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Next] 위기의 PF, 규제 강화 앞두고 "더 높여야" VS "과도해"

박승욱 2024. 2. 19.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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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조원대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금을 갚지 못해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을 신청한 태영건설의 운명이 결정되는 11일 서울 영등포구 태영건설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정부가 오는 4월 프로젝트파이낸싱(PF) 관련 연구 용역 결과를 근거로 시행사의 PF 추진 시 자기자본 비율을 상향 조정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찬반 의견이 갈리고 있다. 학계에서는 자본요건 상향의 수준이 너무 낮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거센 반면, 업계에서는 PF 사업 축소와 주택 공급 감소 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 시행사 자본요건 강화하나

19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기재부와 국토부가 지난해 10월 한국개발연구원(KDI)·조세재정연구원·국토연구원 등에 맡긴 부동산 PF 관련 해외 사례 조사 연구용역 결과가 오는 4월 나온다. 국내 PF 사업구조를 개선하려는 취지에서 진행하는 연구다. 해외 사례를 통해 시행사의 PF 사업 시 적정한 자기자본 비율을 정하도록 하는 안이 제안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달 21일 한 TV 프로그램에서 시행사의 자본요건 강화를 시사했다. 최 부총리는 "선진국의 PF는 기본적으로 땅은 자기 자본으로 사고 건물을 짓거나 사업을 할 때 금융을 일으키지만, 우리나라는 돈이 100 든다고 가정하면 5% 정도만 자기 돈으로 하고 나머지 95%는 대출을 일으켜서 땅부터 산다"며 한국식 PF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어 그는 "연구용역을 통해 PF 제도의 근본적인 구조 개선 노력을 병행하겠다"고 전했다.

그의 말처럼 국내 시행사들은 사업비 대부분을 대출(PF)로 충당하다 보니 유동성 충격에 취약하고 충격 발생 시 채무보증을 선 시공사까지 위기가 전이되는 상황이 반복해서 발생하고 있다. 국내 시행사들은 통상 시공사의 채무보증을 통해 자기자본의 5~10%만 확보한 채 PF 대출을 일으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시행사가 수조 원에 달하는 건설사업을 추진하고 있음에도 주택법 시행령상 법인 기준 자본금 3억원, 개인 기준 자산평가액 6억원만 있으면 시행사를 차릴 수 있다는 점은 함정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언제든 제2의 태영건설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한 가운데 5일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태영건설의 성수동 개발사업 부지 공사현장이 멈춰 서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학계 "자기자본 비율 20% 너무 낮아"

시장에서는 정부가 시행사가 PF 사업을 추진할 경우 전체 사업비의 20%를 자기자본으로 채우도록 하는 안을 추진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학계에서는 이를 두고 현재 시행업 판도를 바꾸기에는 너무 약한 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시행사의 자기자본 비율이 상향되더라도 자본력 없는 시행사가 개발사업을 이어가는 상황은 되풀이될 뿐이라는 것이다.

손재영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PF의 문제는 시행사가 자기자본이 없는 상태로 사업을 진행하고 리스크를 건설사 등으로 떠넘기는 것에 있다"며 "자기자본 비율을 더 늘려 일정한 자본력을 지닌 시행사가 부동산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이어 "시행사가 토지가격의 30%를 책임지는 방식 등도 고려해야 한다"며 시행사가 자기자본을 투입을 늘리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 사례와 비교했을 때도 규제 강도가 떨어진다. 한국금융연구원이 지난해 6월 공개한 ‘우리나라 부동산 PF 구조의 문제점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시행사가 총사업비의 30% 정도를 마련하고 토지 매입 시 대출 비율은 40% 수준이다. 한문도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의 PF 규제에 대해 "시행사의 신용이나 안정성은 높아지겠지만 해외 사례와 비교할 때 부족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업계 "PF 시장 위축 가능"

반면 시행사의 자기자본 비율을 20%보다 높게 규제할 경우 PF 사업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자본 비율을 높일수록 PF 사업을 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며 "자기자본 비율 20%도 충분히 실효성이 있을 수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이전 저축은행을 포함한 제2금융권에서 PF 문제가 발생한 후로 저축은행에서 대출받는 시행사의 자기자본 비율이 높아진 바 있다"며 "이번 정책도 저축은행에서 자기자본 비율을 올린 선례를 통해 검토 중인 대책"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시행사 자기자본 비율 상향 자체에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다. 한국부동산개발협회 관계자는 자기자본 비율 상향 조정에 대해 "만약 5000억원 규모 사업을 진행한다면 1000억원을 마련해야 하는데 이 역시 쉽지 않은 일"이라며 "회원사와 다른 개발사 역시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시행사의 자기자본 비율이 오른다면 그만큼 PF 사업이 위축돼 향후 주택공급에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 시행사 관계자는 "시행사 중 자본력이 탄탄한 데가 많이 없다"며 "시행사 입장에선 브리지론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데, 사업비 20%를 확보하라고 한다면 시행사업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승욱 기자 ty161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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