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하나님의 아름답고 두려운 사랑을 기억하라

2024. 2. 14.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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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뒤 엄청난 일을 행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예수의 행동을 주시하며 살피던 이들은 이 사건을 보며 아예 예수를 죽이려고 계획합니다.

하지만 그 감각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무뎌졌습니다.

그 십자가에는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아름답고 두려운 사랑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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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1장 14~18절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막 11:15)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막 11:17)

주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뒤 엄청난 일을 행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예수의 행동을 주시하며 살피던 이들은 이 사건을 보며 아예 예수를 죽이려고 계획합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막 11:18)

예수를 죽이려는 태도는 스스로 강도임을 시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처음부터 강도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살면서 강도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단순한 강도가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 17절에 등장하는 ‘강도의 소굴’은 헬라어 원문으로 ‘스페라이온 레스톤’으로 읽습니다. ‘강도’로 번역된 ‘레스톤’은 복수형입니다. 더 정확한 번역은 ‘강도의 소굴’이 아니라 ‘강도들의 소굴’, 좀 더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강도떼의 은거지’입니다.

더 주의해서 읽은 부분은 ‘소굴’로 번역된 ‘스페라이온’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엔 ‘도피처’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의미를 살펴 번역하면 ‘강도떼의 도피처’가 됩니다. 거룩한 성전이 강도의 도피처가 된 것입니다.

어쩌다가 이런 사태까지 벌어진 걸까요. 본문 15절에 등장하는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과 ‘돈 바꾸는 자들’에게 그 이유가 있습니다. ‘돈’으로 상징된 욕망 때문입니다. 돈 때문에 성전을 강도 떼의 도피처로 삼은 것입니다.

이들도 처음에는 성전과 하나님을 두려워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 감각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무뎌졌습니다. 더욱이 함께 하는 동료들이 생기면서 서로에게 정당성을 부여합니다. 그때부터 기도는 욕망의 추구로 변질됩니다. 욕망과 복락만 추구하는 기도는 기도하는 집을 강도 떼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더 심각한 일은 따로 있습니다. 이같이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의 물질적 욕망 때문에 사람들은 성전에서 기도하는 것조차 힘들어졌습니다. 부패한 제사장과 지도자들이 온전한 제사를 인도하지 않은 것은 분명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은 단순한 강도가 아니었습니다. 기도를 빼앗은 강도였습니다. 신앙을 강도질 한 셈입니다. 주님이 심하게 분노하신 이유가 당연해 보입니다. 예수는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고,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자들의 의자도 엎어버렸습니다.(막 11:15)

본문의 타락한 종교지도자들은 분명히 하나님을 예배하던 제사장이었습니다. 레위지파 가족들입니다. 그런데 돈과 물질, 성공과 축복이 그들을 망쳤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들은 예수를 두려워했습니다.(막 11:18) 아직까진 믿음을 회복할 가능성이 남아있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들에겐 두려움이 희망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위기는 두려움의 상실에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복음이 가벼워지고 믿음의 사람들은 지나치게 물질적으로 변했습니다. 다시 주님의 십자가를 주시합시다. 그 십자가에는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아름답고 두려운 사랑이 있습니다. 사순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사순절 기간 그 사랑을 묵상합시다. 사순절을 지나면서 주의 고난에 참여하길 원합니다.

하정완 목사(꿈이있는교회)

◇꿈이있는교회는 조국의 잃어버린 청년들을 회복하라는 비전으로 걸어온 교회입니다. 청년들의 회복이 교회의 영적 도약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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