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런히 노출된 41구의 유해 행렬
필자는 이번 연재를 통해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자원봉사활동'에 대한 발굴 현장의 역사를 소개하고자 한다. 2014년부터 진행한 전국각지 유해발굴 현장의 생생한 기록과 발굴을 둘러싼 사연, 증언, 느낌 등을 한 주에 한 편씩 전할 계획이다. 잘못된 역사와 진실을 밝히고 잊지 않기 위해 그리고 진실과 화해의 치유에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기자말>
[김영희 기자]
▲ 진주 봉강리 발굴 현장 맨 앞 필자의 모습(2022년 6월) |
ⓒ 김영희 |
억울한 피학살자 '두 번'이나 죽인 박정희, 그 잔인한 흔적 https://omn.kr/27fo7
경남 진주지역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매장지 24개소 중 8개소를 발굴했지만, 지자체에서 발굴 비용을 지원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2022년도 진주유족회장(정연조)과 집행부의 진주시청 방문 등 노력과 진주시의 관심으로 5월 말경 예산이 집행됐다. 그렇게 해서 9개소째인 봉강리 유해발굴장은 2022년 6월 2일부터 23일까지 조사와 발굴을 14일간 실시하기로 했다.
진주시는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다. 반면 아프고 슬픈 역사, 암흑의 역사도 존재한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지' 가운데 진주지역이 보도연맹원으로 학살당한 사람이 전국에서 가장 많다. 진주시가 좀 더 건강한 도시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아픈 역사의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슬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게 청산할 수 있는 도시로 거듭나야 한다.
아픈 역사를 안고 인고의 세월을 살아온 유족의 목소리도 들어야 한다. 유족들이 고령이고 1세대에서 부모와 형제들의 학살당한 억울함을 청산하고 역사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마지막 세대이기 때문에 이 사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진주시의 적극적인 관심이 있을 때 진주시민도 아픈 역사의 청산에 앞장서는 진주시 정책에 공감하고 지지할 것이다.
집현면 봉강리 '시굴 아닌 시굴'하는 날
2022년 6월 2일 집현면 봉강리 매장지로 향한다. 봉강마을 입구에서 장대산 북서 자락 능선 500m 정도 올라가면 나온다. 10여 년 전 봉강리 마을에 사는 윤아무개씨 증언으로 전 진주유족회장 강병현과 유족들이 직접 매장지를 파보았다고 한다. 70cm 정도 팠지만 유해가 나오지 않아서 윤씨에게 유해가 나오지 않는다고 하니, 윤씨가 직접 올라와 "더 파야한다카이 내가 그때 딱 본 기라 그래서 안다 아이가 1m 정도 더 파야 나온다니까"라고 했다.
▲ 진주시 집현면 봉강리 발굴장 원경(사진제공 : 역사문화재연구원)과 표지석 |
ⓒ 김영희 |
▲ 유족분들이 장대산 매장지로 향하는 모습 |
ⓒ 김영희 |
유족을 뒤따라 500m 정도 한참을 오르니 숲속에 표지판이 유족과 필자를 반긴다. 표지판은 훼손되지 않고 깨끗하게 매장지를 꿋꿋이 지키고 있어 짠한 마음이 들었다.
▲ 꿋꿋이 서 있는 표지판 앞에서 유족들과 역사 문화재 연구원 김헌 원장과 대화하는 모습 |
ⓒ 김영희 |
▲ 왼쪽 : 유족들이 개토식 매장지를 향해 제례 모습 / 오른쪽 : 오른쪽에서 두 번째 MBC 이준석 기자, 네 번째 장상환 교수, 다섯 번째 성연석 전 도의원. 그 외는 유족임 |
ⓒ 김영희 |
며칠 후 발굴장에 도착하니 필자는 온몸에 소름이 돋고 한탄만 나온다. 그동안 다닌 발굴지 중에서 가장 정확하고 훼손도 덜 됐다. 개체수가 거의 육안으로 드러났다. 학살 과정을 추측할 수 있을 정도로 나란히 드러나 있었다. 유해는 72년의 어둠 속에서 밝은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가해자들의 사살 과정과 사살 행위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폭 1m 50cm, 깊이 1m, 길이 15m 긴 구덩이에 41명이 나란히 엎드린 상태였다. 가해자는 발 방향에서 일렬로 서서 머리를 향해 격발해 학살한 것으로 확인됐다. 죽지 않았으면 권총으로 확인 사살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한 트럭 40~50명 정도 예측이 맞다. 권총 탄피와 칼빈 탄피로 보아 학살자들은 군인과 경찰로 추정된다. 탄피가 100여 개 이상이 나왔다는 것은 한 사람당 2발 이상을 쏘았다는 뜻이다.
이름 모를 1번-2번 유해와 만나다
발굴장에는 규율이 있어 아무 곳에서나 발굴할 수 없다. 발굴단장이 지시한 곳aks 발굴을 할 수 있다. 김헌 원장이 필자에게 북쪽 위쪽에 있는 유해 1번, 2번(발굴장에서 정해지는 번호) 두 분을 발굴하라고 지시한다.
발굴 도구를 준비해 흙에 앉으면서 "안녕하세요. 저와 만나게 돼 반갑습니다. 어서 어둠에서 밝은 곳으로,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풀어 드릴개요"라고 인사하고 발굴 시작한다.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두개골은 형태가 잘 드러나고 한 분은 총상 흔적이 뚜렷이 남아있다. 신체도 건장하고 장신이었고 치아 금니가 노출됐으며 한 분은 가슴뼈도 남아 있었다. 사실 가슴뼈와 좌골과 골반은 약하기 때문에 남아있는 경우가 드문데 41구 중에서 유일하게 노출됐다. 목 부위를 계속 흙을 파니까 하얀 치아 와 금니가 살며시 보인다.
▲ 1번 2번 유해 2인 1조 결박 상태와 골반 및 단추 노출 모습 |
ⓒ 김영희 |
▲ ①번 ②번 구겨지고 엉킨 신발 노출 모습 |
ⓒ 김영희 |
▲ 1번 2번 유해가 묶인 전선과 금니 치아 노출된 모습 |
ⓒ 김영희 |
▲ 1번 유해 세척 인골 평면도 (사진 제공: 역사 문화재 연구원) |
ⓒ 김영희 |
그 외 3개소에서 발굴된 유해는 뒤섞어 노출됐기에 DNA 검사가 불가능했다. 봉강리 발굴지는 DNA 검사도 가능한 형체로 드러났기 때문에, DNA 검사 통해 유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의 실체와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역사적 의미가 있는 발굴지라 할 수 있다.
봉강리 매장지에 묻힌 피학살자들은 누구인가
▲ 최종적 유해 41구가 가지런히 노출된 모습 |
ⓒ 김영희 |
▲ 2인 1조 유해는 훼손되지 않고 노출돼 DNA 검사가 가능하다. |
ⓒ 김영희 |
▲ 사진 12-① 사진 12-② 사진 12-③ |
ⓒ 김영희 |
▲ 사진 12-④ 사진 12-⑤ 사진 12-⑥ |
ⓒ 김영희 |
사진 12-①은 양은그릇과 빗 그리고 전선 흐트러진 유해와 함께 노출된 모습이다. 빗은 미군의 제품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그때 참빗 정도 사용할 때다. 12-②는 약병 종류다 당시 약병도 중요한 단서다. 12-③ 버클과 단추도 고급스런 쇠로 만든 큰 단추다. 12-④ 옷감은 당시 7월이라는 날씨와 맞지 않은 두툼한 옷을 입은 채 확인됐고 12-⑤ 미군복 색상의 옷은 해방 후 미군정 시기 미군 제품이 통용돼 한국인이 구입해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주3) 12-⑥ 두개골의 훼손 상태가 심하고 손목뼈 옆에 손목을 결박한 전선이 노출돼 있다.
▲ 왼쪽 : 이리공업고등학교 교복단추 / 가운데 : 가쿠란 깃 노출 사진 / 오른쪽 역사문화재연구원 사진제공 |
ⓒ 김영희 |
먼저 단추의 단서를 찾기 위해 '이리공업고등학교 22회 졸업생 정유순씨를 통해 이리공업고등학교 총동창회에 문의한 결과 1940년대에 입던 교복 단추가 맞는 것으로 확인했다. 당시 이리고는 명문학교로서 전국에서 유학 갈 정도로 유명한 학교였다고 한다. 단추와 가쿠란이 출토된 유해(07)의 신발과 운동화였다. 그러므로 학생 신분으로 학살당한 것이다.
▲ 미군 군용품 신발류 발굴 모습, 두개골 총상과 치아, 철제단추 4열 노출 |
ⓒ 김영희 |
집현면 봉강리 발굴은 16일 만에 막을 내리고 세척과 감식을 위해 역사문화재연구원으로 이관됐다.
(* 26화 진주 봉강리편에서 계속됩니다.)
[각주]
(주1) 〈역사문화재연구원〉, 한국전쟁기 진주지역 민간인 피학살자 유해발굴조사 보고회 자료집, 2022.6.16.
(주2) 〈역사문화재연구원〉, 한국전쟁기 진주지역 민간인 피학살자 유해발굴조사 보고회 자료집, 2022.6.16.
(주3) 〈역사문화재연구원〉, 한국전쟁기 진주지역 민간인 피학살자 유해발굴조사 보고회 자료집, 2022.6.16.
(주4) 〈역사문화재연구원〉, 한국전쟁기 진주지역 민간인 피학살자 유해발굴조사 보고회 자료집, 2022.6.16.
(주5) 〈역사문화재연구원〉, 한국전쟁기 진주지역 민간인 피학살자 유해발굴조사 보고회 자료집, 2022.6.16.
덧붙이는 글 | 김영희 (전)교사/ 한국전쟁 창원유족회 유해발굴 조사단장·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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