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적 판단 내릴 때… 홀로코스트 시절 기독교인 돼보자

신상목 2024. 2. 23.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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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 윤리/데이비드 거쉬·글렌 스타센 지음/박규태 옮김/비아토르
게티이미지뱅크


기독교인은 영적 세계 속에서만 살지 않는다. 엄혹한 현실에 발을 디딘 채 삶 전체에서 하나님을 추구한다. 헌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단순하지 않다. 온갖 경제이슈와 불평등, 성윤리, 기후 위기, 전쟁 등 개인적 차원에서도 결코 외면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난다. 기독교인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고 행동해야 할까. 여기서 필요한 게 확고한 기독교 윤리다.

미국의 대표적 기독교윤리학자인 데이비드 거쉬와 글렌 스타센은 오늘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표준적인 기독교 윤리를 제시한다. 구체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하고 시작하신 하나님의 통치, 산상설교(산상수훈)에 들어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 있는 가르침에 초점을 맞춘 윤리다. 이를 위해 저자들은 복음주의 기독교권을 넘어 다양한 교파와 학계가 내놓은 방대한 자료를 인용하며 모든 독자를 토론의 장으로 안내한다.


책의 전반부엔 하나님 나라 윤리의 방법론을 제시한다. 그 기준 강령은 마태복음 5~7장에 등장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산상설교다. 안타깝게도 산상설교는 오늘의 교회와 신자들 사이에서 실현 불가능한 이상적 기준으로 전락했다. 이 말씀대로 살기를 주저하는 경향이 강하다. 저자들은 이런 분위기에 대해 “산상설교가 생략된 기독교 윤리는 대단히 잘못된 것”이라며 “(산상설교는) 어려운 말씀이나 높은 이상이 아니라 실천하라는 예수의 명령”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산상설교는 교회사에서 처음 300년 동안 가장 많이 설교에 언급된 본문이었으며 당대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살기를 기대했다. 산상설교는 예배를 비롯해 성관계, 결혼, 진실 말하기, 원수 사랑, 돈의 투자까지 다양한 삶의 지침들을 포함한다. 산상설교는 16세기 재세례파 중 메노 시몬스, 현대에 와서는 마틴 로이드 존스, 디트리히 본회퍼, 달라스 윌라드 등에서 재발견된다.

저자들은 책 전반에 걸쳐 ‘하나님의 통치가 이 세상으로 뚫고 들어왔다’고 표현한다. 하나님 나라가 죄로 물든 세상 속에 뚫고 들어왔기에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그 나라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 윤리는 구원 평화 정의 치유 포용 기쁨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를 추구한다. 이는 신자가 가져야 할 도덕적 권위의 원천이기도 하다. 저자 중 한 명인 데이비드 거쉬는 기독교인이 윤리적 판단을 내릴 때 그 기준을 홀로코스트 시절 기독교인이 돼 볼 것을 제시한다. “유대인을 핍박하는 데 참여할지 반대에 서야 할지 결단해야 할 처지에 있던 당시 기독교인 상황으로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독일 기독교인들은 성경의 가르침, 하나님의 직접 지시, 도덕적 양심이나 전통, 교회 지도자들의 말, 민족적 전통, 개인적 경험 등에서 판단 기준을 찾았다. 하지만 그 결과는 도덕적 참패로 끝났다. 절대다수의 독일 기독교인들은 성경적 가르침보다는 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됐다. 본회퍼 등 극소수 신자만 예외였다. 저자들은 “오늘날에도 이데올로기 때문에 눈이 멀거나 귀가 가려져 기독교만이 가진 도덕적 권위의 원천을 깊이 생각하지 못한다”고 꼬집는다.

책의 후반부는 하나님 나라 윤리를 기준으로 우리 시대 주요 의제를 다룬다. 범죄에 대한 심판의 문제, 가부장제, 성평등, 성윤리, 결혼과 이혼, 자녀, 전쟁, 경제, 기후, 인종차별, 생명윤리 등을 망라한다. 주로 미국의 사례를 들고 있지만 전혀 낯설지 않다.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서는 기독교 전통이 성경의 일부 본문을 근거로 동성애 행위를 끊임없이 정죄했으며 이것이 오랫동안 이어져 온 담론의 전부였다고 설명하는데, 최근엔 ‘온건한 전통주의’가 복음주의 기독교인의 특징이라고 소개한다. 온건한 전통주의는 성소수자를 받아들이자고 제안하면서도 성소수자의 성관계는 도덕상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많은 성소수자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나라 공동체에 완전히 참여하지 못한 채 배제당하는 현실도 지적한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전쟁, 그리고 미·중 갈등과 한반도 문제 등은 전쟁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한다. 이럴 때 기독교인들은 그동안 논의돼온 ‘정당전쟁론(just war theory)’이나 ‘평화주의’보다는 저자 글렌 스타센이 창시한 ‘정당한 평화 만들기’를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정당전쟁론과 평화주의를 넘는 세 번째 패러다임으로 전쟁을 예방하고 평화를 만드는 행동을 추구하자는 요청이다. 이를 위한 10가지 실천 사항은 당장 한국교회가 적용해도 좋을 듯하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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