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설비공, 밤에는 노래... 비틀스도 인정한 가수 [B메이저 - AZ 록 여행기]

최우규 2024. 2. 1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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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메이저-AZ 록 여행기] 최고의 연주자와 명곡 엄선한 조 카커의 데뷔 앨범

[최우규 기자]

가수 조 카커(Joe Cocker). 1980년대 AFKN(주한미군방송) TV 미스 월드 선발대회 중계방송에서 처음 봤다. 번쩍거리는 파티복을 입은 참가자 사이를 오가며 '유 아 소 뷰티플(You Are So Beautiful)'을 불렀다. 후줄근한 재킷을 입었고 머리는 덥수룩했다.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은, 그저 그런 팝 가수 같았다. 헤비메탈이 최고의 음악이라는 치기 어린 신념을 품은 '고딩' 시절이었다.

당시 내가 모르던 비밀이 있었다. 알고 보니 카커는 어마어마, 무시무시한 가수였다. 영국 출신 중 가장 출중한 블루 아이드 솔(Blue-Eyed-Soul, 백인 가수가 흑인 가수처럼 부르는 솔 음악) 가수. 얼마나 대단했냐고? 그 이야기를 해보겠다.

조 카커는 1944년 영국 셰필드에서 태어났다. 레이 찰스(Ray Charles), 스키플(영국에서 유행한 음악으로, 재즈, 블루스, 포크가 혼합됨) 가수 로니 도네건(Lonnie Donegan) 노래를 즐겨 들었다. 1961년 학교를 그만두고 공영 가스업체 설비 실습생이 됐다. 가수로 자리 잡을 때까지 낮에는 가스 설비공, 밤에는 가수 생활을 했다.

1964년 데카와 첫 계약을 맺고 비틀스(the Beatles) 노래 '아일 크라이 인스테드(I'll Cry Instead)' 싱글을 냈다. 인기를 끌지 못했고, 카커는 가스 설비 일에 전념했다. 1966년 베이스 연주자 크리스 스텐인턴(Chris Stainton)과 그리스 밴드(The Grease Band)를 결성했다. 데니 코델(Denny Cordell)이라는 프로듀서가 관심을 보였다. 코델은 프로그레시브록 밴드 프로콜 해럼(Procol Harum)과 무디 블루스(the Moody Blues) 앨범을 제작했다.

코델은 비틀스 노래를 골라 카커 싱글 앨범을 만들었다. 그의 인생을 바꾼 '위드 어 리틀 헬프 프롬 마이 프렌즈(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s)'다. 당초 이 노래는 비틀스 드러머 링고 스타(Ringo Starr)가 불렀다. 일이 안 풀려도 친구들이 도와주면 문제없다는 즐거운 팝이다.

카커는 이 노래를 처절한 솔(soul)로 바꿨다. 어찌나 처절하게 불렀던지, 친구 도움이 없이는 세상이 망할 것 같다. 야드버즈(The Yardbirds) 활동을 마치고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결성을 준비하던 지미 페이지(Jimmy Page)가 기타를 쳤다. 프로콜 해럼의 B. J. 윌슨(Wilson)은 드럼 세션을 해줬다. 이 곡은 영국 차트 톱 10에 13주 머물다가 1968년 11월 9일 1위를 했다. 미국에서는 68위까지 올라갔다.

비틀스 멤버들은 카커에게 축하 전보를 쳤다. 나중에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는 카커에게 "당신이 부른 곡이 그 노래의 결정판"이라고 말했다. 매카트니는 "카커와 데니 코델이 스튜디오에 찾아와서 녹음 분을 틀어줬다. 압도적이었다. 노래를 완전히 솔 음악의 송가(頌歌)로 만들어놨더라"라고 회고했다.

1969년 2월 카커 데뷔 앨범 <위드 어 리틀 헬프 프롬 마이 프렌즈>가 나왔다. 거칠고 끈적하고 강렬하면서도 진한 감성을 뿜어내는 이 앨범에는 좋은 음악가들의 좋은 곡들이 실려 있다. 내로라하는 이들이 세션으로 참여했다. 지미 페이지를 필두로, 에릭 클랩턴(Eric Clapton) 등 스타들과 연주한 앨버트 리(Albert Lee)가 기타를 연주했다.

무대에 올라 강한 인상 남긴 조 카커
 
 영국 블루 아이드 솔 가수 조 카커(Joe Cocker) 데뷔 앨범 < 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s > 앞면.
ⓒ A&M
 
트래픽(Traffic)을 그만두고 블라인드 페이스(Blind Faith)에 들어가기 직전이던 스티브 윈우드(Steve Winwood), 프로콜 해럼 키보드 연주자 매튜 피셔(Matthew Fisher)가 오르간 앞에 앉았다. 지미 페이지가 레드 제플린에 영입하려던 클렘 카티니(Clem Cattini)와, 찰스 밍거스(Charles Mingus) 등 재즈 거장 앨범에서 참여한 폴 험프리(Paul Humphrey)가 드러머다.

앨범 첫 곡은 트래픽 노래 '필링 올라이트(Feeling Alright)'. 경쾌한 록을 진득한 솔로 바꿨다. 재즈 명곡 '바이 바이 블랙버드(Bye Bye Blackbird)'도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나 헬렌 메릴(Helen Merrill) 못지않게 소화했다. 중반 이후 펼쳐지는 유려한 기타 솔로는 지미 페이지 솜씨다.

'저스트 라이크 어 우먼(Just Like a Woman)', '아이 쉘 비 릴리스드(I Shall Be Released)'는 밥 딜런(Bob Dylan) 작품이다. 진한 노래를 살짝 덮는 듯한 어쿠스틱과 일렉트릭 악기 소리 위로 가스펠 식 오르간이 솟아오른다. 라틴 팝 그룹 산타 에스메랄라(Santa Esmeralda)의 신나는 디스코 리듬으로 알려진 '도운트 렛 미 비 미스언더스투드(Don't Let Me Be Misunderstood)'도 실려 있다. 이 앨범에서는 몽롱한 오르간 위에 퍼지 기타가 멜로디를 주도한다.

카커와 크리스 스테인턴이 함께 만든 곡은 '체인지 인 루이스(Change in Louise)', '마조린(Marjorine)' 등 세 곡이다. 물론 '위드 어 리틀 헬프…'도 실려 있다.

앨범 발매 후 미국으로 건너간 카커는 세계를 강타할 우드스톡 페스티벌 사흘째인 8월 17일 무대에 섰다. 62분 간 이어진 그의 공연에서 최고의 곡은 '위드 어 리틀 헬프…'였다. 카커의 강렬한 노래와 절규, 찌푸린 얼굴과 배배 꼬는 몸짓, 기타 치는 흉내(air guitar)는 강한 인상을 줬다.

우드스톡 직후 두 번째 앨범 <조 카커(Joe Cocker)!>가 나왔다. 비틀스는 '섬싱(Something)' 등 두 곡을 넣어도 된다고 기꺼이 양해했다. 앨범은 미국 차트 11위까지 올라갔다.

마냥 비상할 것 같았지만, 문제가 생겼다. 너무 많은 무대에 섰다. 몸과 마음은 지쳤고 우울증이 그를 덮쳤다. 술과 헤로인에 기댔다. 술에 취해 무대 위에서 구토까지 했다. 카커는 절치부심했다. 다행히 다른 많은 별의 전철을 밟지 않고 재기에 성공했다.

1974년 '유 아 소 뷰티플(You Are So Beautiful)', 1982년 '업 웨어 위 비롱(Up Where We Belong)'이 히트했다. 1990년대에도 꾸준히 앨범을 냈다. 2012년 마지막이자 23번째 스튜디오 앨범 <파이어 잇 업(Fire it up)>을 냈고, 2014년 폐암으로 작고했다.

스스로 위대한 가수인 레이 찰스는 이렇게 평가했다.

"조 카커는 어리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 마빈 게이(Marvin Gaye)와 함께 가장 위대한 블루스 가수다."

엄청난 상찬이다. 레이 찰스 말을 확인하려면 카커 1, 2집과 1970년 나온 라이브 앨범 <매드 도그스 & 잉글리시멘(Mad Dogs & Englishmen)>을 들으면 된다. 장담컨대, 진한 영국 맥주가 당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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