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남산'이 있다면 대구엔 '앞산'이 있다
[정만진 기자]
▲ 대구 앞산 역사문화자연유산 답사여행 |
ⓒ 정만진 |
그래서 조선의 수도 한양 궁궐에서 볼 때 앞에 있는 산에 남산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대구는 261년(신라 첨해왕 15) 지금의 달성공원에 달벌성을 쌓은 이래 그곳을 기준으로 남쪽에 있는 아미산 일대를 남산이라 불러 왔습니다.
서울에는 있지만 대구에는 없는 남산
서울 남산은 현재도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대구는 도시 확장 과정에서 아미산 일대(동부교육청과 계명대학 사이)가 주택가로 변하면서 남산은 형체도 이름도 실종되어 버렸습니다. 대구 시민들에게 '남산'은 없어지고 '남산동'만 남고 말았던 것입니다.
▲ 건열 화석(왼쪽부터), 공룡 공원, 연흔 화석 |
ⓒ 정만진 |
하지만 가깝고 익숙한 대상보다 멀고 낯선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언제든지 입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앞산도 약간의 홀대를 받아 왔습니다. 세계적으로 대도시 중 유일하게 공룡발자국을 보유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앞산은 대구 시민들에게조차 제대로 우러름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빙하기 때 대구 일원이 거대한 호수였다는 사실을 증언하는 연흔과 건열 화석까지 희귀한 자연유산으로 고산골에 남아 있지만, 그 역시 관심을 끌지 못했습니다. 927년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과 전투를 벌이다가 대패한 후 구사일생으로 도망쳐 와서 숨어 지냈던 왕굴이 역사유산으로 정상부에 남아 있지만, 그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빙하기 유적도 있고, 독립운동 유적도 있고
▲ 왕건이 견훤 군대의 추적을 피해 숨어 있었던 대구 앞산 왕굴 |
ⓒ 정만진 |
고산골에서 달비골까지 약 12km에 걸쳐 조성된 '앞산 자락길'이 있어 험준한 등산은 어렵고 산책 수준의 오솔길 걷기를 희망하는 시민들을 기다리고 있기도 합니다. 큰골의 낙동강 승전 기념관과 무당골의 일몰 전망대도 방문해볼 만한 내용을 갖추고 있습니다.
앞산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커졌으면
▲ 조선국권회복단 창립지 안일사 |
ⓒ 정만진 |
가장 동쪽에 있는 골짜기 '고산골'부터 시작해 '큰골', '안지랑골', '달비골' 순서로 그 곳에 있는 자연유산과 역사문화유산들을 해설했습니다. 그리고 동쪽, 북쪽, 서쪽, 남쪽 산비탈을 차근차근 걷는 '앞산자락길'을 따라 가며 소개했습니다.
또 왕건과 관계되는 은적사, 안일암, 임휴사도 그렇지만 고산골만 해도 11곳이나 되는 사찰이 산재하는 현실을 고려해 '탑의 역사, 대구의 탑들'과 '부처와 불상의 종류'를 별도 꼭지로 배치했습니다. 아무쪼록 이 책이 '대구 앞산'의 가치를 높이는 데 이바지할 수 있기를, 저자로서 감히 기대하는 바입니다.
덧붙이는 글 | <대구 앞산 역사문화자연유산 답사여행>, 저자 정만진, 출판사 국토, 2024년 2월 22일 발간, 200쪽, 1만7천 원. 오는 24일 오후 3시에 앞산 고산골에서 출간 기념회를 엽니다. 이 책을 펴내기 위해 오랫동안 앞산을 함께 답사해온 현진건학교 회원들 등 여러 분들께서 모일 것입니다. 회원이 아닌 분도 환영합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4864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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