곶자왈에 핼러윈 조형물이 웬 말... 정말 속상합니다
[이승은 기자]
제주도를 찾는 관광객이 곶자왈로 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주도의 화산지형을 토대로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된 숲인 곶자왈은 독특한 미기후를 간직하고 있어서 이곳에 기대어 사는 식물들이 많은 곳이다. 제주도에 입도한 지 7년 차인 나는 곶자왈에서 매번 새로운 보물을 발견한다.
화순곶자왈에서 멸종위기 야생생물을 만날 때, 동백동산에서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움을 볼 때, 곶자왈도립공원에서 곶자왈을 알리려는 노력과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을 볼 때, 교래곶자왈에서 눈 시리게 푸른 고사리류를 볼 때, 항상 감사한 마음과 이곳을 더 알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과제를 안곤 했다.
그런데 2월 초에 다녀온 산양곶자왈(현재 '산양큰엉곶'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과 서광동리곶자왈탐방로에서는 화가 나기도 했고, 답답함과 속상함에 하루가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나는 곶자왈모니터링단인 시민단체 '곶자왈사람들'에 소속돼 있는데, 우리는 매월 1회 곶자왈의 보전을 위한 조사와 훼손을 막기 위한 지속적인 모니터링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모니터링 3년차를 맞은 나도 이곳저곳의 곶자왈을 많이 다녀본 덕분에 이제 조금씩 이야기할 수 있다. 모두가 '곶자왈 중의 곶자왈'이라고 손꼽은 산양곶자왈이 많이 훼손되어 속상했다.
▲ 탐방로 안쪽으로 공간을 확장하고 나무집 등을 만들었다. |
ⓒ 이승은 |
깔끔하게 설치된 안내판과 매표소를 지나 입구에 들어서면 잘 닦인 탐방로가 나타난다. 탐방로를 따라 걸어 들어가다 보면 곶자왈의 나무와 풀들보다 여러 가지 조형물들을 먼저 만나게 된다. 돌담과 문, 통나무집, 그네, 거대한 달 모형, 거울, 수도꼭지, 기찻길 등등. 산양곶자왈 어딘가에서 나왔을 돌들과 조형물을 만들기 위해 탐방로 옆을 확장하고 밀어냈는데, 그 자리가 선명하다.
▲ (왼) 화려한 색의 버섯 조형물이 놓인 자리 주변의 식물들을 싹 제거한 모습, (오) 근처에는 희귀식물인 밤일엽도 나타났다. |
ⓒ 이승은 오명숙 |
곶자왈을 대표하는 지형 특성인 함몰지는 사람의 발이 잘 닿지 않고, 곶자왈만의 독특한 미기후가 형성되어 다양한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그곳은 습도나 온도가 바깥과 다르고 함몰지의 깊이에 따라 살아가는 식물 종도 다르다. 그러므로 거대한 수목도 보이지 않고 접근하기도 어려운 그곳의 작은 구멍, 돌 하나하나를 잘 보전해야 하고 관리해야 한다.
▲ (왼) 산양곶자왈에서 볼 수 있는 숨골(궤) 사진 (오) 숨골 주변으로 많이 파헤쳐진 모습 |
ⓒ 이승은 |
▲ 울퉁불퉁한 화산지형 위에 형성된 곶자왈에서 볼 수 있는 함몰지의 모습. 바깥쪽부터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식생이 달라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 이승은 |
답답한 마음을 안고 더 걸어가다 보면 최근 생긴 것으로 보이는 토끼 먹이 체험장이 나온다. 전부터 산양곶자왈 안에 소달구지, 말달구지 체험을 할 수 있게 해놨는데, 추가로 토끼 먹이 체험장을 크게 만들어놓은 것이다. 아이들이 오면 참 좋아하겠지.
▲ 산양곶자왈 내부에 새로 생긴 토끼 먹이 체험장과 카페 |
ⓒ 이승은 |
산양곶자왈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 만한 것들에는 제주도라는 정체성도, 곶자왈이라는 곳에 대한 고민도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핼러윈을 연상시키는 해골 인형들, 빗자루 탄 마녀, 나무에 매달린 원숭이 인형들까지 보고 나면 곶자왈에 들어온 것이 맞는지 헷갈리기까지 한다.
또한 사람들의 발길을 끄는 기찻길 포토존이 두 군데 있었는데, 계속 기찻길을 연장하면서 곶자왈 내 대형공사를 진행하지는 않을지 우려도 되었다. 대형공사가 돼버려도 예쁘거나, 사진에 찍히기 좋거나, 한번 와서 사진 찍고 가기 좋으면 그만인 걸까.
▲ 핼러윈 관련 조형물과 기찻길 조형물 |
ⓒ 이승은 |
▲ 기찻길 바로 옆에는 제주도 보존자원인 빌레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빌레나무는 2003년 곶자왈에서 처음 발견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다. |
ⓒ 오명숙 |
산양곶자왈에는 크게 두 가지 탐방로가 있다. 중앙을 따라 걷는 탐방로(유모차나 휠체어도 지나갈 수 있다)와 원으로 한 바퀴 돌 수 있는 원형 탐방로(야자매트가 깔려있지만 울퉁불퉁한 돌길을 포함하고 있다)이다. 나는 중앙 탐방로와 원형 탐방로를 모두 돌아봤는데, 중앙 탐방로를 걸으며 만난 다수의 관광객을 원형 탐방로에서는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다행인지 원형 탐방로를 돌아볼 때는 산양곶자왈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었다.
당장에 관광객들이 흥미를 가지고 보러 오는 부분이 포토존과 조형물일 수는 있겠지만, 이런 것들은 제주도 어딜 가나 있다. 더욱이 곶자왈에서 제주스럽지도 않는 조형물들을 만나는 생경함을 느끼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곶자왈에 가보려는 사람에게 개인적으론 산양곶자왈을 추천해줄 수 없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곶자왈 안에서까지 들어와서 굳이 음료를 사 마시게 하는 카페를 만드는 대신에 산양곶자왈 구석구석에 있는 보물 같은 진면목을 설명해 줄 해설사들과 해설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사라진 곳자왈 원형은 쉽게 복원하기 어렵다. 곶자왈을 훼손하고 모양을 변형시켜 눈길을 끄는 것보다는 곶자왈의 속살을 조심히 구경할 수 있는 의미 있는 탐방로들을 그대로 남겨두면 얼마나 좋을까. 산양곶자왈에는 아직 그런 가치가 충분히 있다.
서광동리곶자왈탐방로의 실수들
▲ (왼) 참식나무에 후박나무라고 잘못 붙여진 수목 안내판, (오) ‘머위나무’라는 나무는 없다. 왕초피에 잘못 붙여진 수목안내판 |
ⓒ 이승은 |
입구에서부터 열 발자국에 하나씩 보이는 수목안내판은 옛날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 최근에 설치한 것으로 보였다. 나무를 잘 알고 나무의 이름을 공부한 사람은 알겠지만, 모르는 사람이 나무 이름표를 보면 그냥 맞겠거니, 하고 만다. 그렇기에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후박나무 아니지 참식나무야. 층층나무 아니지 누리장나무야. 초피나무 아니지 왕초피야. 단풍나무 아니지 팽나무야. 곰의말채 아니지 꾸지뽕나무야. 수목 안내판 한두 개의 문제가 아니었고, 한두 개만 빼고 전부 틀린 이름이 걸려있었다. 이 이름표를 다는 데 돈도 적지 않게 들었을 텐데, 반드시 수정이 필요하다.
탐방로 옆으로 왕초피를 비롯한 수목들을 잘라내고 정리해서 공간을 마련해 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훼손된 수목 아래로 희귀식물인 새우난초가 위태롭게 자라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공간에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 탐방로 옆 수목 훼손 모습. 탐방로를 따라 걷다보면 잘려나간 수목들을 많이 볼 수 있다. |
ⓒ 이승은 |
▲ (왼) 잘려진 수목 아래 위태롭게 자라고 있는 새우난초, (오) 잘려나간 수목들이 흩어져있다. |
ⓒ 오명숙 |
제주도에 좋은 곳들이 너무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곶자왈은 내가 가장 애정하고 많은 감동을 받는 곳이다. 곶자왈은 제주도 동서남북 어디에서도 만날 수 있다. 그래서 동서남북에 있는 여러 곶자왈은 각각 특징, 분위기, 식물 특성, 유산으로서의 가치 등을 가지고 있다.
▲ 아무런 조형물이 없어도 곶자왈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어디에도 없는 제주만의 사진을 남기게 한다. |
ⓒ 이승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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