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라이팅에 속끓는 지구

박상은 2024. 2. 17.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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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 파괴하는 이상기후
때이른 봄꽃·치솟는 밥상물가
엘니뇨 빈번 겨울이 사라진다


2023년은 지구 역사상 가장 뜨거운 해였다. 한반도 역시 관측 이래 가장 높은 연평균 기온을 기록하며 기후 역사를 다시 썼다. 해는 바뀌었지만 ‘끓어오른 지구’가 보내는 경고음은 여전하다. 때 이른 봄날씨처럼 이상기후는 더 자주, 더욱 예상치 못한 형태로 찾아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는 더운 날씨 하나로 기후 위기를 설명할 수 없는 만큼 기후재난 대응체계를 갖추는 데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측 이래 최고…식지 않는 한반도

16일 기상청의 ‘2023년 연 기후분석’ 결과를 보면 지난해 한국의 연평균 기온은 13.7도였다. 기상 관측이 시작된 1973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종전 1위였던 2016년(13.4도)보다 0.3도 높고 평년(12.5도)과 비교하면 1.2도나 상승했다. 역대 연평균 기온을 살펴보면 최근 5년(2019~2023년)이 10위권 안에 전부 들어 있다. 그만큼 한국이 짧은 주기로 최고기온을 경신하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해에는 12개 달 중 무려 9개 달이 평년보다 기온이 높았다. 특히 3월은 평년보다 3.3도 이상, 9월은 평년보다 2.1도 이상 더운 날씨를 보였다.

바다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우리나라 해역 해수면 온도는 연평균 17.5도로 최근 10년 사이 두 번째로 높았다. 국립수산과학원이 인공위성을 이용해 조사한 한반도 해역 표층 수온 통계에선 이보다 높은 연평균 19.8도를 기록했다. 1990년 관련 조사를 시작한 이래 최고치이자 최근 20년 평균 표층 수온보다 0.6도나 높은 수치다.


과일값 고공행진…오징어도 급감

극심했던 이상기후는 밥상물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올해 설 연휴를 앞두고 과일값이 폭등하면서 인플레이션을 끌어올리는 주범이 됐다. 잦은 비와 이상고온, 병해충으로 생산량이 급감한 탓이다.

통계청의 ‘1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신선과일은 28.5% 올라 2011년 1월(31.9%)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상승했다. 이 가운데 사과와 배 물가는 각각 전년 동월 대비 56.8%, 41.2% 급등했다. 비교적 서늘한 기후에서 자라는 사과·배는 기후 변화에 취약한 대표적 품종이다. 농촌진흥청은 기후 변화로 2070년에는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만 사과를 재배할 수 있을 거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바다 수온이 높아지며 어업 피해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오징어 어획량은 2만3493t으로 전년보다 36% 감소했다. 최근 5년 평균과 비교하면 54%나 줄었다. 이상기후 중 고수온으로 인한 연근해의 양식업계 피해는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1250억원에 달한다.

한 달 빠른 초고속 봄꽃…생태계 혼란

올해 벌써 새 기록을 쓴 기후 현상도 있다. 제주에선 지난달 15일 봄을 알리는 매화가 처음 개화했다. 평년보다 32일이나 이른 시점이었다. 나무의 꽃이 80% 이상 개화하는 ‘만발’ 시점도 평년보다 46일 빨랐다.

성급한 봄날씨에 맞춰 벚꽃 개화도 평년보다 하루 혹은 일주일 넘게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자연히 지역별 봄꽃축제도 일제히 앞당겨질 전망이다. 경남 창원시는 올해 62회를 맞은 진해 군항제를 3월 22일 개막하기로 했다. 1963년 1회 당시 4월 5일 개막한 것과 비교하면 16일이나 당겨진 셈이다.

전문가들은 겨울이 짧아질수록 개화 시기와 곤충이 깨어나는 시기가 어긋나며 동식물의 먹이사슬이 깨지는 ‘생태적 불일치(ecological mismatch)’가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동면에서 깨어난 벌이 꿀을 모을 수 있는 기간이 줄어드는 것이다. 기상청은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으면 21세기 후반기에 ‘2월 벚꽃’도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엘니뇨로 더 복잡해지는 기후 예측

기후 변화는 올해 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그 원인 중 하나가 지난해 5월부터 지속된 ‘엘니뇨’ 현상이다. 엘니뇨는 열대 동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6개월 이상 평년보다 높은 현상을 말한다. 엘니뇨 감시 구역의 해수면 온도는 지난해 7월 평년 대비 1도 올랐고, 이후 지속 상승해 12월에는 2.1도까지 높아졌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올해 4월까지 엘니뇨가 지속되고, 그 여파로 지난해보다 2024년의 기온이 더 높아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반도의 경우 엘니뇨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지리적 위치는 아니다. 다만 엘니뇨 시기에는 일본에 고기압이 발달하고, 남쪽에서 수증기가 유입돼 한국의 겨울철 기온이 평년보다 높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지구온난화에 엘니뇨가 더해져 전 지구적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바다가 더워지면 수증기의 양이 많아지고 그만큼 태풍의 위력도 커진다. 북극의 온난화를 가속해 제트기류가 약해지면 한반도에 한파가 불어닥치기도 한다. 엘니뇨가 지구의 대기와 해류 흐름을 바꿔 한국에도 평소와 다른 형태의 이상기후를 불러올 수 있는 것이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물이 끓을 때 물방울이 여기저기서 폭발적으로 터지듯 현재 기후도 90도에서 물이 끓는 100도 시스템으로 바뀌어 산발적으로 이상기후가 일어나고 있다”며 “앞으로의 기후 상황은 사실상 예측이 어렵고 기후 변화가 심해질 것이라는 사실만 분명하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어 “특정 해에 폭염이 심하지 않더라도 장마나 가뭄은 더 극심해질 수 있다”며 “현 시점에서 기후재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예측보다는 모니터링을 통한 대응 시스템을 빨리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했다.

세종=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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