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얼음호수 위에서 접한 정통 사륜구동의 맛

최대열 2024. 2. 17.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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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호수 위 무한질주 사륜구동 묘미 제대로
450마력 고성능 라인업 RS4 아반트 주행
사륜구동 시스템 콰트로 눈길서 진가

핀란드 헬싱키에서 북쪽으로 1000㎞ 정도 가면 무오니오라는 마을이 나온다. 북극권에서도 위로 200㎞가량 떨어진 외진 곳으로 1월이면 오전 10시쯤 동이 트고 오후 2시면 해가 진다. 시선이 닿는 곳은 죄다 설경과 자작나무뿐이다. 녹지 않은 눈 위에 또 눈이 쌓여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을 밟으면 허리까지 빠진다.

독일 고가 자동차 브랜드 아우디는 북유럽 한적한 시골 동네에서 해마다 아이스 익스피리언스라는 행사를 연다. 말 그대로 꽁꽁 언 호수 위에서 고성능 차를 마음껏 몰아보는 체험 프로그램이다. 숙소에서 차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사르킬롬폴로라는 호수가 무대다. 1.25㎢, 축구장 170개 정도 크기의 얼음 호수 위에는 어른 무릎 높이까지 눈이 쌓여 있다. 이곳에 구불구불한 길을 낸다. 짧은 코스는 370m, 긴 곳은 3㎞에 달하는 다양한 주행로 7곳의 총 길이는 13㎞가 넘는다.

아우디 고성능모델 RS4 아반트. 아이스 아이스 익스피리언스에서 2인 1조로 운전한다.[사진제공:아우디코리아]

잘 미끄러지면 더 안전…익숙해진 드리프트

수많은 운전 ‘덕후’가 꼽는 인생 버킷리스트 가운데 하나로 아이스 드라이빙을 꼽는 건 평소에는 엄두도 못 낼 경험을 원 없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상 완성차 브랜드가 진행하는 주행 체험 행사는 인스트럭터의 통제 아래 진행하는 탓에 성능을 제한적으로만 접하는 일이 빈번한데, 이곳은 초급 단계에서도 앞부분 간단한 이론교육을 마친 후 최소한의 안전기준만을 지킨 채 개별적으로 운전을 즐길 수 있다.

인스트럭터는 무전기로 필요할 때마다 가속페달이나 브레이크를 밟아라, 반대로 조향해라 등의 지시를 내린다. 간혹 조수석에 동승해 부족한 부분을 설명하거나 본인이 직접 택시 드라이빙을 시연해준다.

아우디 아이스 익스피리언스 핀란드 숙소에 대기중인 RS4 아반트 차량. 오전 8시인데도 어둡다.[사진:최대열 기자]
아우디 아이스 익스피리언스에서 주행중인 아우디 RS4 아반트

1.5m 두께의 얼음 호수 위 야트막한 눈으로 된 코스는 ‘펀 드라이빙’을 위한 최적의 장소다. 일정 속도를 넘긴 상황에서 빠르게 운전대를 돌리면 차가 미끄러진다. 최근 나오는 차에 필수 기능으로 들어가는 차체자세제어장치(ESC)가 작동한다면 미끄러지는 즉시 제동이 걸리거나 엔진 출력이 바뀌는 만큼 이곳에서는 ESC를 꺼둔다.

가속하거나 제동하면서 차량 무게중심을 앞뒤로 옮겨보고 그에 따라 어떻게 조향해야 하는지를 몸으로 익혀본다. 초반에는 차가 미끄러지는 상황이 어색해 코스를 벗어나는 일도 종종 있었는데 이내 익숙해졌다. 운전에 능숙한 편이 아닌데도 S자 코너에서 차를 미끄러트린 후 간단한 드리프트를 하는 게 가능해졌다.

처음이 낯설 뿐 몇 차례 하다 보면 요령이 생긴다. 속도를 높이고 더 큰 회전구간에서 과감한 시도도 해본다. 코스 경계벽 식으로 있는 무릎 높이만큼의 눈은 차체에 손상을 최소화하면서도 주행 경로를 직관적으로 알려준다. 코스를 벗어나지 않는 게 좋지만 이탈해도 차량에 무리가 크지 않다는 얘기다. 제어를 제때 못 해 코스 밖으로 튕겨 나가면 호수 한쪽에서 지켜보던 트랙터가 와서 차를 직접 끄집어내 준다. 이틀 반나절 간 같이 체험하는 그룹에서 트랙터 호출 횟수를 세거나 코스 최단 시간 주행기록을 따져 상품도 준다.

주행중 코스를 벗어나면 트랙터가 달려와 차량을 직접 끌어내 꺼내준다.[사진:최대열 기자]
선회중인 아우디 RS4 아반트[사진제공:아우디코리아]

"더 빠르고 튼튼하다" 눈길서 드러난 콰트로 실력

아이스 익스피리언스에서 모는 차는 아우디의 고성능 라인업 RS(Renn Sport) 4 아반트다. 가장 재미있게 운전한다는 준중형급 크기에 왜건형 모델로 국내엔 출시되지 않는다. 크지 않은 차체에도 6기통 트윈터보 엔진을 써 450마력 힘을 낸다. 1900~5000rpm 사이 토크는 600Nm으로 초반 가속감이 경쾌하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3.9초 만에 간다. 넉넉한 힘을 내는 엔진에 8단 딥트로닉 변속기를 맞물렸다.

아우디의 상시 사륜구동 시스템 콰트로의 진가는 눈길에서 두드러진다. 일반 주행 시 뒷바퀴 축에 60, 앞쪽에는 40씩 힘을 나눈다. 한쪽 축이 원치 않게 미끄러지면 대부분이 자동으로 빠르게 다른 쪽으로 전달된다. 앞쪽과 뒤쪽 축간 힘의 배분이 70대 30에서 15대 85까지 주행 상황에 따라 조절해준다.

아우디 고성능 전기차 RS e트론 GT[사진제공:아우디코리아]

편의사양은 물론 주행의 영역도 전자식 제어가 대세지만 아우디는 기계식 네 바퀴 굴림을 고수하고 있다. 수많은 센서로 주행 상태를 살펴 신호를 보내 제어하는 것보다 기계식이 훨씬 직관적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고유의 차동장치(디퍼런셜)가 그 역할을 한다. 회전 시 좌우 구동력을 배분하는 장치로 경사진 부품으로 인해 힘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구동축 방향으로 보낸다. 이렇게 넘어온 힘이 마찰 디스크에 작용해 잠금 토크가 생성되고 토크가 전달된 바퀴는 접지력을 더 얻는다고 한다.

고가 브랜드로서의 업력은 같은 독일 경쟁사인 메르세데스나 BMW보다 짧지만 아우디의 유럽 내 판매량이 경쟁사를 웃도는 건 이러한 원리를 적용한 콰트로 덕이 크다. 유럽 전역은 비교적 겨울이 뚜렷한 터라, 빠른 응답성에 탄탄한 내구성까지 갖춘 사륜구동 시스템을 더 쳐준다는 얘기다. 아우디는 과거 군용트럭 등에 쓰던 사륜 시스템을 승용에 일찌감치 도입, 1980년 첫선을 보였다.

당시 석유파동 등으로 차량 효율을 중시하던 기류가 있어 승용차에 무거운 사륜구동 시스템을 적용하는 건 불필요하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이런 편견을 깬 곳이 아우디다. 콰트로 공개 이듬해부터 월드랠리챔피언십(WRC) 등 각종 경주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아우디가 도입한 후 경쟁 완성차 회사도 잇따라 저마다의 기술로 사륜구동 시스템을 내놨다.

아우디 아이스 익스피리언스 핀란드에서 모는 차량은 스터드가 박혀 있다. 겨울용 타이어를 주로 만드는 현지 메이커 노키안의 제품으로 눈길 주행에 적합하다.[사진:최대열 기자]
아우디 아이스 익스피리언스

겨울 땅서 빚은 기술, 아우디 일구다

독일 폭스바겐그룹 회장과 감독이사회 의장 등을 지낸 페르디난트 피에히와 아우디 직원들이 사륜구동을 개발해 시험한 곳도 체험행사가 열린 무오니오 일대라고 한다. 핀란드는 겨울이 길어 지금도 개발 중인 차량의 혹한기 성능시험을 주로 하는 곳으로 꼽힌다. 피에히는 포르셰·폭스바겐을 창업한 페르디난트 포르셰 박사의 외손자로 그 역시 자동차 역사에서 손꼽히는 엔지니어다.

포르셰에서 경주용 차량 개발을 둘러싸고 회사와 갈등을 빚은 피에히는 아우디로 넘어가 콰트로를 비롯해 5기통 엔진과 디젤 터보 직분사엔진, 알루미늄 차체 등 지금의 아우디를 있게 한 성과를 일궜다. 아우디가 파는 차량 가운데 콰트로 기술을 적용한 모델이 전 세계 기준 40%, 우리나라에선 80%가 넘는다.

피에히는 당초 사륜구동 세단에 큰 관심이 없었으나 시험담당 엔지니어와 개발팀이 만든 사륜구동을 직접 본 후 생각을 바꿨다. 당시 비밀리에 프로젝트를 진행해 시험한 곳이 핀란드였다. 1986년 40도 경사에 가까운 스키 점프대를 오롯이 차의 성능만으로 올라가는 TV 광고 영상도 핀란드에서 찍었다.

1986년 아우디가 100 CS 콰트로로 스키점프대를 올라가는 광고 촬영 당시 모습[사진제공:아우디코리아]

무오니오=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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