넓은 마당 곳곳에서 진돗개와 삽살개 10여 마리가 쪼르르, 취재진에게 다가오더니 상냥하게 손과 얼굴을 핥습니다. 한눈에 붙임성 좋고 건강한 친구들입니다.

이곳은 효경씨의 일터이자 총 26마리의 강아지들이 임시로 지내는 동물보호소이기도 합니다. 모두 시 위탁보호소가 계약 종료로 문을 닫으면서 갑자기 갈 곳이 없어진 유기견들입니다. 그대로 두면 대부분은 순번에 따라 안락사될 처지. “구해달라고 말을 하는 것 같은 녀석들의 눈을 외면할 수 없었다”는 효경씨는 결국 26마리를 전부 떠안게 됩니다.

제보자 효경씨가 시 위탁보호소에서 구조한 26마리의 유기견들 모습. 체급 별로 개체를 분리하고, 치료와 미용에도 신경 쓰는 등 동물보호단체 못지 않게 꼼꼼하게 돌보고 있다. 전병준 기자


출근한 효경씨가 가장 먼저 챙기는 건 26마리의 아침 산책입니다. 견사 문을 열자 견공들은 체급별로 구획된 마당에 쏟아져 나와 30분간 뛰놀고 아침 배변을 합니다. 마당을 돌며 배변을 줍던 효경씨는 “설사 하나 없이 찰지다. 모두들 건강하다는 신호”라며 흐뭇해합니다. 이어서 간밤에 더러워진 견사들을 청소한 뒤 개별 그릇에 사료를 채우는 효경씨. 그릇이 차면 개들은 효경씨의 “하우스” 구령에 맞춰 일제히 견사로 돌아가 밥그릇에 담긴 사료를 먹습니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한 마리씩 위생 미용을 하고 프로필 사진을 촬영한 뒤 입양 홍보용 소셜미디어 계정에 게시해야 합니다. 하나하나가 전문 동물단체도 감당하기 쉽지 않은, 손 많이 가고 몸도 고된 일들입니다. 오전 일과는 정오 무렵에서야 가까스로 끝이 나고, 효경씨는 그제서야 자신의 첫 끼니를 챙길 수 있었습니다. 이런 효경씨의 눈물겨운 노력 덕분일까요. 이곳에 있는 26마리 모두 모델견처럼 외모가 단정하더군요.

효경씨는 “26마리는 숨은 보석과도 같아서 제 돌봄을 받으며 반려견으로 거듭났다”면서 “사랑스런 아이들의 입양길을 열어주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공방을 유기견 보호소로…생명 빚는 수공예 장인

공예 장인인 효경씨는 벌써 몇년째 유기동물을 돌보는 일을 해오고 있었습니다. 인접한 천안보호소에 문의해 안락사가 임박한 유기견을 두세 마리씩 데려와 치료하고 미용해준 뒤 입양자를 모집하는 식이었습니다. 공예 일의 특성상 전시 및 교육을 겸하는 작업장 공간이 넉넉해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입양 보낸 유기견이 지난 3년간 무려 80마리. 효경씨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보호소 유기견에게 미용과 목욕비 5만원만 들이면 예쁜 공고사진을 찍을 수 있고 그걸 올리면 입양 문의가 쏟아졌다”고 설명했습니다.

유기견을 반려견으로 빚어내는 효경씨 활동은 천안시보호소 입장에서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유기동물 통계 웹사이트 포인핸드에 따르면 지난해 천안보호소에 입소한 유기동물은 총 1600여두. 수용 가능 규모(200두)의 8배가 넘는 규모였습니다. 유기동물은 쏟아져 들어오는데 보호공간과 예산지원마저 부족하니 시보호소에서는 법정 공고기간 10일이 지나면 칼같이 안락사를 집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마다 천안시보호소 측은 효경씨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효경씨의 노력 덕에 적은 숫자나마 안락사 집행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3년 간 효경씨가 안락사 위기에서 구조한 유기견은 100마리가 넘는다. 제보자 제공


대형 A동물병원이 위탁 경영을 맡은 천안시보호소는 국내 보호소 여건을 고려하면 헌신적인 곳이었습니다. 해당 동물병원은 위탁보호소로는 드물게 입소한 동물에게 필요한 수술‧접종을 제공하고 안락사 집행일을 최대한 미루는 등 구호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당시 A동물병원장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3년 전 천안시가 위탁보호소 공개입찰을 했으나 거듭 유찰됐고 시청 측의 간곡한 부탁에 일을 시작했다”면서 “열악한 유기동물 현실을 아니까 3년간 2억원의 적자를 감수하면서 치료와 보호를 겸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10곳 중 7곳은 위탁보호소…계약 종료, 위기의 유기견들

그러던 중 지난해 12월. 천안시와의 용역 계약이 종료되면서 A동물병원이 돌보던 유기견 190여마리에게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새해부터 운영되는 시 직영보호소는 최대 100마리만 수용할 수 있어 남은 90여마리는 1개월 안에 갈 곳을 찾지 못하면 안락사 될 처지였습니다. A동물병원 관계자는 “안타까운 마음에 동물단체,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호소했지만 이런 경우가 워낙 흔해 도움을 받기 어려웠다”고 설명했습니다.

시보호소의 위탁운영이 중단되고 수용됐던 유기 동물들이 안락사 명단에 오르는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2022년 반려동물 보호‧복지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공공보호소 239개소 가운데 171곳은 동물병원 등 민간 기관을 지정한 위탁 시보호소입니다. 10곳 가운데 7곳이 위탁보호소인 셈. 이런 곳은 주기적으로 위탁 계약자가 바뀌고 안락사 집행도 그만큼 자주 이뤄집니다. 전남 담양군 위탁 시보호소의 경우도 최근 보호시설 축소가 결정돼 오는 6월까지 최대 200마리의 유기견을 순차적으로 안락사 조치할 것으로 전해집니다.

A동물병원의 소식을 들은 효경씨가 나섰습니다. 효경씨는 생업을 중단하고 공방을 아예 유기견 보호소로 개조했습니다. 먼저 구조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했죠. 시작은 입양 가능성이 높은 소형 품종견이었습니다. 15마리를 데려온 효경씨는 20여일 만에 모두 입양 보내는 데 성공합니다.

문제는 남은 녀석들이었습니다. 인기 없는 진도 믹스견 혹은 치료가 필요한 개들이었거든요. 보호소 측은 경계성이 강하고 부상 정도가 심해 입양 가능성이 없는 개체부터 차례로 안락사를 시작했고, 최종적으로 남은 26마리에게도 이제 1주일의 시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효경씨는 결단했습니다. 고민 끝에 26마리를 모두 공방으로 데려온 겁니다. 효경씨는 “이 많은 숫자를 홀로 돌보고 입양 보낼 수 있을지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며 “하지만 그 선택에 후회는 없다”고 합니다.

“입양길 열어주고 싶어요” 흑구 우주의 가족을 모집합니다

지난 13일 개st하우스팀은 충남 아산의 공방에서 효경씨와 26마리의 유기견을 만났습니다. 효경씨의 돌봄은 전문가 못지않게 꼼꼼했는데요. 생활구역을 대형견, 소형견 등 체급마다 나눠 안전사고를 예방하고, 1~2개월 단위로 위생 미용을 한 덕분에 모든 개가 눈물자국 하나 없이 털 상태가 깔끔했습니다. 모두 3살 미만으로 어린데다 배변교육과 하우스 교육도 마쳤습니다.

문제는 입양입니다. 효경씨는 “반려견으로 사랑받을 자격이 충분한 아이들이 저만 바라보고 있다”면서 “그게 너무 가여워 빨리 입양길을 열어주고 싶다”고 합니다. 이날 효경씨는 개st하우스의 유튜브와 틱톡 채널에서 1시간 동안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습니다. 시청자 3000명 앞에서 사연을 소개하고, 시청자들이 입양 문의하는 견공을 한 마리씩 소개했습니다. 그 결과, 도합 40건 넘는 후원 및 입양문의가 들어오고 3마리는 입양심사를 받게 됐습니다.

가정 임시보호를 보낸 퍼피의 행동교육도 도왔습니다. 생후 6개월 된 7㎏의 작은 흑구 우주입니다. 우주는 천안보호소 입소 당시 장기에 큰 부상이 있었지만 보호소에서 실시한 응급 수술 덕분에 목숨을 건졌습니다. 부상을 회복하려면 가정 돌봄을 받아야 했고, 서울 서대문구의 임보자 민정아(35)씨 품에서 2개월간 간호를 받으며 완치했습니다. 우주는 퍼피임에도 의젓하고 보호자와 애착이 잘 형성되는 편입니다. 다만 초인종이 울리면 짖는 습관이 있어 실내생활을 하려면 교육이 필요합니다.

전문가 도움으로 초인종 둔감화 교육을 받는 6개월 우주의 모습. 초인종 소리가 울려도 짖지 않고 보호자 앞에 앉으면 보상하는 교육을 반복하며, 처음에는 소리를 작게 들려주다가 약속을 잘 수행하면 점차 소리를 키우는 방식이다. 전병준 기자


13년차 행동전문가 미애쌤이 해결책으로 체계적 둔감법을 제시했습니다. 초인종 소리가 울릴 경우 짖지 않고 보호자 앞에 앉으면 보상하는 약속을 만드는 겁니다. 녹음한 초인종 소리를 처음에는 작게 들려주다가 약속을 잘 수행하면 점차 소리를 키우는 방식입니다. 보호자와의 애착이 잘 형성된 견공일수록 습득이 빠른데 우주는 1시간 연습만으로도 초인종 교육에 숙달했습니다. 효경씨는 “우주는 3월이면 가정임보를 마치고 공방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그 전에 좋은 입양자를 만나면 좋겠다”고 기대했습니다.

우주의 가족을 모집합니다. 관심있는 분은 기사 하단의 입양신청서를 작성해주세요.

✔영리한 흑구, 우주의 가족을 모집합니다~!
-생후 6개월 흑구, 7㎏
-중성화 수컷 / 조용하고 순함. 애교많음
-배변교육 순조롭게 진행 중
-입양신청서 링크 https://naver.me/GudjEMlo

✔제보자 이효경씨의 인스타그램 @petit_poteau_house

✔우주는 개st하우스에 출연한 127번째 견공입니다. (100마리 입양 완료)
입양자에게는 반려동물 사료 브랜드 로얄캐닌이 동물의 나이, 크기, 생활습관에 맞는 ‘영양 맞춤사료’ 1년치(12포)를 후원합니다.

이성훈 기자 전병준 기자 tell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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