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이국에서 준비한 설날 차례상

임경욱 2024. 2. 12.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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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 해외봉사] 한국에서보다 더 의미 있었던 설날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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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욱 기자]

외국에 나와 있으면 명절에 가장 적적하고 고국이 그립다고들 한다. 가족과 떨어져서 혼자 나와 있는 사람들은 더욱 그럴 것이다. 작년 추석에는 근무하느라 그냥저냥 지나갔다. 올 설날은 다바오 한인회에서 설맞이 행사를 준비해 한국에서보다 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다.

이곳 필리핀 다바오에는 한국인 교포들이 약 500명 정도 거주한단다. 대부분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고, 목회 활동을 하는 분들도 많다. 최고 많을 때는 2000명까지도 있었다는데, 코로나19 여파로 많은 동포들이 고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동안 와해 되다시피 한 한인회도 최근에 맹봉호 회장이 다시 조직을 추슬러 정비했단다.
 
▲ 차례상 차례상에 절을 올리는 교포들
ⓒ 임경욱
  
행사장은 워터프런트호텔 연회장에 마련되었다. 한인회에서는 최근에 이곳에 공간을 빌려 한인회 사무실을 오픈했다. 시내 중심가에 있어서 어느 지역에서나 접근성이 좋다. 30년 된 호텔은 정원이 잘 가꿔져 있으며, 바다를 끼고 있어 전망이 수려하다.
이른 아침부터 곱게 차려입은 교포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행사장 입구에 여러 벌의 남녀 한복을 준비해 둬 입고 싶은 사람은 갈아입도록 배려했다. 행사는 아침 10시에 진행되었다. 100여 명의 교포들이 참석해 성황을 이루었다. 가족단위로 아이들을 데리고 온 교포들이 많아서 행사장은 금방 축제 분위기로 바뀌었다.
 
▲ 세배 어르신들에게 세배드리는 교포 자녀들
ⓒ 임경욱
  
사회자가 먼저 참석한 분들을 소개한 후 국민의례를 시작했다. 국기에 대하여 경례,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 국민의례도 격식을 갖춰 엄숙하게 진행했다. 국민의례가 끝나고 이어서 차례상을 준비했다. 인근 한인식당에 의뢰해 준비한 한국음식들로 만들어진 한국식 차례상이다. 행사장 연단에 차례상을 차려놓고 모두들 절을 올렸다. 새해에 행과 복, 그리움 각자의 마음속에 그 무언가를 소망하면서 조상들에게 절을 올린 것이다.
설날 세배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어릴 적 용돈을 받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기도 했다. 차례상에 절을 마친 아이들이 연장자 세 분의 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렸다. 어르신들은 언제 준비했는지 세뱃돈을 아이들에게 나눠 주신다. 참 보기 좋은 풍경이다. 자칫 배우지 못하고 넘어갔을 우리의 풍습을 이렇게 모여 전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 부채춤 부채춤을 추는 다바오 한필직업훈련센터 학생들
ⓒ 임경욱
  
아이들도 이런 기회를 통해 조국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우리의 조국과 문화를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다. 뒤이은 행사는 삐에로 공연이다. 나와 함께 봉사활동을 하는 최경식 단원이 여러 종류의 풍선으로 다양한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아이들에게는 단연 최고 인기다. 관객을 울리고 웃기는 재주를 지녀 참석자들을 열광하게 했다.

다음은 부채춤 공연이다. 내가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학교의 여학생들이 지난해 코리아 페스티벌에서 선보인 춤이다. 한복과 부채 등 소품을 모두 한국에서 공수해 와 동영상을 보고 틈틈이 연습한 기량이란다. 다바오 한인회의 설맞이 행사를 위해 요 며칠 저녁 늦은 시간까지 연습을 했다. 한국인이 아닌 필리핀의 여학생들이 추는 부채춤이라 당연히 오늘 행사의 대미를 장식했다.

점심 식사로는 한국식당에서 준비한 떡국을 맛있게 나눠 먹었다. 낯선 이국에서 먹는 떡국이라니, 맛도 맛이지만 감회가 새롭다. 초대받아 참석한 몇몇 이곳 현지인들도 익숙하지 않은 음식일 텐데 아주 맛있게 잘 먹는다. 부채춤 추느라 땀을 뺀 학생들도 맛있다고 두 그릇씩 먹는다. K-Food가 이렇게 홍보되는구나 싶다.
 
▲ 윷놀이 설날 윷놀이를 즐기는 교포 가족들
ⓒ 임경욱
  
점심 식사를 마치고는 우리나라 민속놀이를 즐겼다. 투호, 제기차기, 윷놀이 도구를 준비해 편을 갈라 즐길 수 있었다. 이곳에서 오래 거주한 교포들의 아이들은 처음 구경했을 우리의 민속놀이다. 요령을 모르는 아이들에게 진행요원이 일일이 하는 방법을 알려주면서 진행하려니 게임은 더디기만 했다. 우승자에게는 조그만 상품까지 준비해 놀이에 흥을 더했다.

그래도 신나게 게임에 임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니 역시 고국의 피는 속일 수 없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먼 이국에서도 한 민족으로 서로 단합하고 단결하여 설날을 축제의 시간으로 만들어준 교포들이 너무 고맙고 자랑스럽다. 이런 마음들이 모여 살아간다면 어딘들, 무엇인들 두려울 게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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