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드라마에 'K-남친'이? 반가우면서도 얼떨떨한 이유

이진민 2024. 2. 19.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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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TBS 드라마 < Eye Love You >가 짚은 여성들의 이상형

[이진민 기자]

 "미국 여자들은 내 귀여운 영국 억양에 바로 넘어올걸."

그 나라에서 태어난 것만으로 누군가의 로망이 된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 속 콜린은 그런 상상에 빠진 영국 남자다. 미국에 가면 영국 남자라는 사실만으로 돈이 없어도 윌리엄 왕자처럼 행세할 수 있고 여자들에게 사랑받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소 우스꽝스럽게 영국 남자를 향한 여성들의 선호를 묘사했지만, 출생지 자체가 어필할 만한 무엇이 된다는 건 오래된 연애 수법이다.

매력적인 영국 남자, 프랑스 여자를 뒤이어 '한국 남자' 시대일까. TBS 드라마 < Eye Love You >는 현실에 없는 완벽한 K-남친 '윤태오' 캐릭터를 선보였다. 큰 덩치에 밝은 성격, 적극적인 애정 공세까지 요즘 수요 많은 '멍뭉미' 넘치는 남성을 재현하며 일본과 한국에서 사랑받고 있다. 자국민으로서 얼떨떨한 윤태오의 인기. 그 뒷면에는 나를 위협하지 않는, 안전한 남자를 향한 지구촌 여성들의 수요가 박혀있다.

로코로 배우는 문화 상대주의?
 
 <Eye Love You> 메인 포스터
ⓒ TBS
 
< Eye Love You >의 설렘 포인트는 문화적 차이에서 출발한다. 일본에서 자란 상대역 모토미야 유리(니카이도 후미)와 달리, 태오(채종협)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 남성. 그 덕에 첫 만남부터 서슴없이 성씨가 아닌 이름인 '유리'라고 부른다. 일본에선 되도록 성씨를 호칭으로 사용하며 친밀한 사이에서만 이름을 부르기에 태오의 첫걸음은 세 보 같은 한 발짝이 돼버린 셈.

능숙하게 일본어를 사용하는 태오지만, 그의 애정 공략법은 100% 한국파. 회식 자리에서 같이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자고 말하고, 꽃다발을 건네며 '오다 주웠다'고 말하는 그. 거기에 틈틈이 비빔밥, 순두부 같은 한국 음식을 소개해주며 먹는 걸 좋아하는 유리에게 맛있는 순두부를 선물하는 게 태오만의 사랑법이다. 특히 유리의 손에 새끼손가락을 걸고 도장 찍으며 한국만의 약속 방법을 설명하는 장면으로 설렘 포인트까지 잡았다.

주인공들은 서로 다른 세계를 포용하며 사랑에 빠진다. 유리는 알바하면서 들은 비하 표현을 이해하지 못하는 태오에게 순화한 단어로 다시 설명해 주고, 반대로 태오는 '감사합니다'만 아는 유리에게 또 아는 한국 표현이 없냐며 '사랑해요'라는 답변을 끌어내려고 한다.

문화 상대주의에 입각한 두 사람은 한국, 혹은 일본 문화에 치중하여 상대를 자신이 속한 문화에 동화시키려 하지 않는다. 서로를 만나며 상대방의 문화에 관심을 두고 그 문화권에서 자랐기에 생긴 습관과 행동을 정정하지 않는다. 장르는 로맨스지만, 태오와 유리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타 문화권을 수용하는 방식을 통해 글로벌 시민으로서의 태도를 배우게 된다.

드라마의 반응은 반도와 열도 모두 뜨겁다. 한국에선 넷플릭스 인기 콘텐츠 TOP 10에 올랐고 일본에선 주간 넷플릭스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윤태오를 연기한 채종협의 SNS에선 일본어로 적힌 댓글도 무수하다. 한국 남성과 일본 여성의 신선한 조합에 시청자들은 열렬히 반응하고 있다.

안전하고 무해한 윤태오, 어디 없나요
 
 <Eye Love You> 스틸컷
ⓒ TBS
 
윤태오의 캐릭터 특성은 단순히 '한국 남자'로 정의할 수 없다. 그의 핵심은 무해함. 아이처럼 해맑고 사람을 좋아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누군가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걸 인정하는 태도를 갖췄다. 이는 태오와 유리의 첫 만남에서 드러난다. 배달 실수로 유리의 음식을 망가뜨린 태오, 대신 자신이 만든 순두부를 선물하기로 한다. 그러나 막상 건넨 음식에 유리는 망설인다. 낯선 이가 베푼 호의에 경계하는 건 여성으로서 당연한 반응. 중요한 건 태오의 행동.

태오는 유리에게 "왜 나를 의심하냐"고 화내거나 음식을 다시 빼앗지 않는다. 유리의 눈에서 드러난 두려움을 읽고 바로 순두부를 한 숟갈 떠서 먹으며 이상한 게 들어있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신분증과 함께 인적 사항을 술술 말한다. 자신에 얽힌 정보는 서슴없이 말하지만, 태오는 유리에게 쉽사리 질문하지 않는다. 더 친해지고 나서야 그의 나이와 관심사를 물을 뿐이다.

'안전한 남자' 윤태오의 캐릭터성은 유리와의 관계에서 재확인된다. 태오가 인턴으로 입사한 회사의 사장이 다름 아닌 유리인 것. 상하관계로 얽힌 둘은 상황이 역전된다. 맨 처음 적극적으로 애정을 표현하며 관계를 주도했던 태오는 "공과 사를 지키자"는 유리의 요구에 차분해진다. 역으로 유리가 둘의 거리를 조정한다. 유리가 내린 정의에 따라 두 사람은 상사와 부하 혹은 썸 타는 사이를 오간다.

드라마는 태오의 무해함을 증명하기 위해 더 많은 특성을 덧붙인다. 대학원에서 멸종 위기 동물을 연구하고, 대학 총장에게 사랑받을 정도로 서글서글한 성격을 지닌 남성. 좋아하는 여성이 글씨를 쓸 때 대신 햇빛을 가려주고 그의 직업을 자랑스러워하는 남성. 친환경 제품이 많아지길 원하며 옥상에서 비눗방울을 부는 남성. 이런 남자라면 국적을 떠나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태오가 불러올 나비효과
 
 <Eye Love You> 스틸컷
ⓒ TBS
 
정세랑 작가는 에세이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에서 '자라나는 세대에게 새로운 남성상을 제시하고 싶다'며 유해하지 않은, 시민으로 기능하는 남성 캐릭터를 매력적인 주인공으로 두는 전략을 펼친다고 고백한 바 있다.

최근 인기를 끈 드라마 속 남성 캐릭터들이 대부분 유순하고 부드러운 성격을 가졌다는 점에서도 일치한다. 더 이상 '운수 좋은 날' 속 김첨지처럼 툴툴거리는 캐릭터가 아닌 대놓고 다정한 남성이 통하는 요즘이다.

< Eye Love You >의 윤태오가 사랑받는 이유를 한국 문화의 인기나 새롭게 떠오른 '한국 남자' 로망으로 분석해도 될까. 그 너머의 속내는 자신에게 위협적이지 않은, 있는 그대로 존중할 줄 아는 남성을 원하는 여성들의 바람 아닐까.

안전한 남자를 찾아 가상의 드라마로 향한 여성들, 그들의 취향이 안쓰럽고 윤태오의 인기가 얼떨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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