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가 기도하자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다는 이 산
문화관광해설사입니다. 향토의 사회, 문화, 역사, 설화와 자연에서 사실을 확인하여 새롭게 인식하고 의미와 가치를 찾아서 스토리텔링으로 간략히 엮어갑니다. <기자말>
[이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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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안고원 내동산 |
ⓒ 이완우 |
전북 진안 내동산(萊東山, 887m)은 진안군 백운면, 성수면과 마령면에 걸쳐 있다. 선각산 천상데미의 데미샘에서 발원한 섬진강 상류가 이 내동산의 남쪽, 북쪽과 서쪽을 지름 7km의 원둘레를 그리며 감입곡류 하천으로 흐른다. 이 산에는 너도바람꽃, 백양꽃, 흰괭이눈, 태백제비꽃과 노각나무 등 희귀식물을 포함하여 570여 종의 다양한 식생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산기슭 소나무 숲에서 부는 바람이 한결 부드럽게 느껴지는 2월 중순에 마이산 전망대로 불리는 진안 내동산을 찾아갔다. 이 산은 암봉과 암릉이 겹겹이 쌓였다. 내동산 동쪽의 백운면 덕현리 동산마을을 산행 들머리 삼아서 출발했다. 폭우로 노반의 흙이 유실되어 너덜바위 지대로 변한 임도를 따라 0.8km 올라가니 내동폭포에 이른다. 내동폭포는 때로는 15m 수직 절벽으로 침묵하다가, 비가 많이 내리면 웅장한 폭포로 변한다. 오늘은 폭포에 실개천이 세로로 걸린 듯하고, 폭포 아래 암반에는 무지개가 걸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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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안 내동산 정상부 선바위 |
ⓒ 이완우 |
백마산(白馬山)이라고도 부르는 내동산 정상에 올라섰다. 섬진강 물줄기가 그림처럼 흐르며 백운면 들녁을 넓게 펼친 진안고원(鎭安高原, 해발 300~400m)은 그윽하게 구름에 덮여 향수 어린 풍경이다. 장수 팔공산에서 가지를 친 산줄기를 타고와서 진안 성수면 구신리에 노적바위가 머물러 있는데, 전설에는 이 바위가 갈라지면서 백마가 뛰어나와 달리다가 이 백마산이 되었다고 한다.
백마산은 말 달리는 형상으로서, 산을 이루는 주암릉이 마이산 방향으로 휘달리고 있다. 백마산을 중심으로 한 진안고원에는 말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 옛지명이 마돌현(馬突縣)인 마령면(馬靈面), 중생대 백악기 역암의 타포니로 유명한 마이산(馬耳山), 팔공산 기슭의 안부를 넘어 진안으로 진입하는 고개인 마령(馬嶺) 등이 있다. 신령스러운 백마가 이 백마산 산 위에서 노닐었다는 설화에서 '마령(馬靈)'이라는 지명이 생겼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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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안고원 백운 들녘과 알프스 연봉 조망 |
ⓒ 이완우 |
진안고원의 '알프스'를 이루는 네 산은 개성이 뚜렷하다. 팔공산은 금남호남정맥을 대표하는 으뜸 산으로 천황지맥, 영대지맥과 성수지맥을 내어보낸다. 이 팔공산 기슭에서 섬진강과 금강이 발원하며, 임실 성수산 상이암 설화가 전승한다. 선각산은 신선이 춤추는 선인무수(仙人舞袖)의 형상이며, 천상데미 품에서 솟는 데미샘에서 섬진강이 첫물길을 튼다. 덕태산은 백운동 계곡을 품고 있는 청정자연의 도가적 풍모로 백운면의 유래가 된다. 진안 백운면 성수산은 마이산으로 백두대간의 기운을 연결해 주며, 예로부터 아름다운 산이라며 미재산(美哉山)이나 미방산(美方山)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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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안 마이산 원경, 진안 내동산 정상에서 조망 |
ⓒ 이완우 |
섬진강 발원지인 데미샘에서 흘러내린 강물은 반송리, 동창리, 운교리 일대에 충적지를 발달시켜 산간 고지에서는 제법 넓은 평야 지역이라 할 수 있다. 내동산 정상에서 둘러보는 섬진강 유역 들녘의 가을 황금물결과 산, 구름, 강이 어울려 형성한 풍경은 그림처럼 아름답다. 동북서 삼면(三面)이 섬진강 물줄기와 낮은 계곡을 따라 충적지 평야 지형이고, 남쪽은 구신치 고개로 낮은 지형이어서 내동산은 홀로 우뚝 솟아 있다. 이 지역 주민들은 오래전 시절에 전투기들이 편대를 지어 내동산을 중심으로 하늘을 선회하는 장면을 자주 보았다고 한다. 땅에서는 백마 형상의 내동산이 달리고, 하늘에서는 '하늘을 달리는 비마(飛馬)'에 비유되는 전투기가 날고 있었다.
내동산에서 내려다보이는 백운과 마령 들녘의 섬진강 상류 지역은 고려말 1380년에 이성계 장군이 남원 운봉에서 황산대첩을 이루고 개선하는 길에 임실 성수산에서 진안 마이산으로 찾아가는 길목이었다고 한다. 내동산 정상에서 고려말 이성계 장군의 조선 개업 설화가 전승되는 동남쪽의 임실 성수산과 북쪽의 진안 마이산을 고개만 돌려서 한 곳에서 조망할 수 있으니, 역사의 한 장면이 진안고원에 펼쳐지는 듯하다.
내동산 정상에서는 이 지역에 있는 동명이산(同名異山)의 성수산(聖壽山) 세 곳을 시선을 돌려가며 찾아볼 수도 있다. 남동쪽 5km에 임실 성수면 성수산(876m), 북서쪽 5km에 진안 성수면 성수산(402.5m)과 동북쪽 8km에 진안 백운면 성수산(1059.2m)이 그것이다. 가까운 지역에 이름이 같은 산이 셋이 있는 것이 우연이 아니라 임실 성수산 상이암 설화가 이 산들의 이름 형성에 강하게 작용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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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안 백운면 섬진강 도르메 물레방아 |
ⓒ 이완우 |
고려말 1380년에 이성계 장군이 남원의 황산전투를 대승하고, 임실 성수산에서 기도하며 하늘에서 '성수만세(聖壽萬歲)'를 세 번 들었다고 한다. 임실 성수산의 지장재를 넘으면 진안 백운면 반송리이다. 섬진강 물줄기 따라 백운면 들녘을 지나면 마령면의 마이산이 가깝다. 이름이 같은 세 산이 진안고원에서 '성수만세'를 외치는 듯하다. '장수 나자, 용마 난다'고 한다. 성수산의 이성계 장군이 내동산의 백마를 타고 마이산으로 행진하는 역사와 설화가 얽힌 스토리텔링을 내동산 정상에서 구성해 본다.
내동산 암릉의 칼날능선을 타고 남북을 종주하는 등산 코스는 마이산을 조망하기 좋은 장소로 인기가 높다. 내동산 정상에서 북쪽의 마이산 방향으로 내려뻗은 암릉 줄기를 타고 3.7km 마령면 방화마을로 내려왔다. 암릉을 내려오는 동안 마이산이 두 귀를 쫑긋 세우고 앞서 달리는 듯했다. 등산로의 밧줄에 몸무게를 의지하며 내려가기도 하고, 칼날능선 암릉 위를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내딛기도 하였다. 무인산불감시소를 지나고, 송이버섯이 가을에는 돋아날 울창하고 넓은 송림 지대를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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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안고원길 복수초 꽃봉오리 봄소식 |
ⓒ 이완우 |
전북 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는 백운면 운교리의 물레방아를 현지에서는 '도르메 방앗간'이라고 한다. 섬진강의 풍부한 수량으로 한때는 물레방아가 10여 개를 넘었으나, 이제는 유일한 물레방아가 하나 남아 있었다. 예전에는 물레방아 방앗간이 주민들의 공동체 공간이었다고 했다. 방아를 찧기 위해 함께 순서를 기다렸고, 끼니때면 방앗간에서 음식을 준비해 내놓았다. 또 여름밤에는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아 천렵 마당이 펼쳐졌다고 한다.
방화마을에서 섬진강을 거슬러 4.7km 걸어서 동산마을 출발지로 원점 회귀하였다. 내동산은 예전에 이 마을 주민들이 산나물과 약초를 캐러 다녔고, 땔감을 마련했던 삶의 소중한 원천이었다. 바위 너덜이 많은 산이어서, 늦은 봄에는 뱀들이 많아서 산에 들 때는 주민들 머리끝이 쭈뼛쭈뼛했다고 한다. 내동산의 왕성하고 풍요로운 생명력의 추억어린 표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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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안고원길 복수초 개화 봄소식 |
ⓒ 이완우 |
진안고원길 마른 길섶 양지쪽에 봄의 전령이라고 하는 미나리아재빗과의 복수초(福壽草, 학명 Adonis Amurensis)가 꽃을 벙긋하였다. 이 꽃에 그리스 신화의 '아도니스'와 흑룡강의 러시아어 '아무르'라는 의미가 있다. 민족의 활동 영역이었다는 부여,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였던 아무르강(흑룍강)과 연관되니, 이 꽃이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다. 진안고원길에 버들개지가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진안고원에서 봄을 알리는 복수초 꽃송이를 보니, 일제강점기의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이육사(李陸史, 1904~1944)의 시 '광야(曠野)'의 한 구절이 연상되었다. 섬진강 물줄기가 열린 진안고원은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닭 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은' 우리 역사의 시원(始原)인 시공간으로 보였다. 진안고원의 높은 산맥들이 휘달리면서도 백운들과 마령들 평원은 넓게 삶의 공간으로 펼쳐놓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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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주능선 원경, 진안 내동산 정상에서 조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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