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미뤄진 상한제 실거주 의무…한숨 돌렸지만 또다른 분쟁 씨앗
“실거주 의무를 유예하는 법안이 통과되자마자 전·월세를 놓겠다는 연락이 계속 옵니다.”
오는 11월 입주를 앞두고 있는 서울 강동구 둔촌동 ‘올림픽파크포레온’ 인근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대표는 “지금 금리가 높아 잔금 대출 부담이 컸던 입주 예정자들이 실거주 의무 탓에 발을 동동 굴렀는데 법안 통과로 한숨을 돌린 이들이 많다”며 “이 아파트 입주 물량(1만2032가구) 중 3분의 1가량, 한 4000가구 정도가 전·월세로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21일 분양가상한제 아파트에 대한 실거주 의무를 3년간 유예하는 주택법 개정안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토법안소위원회를 통과했다. 실거주 의무가 시작되는 시점을 ‘최초 입주 가능일’에서 ‘최초 입주 후 3년 이내’로 완화했다. 집주인이 새 아파트 입주 전에 한 번은 전세를 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개정안은 오는 29일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의결될 전망이다.
시장에선 고금리 상황에서 실수요자의 자금 조달에 숨통이 트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국토위 여당 간사인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은 “현실적인 여러 사유로 직접 입주가 힘든 실수요자가 많다”며 “여야 논의를 통해 실거주 의무를 3년 유예를 하는 것으로 법안이 통과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3년 유예는 또 다른 ‘분쟁의 씨앗’이 될 소지도 있다는 지적이다. 전세계약이 2년 단위로 이뤄지고 주택임대차보호법상 2년을 추가 연장할 수 있는 계약갱신권이 있는 만큼 3년 뒤 실거주를 해야 하는 집주인과 세입자 간 갈등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지금으로선 2년 전세에 1년 특약사항을 넣어 계약을 맺는 식이 될 것 같다”며 “전세계약갱신권에 맞춰 실거주 의무 유예를 4년으로 하던가, 주택 매도 전까지만 실거주 의무를 충족하도록 하는 게 나아 보인다”고 말했다.
3년 이라는 숫자는 더불어민주당이 고수한 내용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실거주 의무 도입 취지가 3년 전 주택시장이 과열되던 당시 전세를 끼고 주택을 구매하는 ‘갭 투자’ 등 투기를 막겠다는 것이었다”며 “의무 유예가 시장에 다시 갭 투자를 허용하는 신호를 주지 않도록 전세계약갱신청구권을 쓸 수 없는 3년으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재는 부동산 시장이 침체돼 있고, 주택을 2년 미만 보유하고 팔 경우 양도세를 60% 물리는 만큼 투기를 우려할 상황은 아니라는 의견이 많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투기를 막으려면 전매를 제한하는 게 더 맞다”며 “3년 유예는 또 예외를 두는 셈이어서 시장에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의원 선거를 한 달여 앞두고 여야가 각자 지지층을 의식해 성급하게 절충안을 마련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참여연대는 “총선을 50일 앞두고 거대 양당이 실거주 의무 유예안에 합의했다”며 “선거철만 되면 반복되는 규제 완화 정책은 서민의 주거 안정성을 훼손하고 자산불평등을 심화시킨다”고 규탄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실거주 의무가 적용된 단지는 지난달 말 기준으로 77개 단지 4만9766가구다. 올해 6월과 11월 각각 입주를 앞둔 서울 강동구 강동헤리티지자이(1299가구)와 올림픽파크포레온이 실거주 의무 유예 수혜 단지로 꼽힌다.
서울의 경우 매매 수요가 줄며 전셋값이 오르는 상황이어서 전세 시장 안정에 일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은형 연구위원은 “올림픽파크포레온 같은 대단지는 전세 매물이 많아 전세난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하지만 웬만한 대단지 아니고선 전월세로 나올 물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전체 전세시장을 뒤흔들 수준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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