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아의 행복한 가드닝] 나의 환절기
어제 보니 우리 집 수선화가 벌써 손가락 마디 정도로 자란 게 보였다. 봄이 왔음을 알리는 첫 선수의 입장이다. 수선화를 시작으로 튤립의 싹이 올라올 것이고, 그 사이 우리 집 앞 설악동 길엔 수백그루의 벚꽃이 팝콘처럼 하얀 꽃을 피워줄 것이다. 그때 쯤 우리 마을 소나무 숲에선 뻐꾸기가 남의 둥지에 알을 낳고 울어대고, 화단엔 화초와 잡초가 뒤섞여 올라올 것이다. 하지만 이 예측된 모든 일이 만약 오지 않는다면?
봄이 와주지 않고, 태양이 맑은 햇살을 보여주지 않고, 바람이 불어오지 않고, 식물이 피어나지 않는다면? 이 모든 두려움의 상상이 요즘 공상과학영화의 단골 주제라는 걸 잘 안다. 지난해 자연생태복원기사 시험을 치렀다. 정원 일을 통해 터득한 자연의 이치를 정원디자인에 접목해 해보고 싶어서였다. 생태디자인은 영국 유학시절에도 배운 경험이 있다. 그때 지도교수였던 피터는 ‘자연의 복원력(Resilience)’이란 단어를 수도 없이 강조했다. 자연은 ‘원래의 생태계로 돌아가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자연의 복원력도 한계가 있다. 많은 과학자들은 자연의 한계점이 12시라면 우린 이미 11시 55분을 넘어섰다고도 표현한다.
며칠 전에 갑자기 뜨거워진 기온 탓에 차 안이 더워져 문을 열어 놓고 달렸는데, 그 날밤 폭설이 내리는 신기한 날씨 쇼도 경험했다. 우수와 경칩을 지나는 환절기에 접어 들었기 때문이다. 이번 환절기도 몇 번은 더 나를 들었다 놨다 괴롭히겠지만 올해는 그리 싫지가 않다. 환절기는 아직은 자연이 돌아와 준다는 증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건 내가 나의 정원에 봄꽃을 심을 수 있는 예약 티켓이라는 것도 안다. 식물 시장으로 달려가 봄꽃을 잔뜩 사들였다. 호주매화에 백묘국, 아네모네, 방울철쭉나무까지. 아직은 이 봄이 이렇게 나를 어김없이 찾아와 주니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자연을 위해 뭐든 하긴 해야 한다.
오경아 정원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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