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봐야 정치를 논하지"…건국전쟁·길위에 김대중 '영화판도 총선전쟁'

이이슬 2024. 2. 15.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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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극장가 정치 다큐 이례적 관심
'건국전쟁', '길위에 김대중' 잇따라 선전
영화로 지지층 결집 나선 여야 정치권

4월10일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총선 전쟁'이 영화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 등 대중문화계로 옮겨붙었다. 정치색이 짙은 영화들이 잇따라 개봉하자 정치권은 대중을 움직이기 쉬운 영화를 발판 삼아 지지층 결집에 나서고 있다. 정치와 관련 없는 콘텐츠까지 정치색을 끼워 넣을 정도로 '영화 정치'가 기승을 부리는 모습이다.

[사진출처=연합뉴스]

'건국전쟁' 여권 응원 속 '조용한 흥행'

이승만 전 대통령 생애와 정치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감독 김덕영)은 이 전 대통령의 젊은 시절 독립운동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 재임 기간 농지 개혁과 같은 업적을 부각했다. 이 전 대통령의 사진과 영상 자료, 그의 며느리 조혜자 여사를 포함한 주변 인물과 전문가 인터뷰 등으로 구성했다.

15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을 보면 '건국전쟁'은 지난 13일 기준 5만2217명을 모아 박스오피스 2위에 올랐다. 설 연휴를 앞두고 개봉한 상업영화 여러 편을 제친 성과다. 지난 1일 개봉해 누적 38만2158명이 영화를 봤다. 제작비는 2억~3억원. 지난 10일 일찌감치 손익분기점(BEP) 20만명을 돌파했다. CGV 집계를 보면 '건국전쟁' 관객 연령대 예매 비율은 50대(45.4%), 40대(26.1%), 30대(19.6%), 20대(8%), 10대(0.9%) 순이다. 성별 비율은 여성(51.2%)이 남성(48.8%)보다 높다.

최근 정치 관련 다큐멘터리 영화 중 반향을 일으킨 건 '그대가 조국'(2022·누적 33만명)과 '문재인입니다'(2023·누적 11만명) 정도다. '그대가 조국' 제작비는 4억원에 불과했지만 후원금 모금을 통해 13억원 넘는 돈이 모였고, 누적 매출액은 31억1045만원을 기록했다. '문재인입니다'는 전주영화제에서 영화제작지원사업으로 선정돼 1억원을 지원받아 완성됐다. 누적 매출액은 11억3366만원이다.

역대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정치 다큐 영화'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를 담은 '노무현입니다'(2017)로, 누적 관객수 185만4867명을 기록했다. 이어 '건국전쟁' '그대가 조국' '공범자들'(2017·26만명) '무현, 두 도시 이야기'(2016·19만명) 순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 영화관에서 영화 '건국전쟁' 관람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사진출처=연합뉴스]

'건국 전쟁'의 흥행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등 여권 정치 인사들이 일제히 관람 후기를 전하며 관심을 끌어모은 영향이다. 영화에는 한 위원장이 법무부 장관 시절인 지난해 7월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에 연사로 참여해 "1950년 이승만 정부의 농지개혁이야말로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오는 가장 결정적 장면이다. 북한의 침략에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며 이 전 대통령의 토지개혁에 찬사를 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한 위원장은 최근 서울 여의도 한 영화관에서 비대위원장실 관계자들과 영화를 관람한 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으신 것과 농지개혁을 해낸 것. 이 두 가지가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많이 달랐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덕영 감독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한 위원장의 후기를 적극적으로 알리며 흥행에 기름을 부었다. 그는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봤다. 영화 건국전쟁' 장문의 글에서 "한 위원장의 말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번영과 발전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명확히 하고 있다. 그의 연설 장면을 넣은 것도 거기에 있다. 고마웠다"고 적었다.

오세훈 서울시장,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여당 의원들도 줄줄이 '건국전쟁' 관람 후기를 전하며 관심을 독려했다. 급기야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섰다. 윤 대통령은 최근 참모들에게 "역사를 올바르게 알 기회"라며 '건국전쟁'에 대해 언급했다.

'길위에 김대중' 스틸[사진제공=아이오케이컴퍼니, 명필름]

야권 인사 집결한 '길위에 김대중'…지방·해외 장기상영

김대중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 '길위에 김대중'(감독 민환기)도 이례적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는 청년 사업가 출신의 김대중이 갖은 고초를 겪으며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과정과 1987년 대선 후보로 나서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길위에 김대중'은 지난달 10일 개봉해 첫 주 5만5000명을 동원했다. 다큐 영화가 상영 첫 주 5만명 이상 관객을 모으는 건 흔치 않다. '그대가 조국'이 첫 주 15만7533명, '문재인입니다'는 7만4721명을 각각 기록하며 주목받았지만, 이들에 비해 이벤트 개최, 화제성이 떨어지는 점을 고려할 때 유의미한 성과다.

영화는 한 달 넘게 장기 상영을 통해 꾸준히 관객을 끌어모으며 전날 기준 누적 관객수 12만2998명을 돌파했다. 제작비는 5억원으로, 손익분기점(12만명)을 넘겼다. 알려진 제작비는 4억3000만원이었으나 개봉을 앞두고 제작사 명필름이 진행한 1차 펀딩에 7100명이 참여해 4억2600만원을 모았다. 2차 펀딩을 포함해 총 5억원가량이 모였고, 이후 금액이 손익분기점으로 책정됐다. 시민 단체를 중심으로 전북 익산, 강원 철원 등 극장 밖 특별 상영회까지 이어지며 보기 드문 흥행을 거뒀다.

해외 반응도 심상치 않다. 해외 상영위원회를 꾸려 재외동포 상영으로 열기를 이어가고 있다. 영화는 해외 1월 6일을 남아프리카 요하네스버그를 시작으로 미국 시애틀, 필라델피아, 휴스턴, 뉴욕, 오렌지카운티, 캐나다 토론토, 중국 다롄, 상하이, 칭다오에서 상영됐다. 당초 해외 15개국 30개 도시에서 동시 상영되던 영화는 37개 도시로 확대됐다. 다큐멘터리 영화가 국내와 동시에 남미 3개국에서 상영회를 연 것은 '길위에 김대중'이 처음이다.

'길위에 김대중' 관람 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모습[사진출처=아이오케이컴퍼니, 명필름]

야권 정치인들은 결집했다. 영화를 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한민국 정치사에 정말 큰 거목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바꿔 오신 삶을 잘 조명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부인 김정숙 여사, 더불어민주당 양산갑·을 지역 당원 200여명과 함께 단체 관람했다. 문 전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셨을 때 장례식날 권양숙 여사 앞에서 오열했던 김 전 대통령의 모습이 가슴에 가장 간절하게 남아있다"고 했다. 이어 "김 전 대통령께서 살아계셨다면 지금의 민주주의, 민생경제, 남북 관계 3대 위기를 통탄하면서 우리에게 행동하는 양심이 돼 달라고 신신당부하셨을 것 같다"고 전했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를 비롯해 강기정 광주시장, 김관영 전북지사 등도 영화를 봤다.

초밥에 형수까지…이재명 노골적 풍자?
'살인자ㅇ난감' 화면캡처[사진출처=넷플릭스]

넷플릭스 시리즈 '살인자ㅇ난감'은 설 연휴 첫날인 지난 9일 공개됐다.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이탕(최우식)과 그를 쫓는 형사 장난감(손석구)의 이야기를 다룬 범죄 스릴러로, 2010~2011년 연재된 동명 웹툰을 각색한 콘텐츠다. 영화 ‘사라진 밤’(2018),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2019) 이창희 감독이 연출했다.

'살인자ㅇ난감' 공개 직후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7회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연상시키는 배역이 등장한다는 주장이 나오며 정치색 논란에 휩싸였다. 닮은꼴로 지목된 인물은 돈을 방패 삼아 온갖 비리를 일삼는 형성국 회장이다. 백발을 빗어넘긴 머리 모양과 검은 테 안경 등 외형이 이 대표와 닮았다는 지적이다. 또 수감 중인 그의 죄수 번호 4421은 이 대표 연루 의혹이 제기된 대장동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 성남시로부터 대장동 아파트 부지 6개 블록을 공급받은 것으로 알려진 제일건설이 올린 분양 수익금 총액(4421억원)과 일치한다는 주장이다. 또 등장인물 '형지수'가 이 대표의 일련의 사건과 관계된 '형수'라는 단어를 연상시킨다는 반응도 나왔다.

형성국 회장이 구치소에서 초밥을 먹는 장면이 이 대표의 부인이 법인카드로 초밥을 결제했다는 의혹을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초밥 장면과 죄수번호 장면 모두 원작에 없는 설정이다. 이를 두고 여야 지지층이 온라인상에서 치열한 설전을 벌였다. "총선을 앞두고 야당 대표를 풍자한 것은 온당치 않다"는 의견과 "닮은 배우를 두고 의도적 연출이라 보는 건 꿰맞추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관해 넷플릭스 관계자는 아시아경제에 "사실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이창희 감독은 14일 오후 아시아경제에 "억울하고 황당하다"며 "연출자 개인 견해를 드라마에 교묘하게 녹이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초밥 설정에 관해서는 "클리셰(틀에 박힌 극 설정)일 뿐"이라며 "기업 회장이 구치소에서 먹을 만한 고급 도시락을 떠올렸을 때 초밥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백발은 실제 배우(승의열)의 원래 외형일 뿐, 염색을 시킨 게 아니다. 검은 테 안경 역시 마찬가지다. 올백으로 단정하게 한 것일 뿐 의도는 아니다"고 했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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