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해도 먹을 사람 없고, 세뱃돈 뽑아도 줄 조카 없더라"

이우림 2024. 2. 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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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을 앞둔 6일 오전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 한 전집에서 상인이 전을 팔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 분당에 사는 주부 김모(63)씨는 올해 설음식 가짓 수를 대폭 줄였다. 양가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후 친척들과 명절에 모이지 않는 데다가 서울에서 자취해 수시로 보는 두 딸도 설 당일에만 잠깐 들르기로 해서다. 김씨는 “매년 만두와 전, 갈비찜은 했었는데 이번엔 먹을 사람이 없어 불고기만 하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대학생 이은서(24·서울 노원구)씨는 명절에 고향인 강원도 원주에 가지 않는다고 했다. 주말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설에도 일을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감정평가사 자격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씨는 “시험이 4월이라 시간도 여의치 않다. 올해 명절은 오전엔 알바, 오후엔 시험공부를 하며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성인 절반, 고향 방문 대신 휴식 선택


왁자지껄했던 명절 모습도 옛일이 됐다. 단적으로 설에 고향을 찾지 않겠다는 이들이 과거보다 늘었다. 롯데멤버스가 지난달 17∼18일 리서치 플랫폼 '라임'을 통해 20대 이상 남녀 2000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집에서 쉬겠다는 응답이 51.2%로 가장 많았다. 고향이나 부모님 댁, 친척 집을 방문하겠다는 답변은 31.3%였다. 지난 추석 때 고향 방문이 1위(46.0%), 집에서 쉬겠다는 답변이 2위(30.0%)였던 것과 비교해 순위가 바뀌었다.

명절 문화가 바뀐 원인은 복합적이다. 우선 젊은 세대의 경우 부모세대와 비교해 고향에 대한 애착이 크지 않은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주로 수도권에서 자라난 젊은 세대들에게 고향은 ‘부모’의 고향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노인 요양시설에 입소·입원하는 고령층이 증가하면서 물리적으로 친인척들이 모일 '고향집'이 사라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MZ에게 '고향' 의미 달라져…코로나가 부채질


지난해 5월 4일 오후 경기 수원시 장안구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수원보훈요양원(원장 김정면)에서 면회 온 딸이 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스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비대면 중심의 명절 문화를 경험했던 게 기름을 부었다. 설 교수는 “무려 3년간 제사를 안 지내고, 친인척과의 교류가 단절됐다. 3년간 이런 문화가 이어지면서 ‘꼭 하지 않아도 되는구나’라고 학습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이번 명절, 직장 동료와 해외여행을 떠난 이제승(30)씨는 “코로나19 이후 ‘굳이 명절에 온 가족이 모여야 하나’라는 생각이 커졌다. 사촌들도 군대를 거거나 취업 준비를 하는 등 삶의 양상이 달라져 모이기도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고물가와 경기 불황이 이어지면서 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겠다는 이들도 늘었다. 구인·구직 포털 ‘알바천국’이 성인남녀 3441명을 대상으로 ‘설 연휴 계획’을 조사한 결과 62.3%가 아르바이트를 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지난해 설 연휴 때보다 8.3%포인트 증가했다. 귀향 계획이 있다는 응답은 같은 기간 51.9%에서 45.6%로 하락했다. 명절 기간 편의점 단기 알바를 하기로 한 취준생 이모(26)씨는 “시급이 평소보다 20% 정도 더 올라 수입이 쏠쏠하다”라고 말했다.

1인 가구의 증가도 한몫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1인 가구는 993만5600세대로 1000만 세대에 육박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1인 가구 10명 중 8명은 '고독사' 위험군이라는 조사 결과(보건복지부·한국보건사회연구원)도 있다. 단절과 고립이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형식 억눌리지 말아야 유지될 것”


저출산 고령화로 소가족화되면서 명절 문화는 점차 더 단순화될 것으로 보인다. 세뱃돈 문화도 그중 하나다. 앞서 롯데멤버스 설문조사에선 응답자 절반(49.7%)이 설 세뱃돈을 준비하지 않겠다고 답했는데 이유로는 '줄 사람이 없어서(33.3%)'가 가장 큰 비율을 차지했다. 직장인 최모(32·울산 북구)씨는 “사촌 8명 중 1명을 빼고는 모두 결혼을 안 했다. 명절 풍경이 예전과 사뭇 다르다”라고 말했다.

다만 설동훈 교수는 “아무리 개인화가 진행된다고 해도 가족들이 모이는 문화 자체가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세상이 바뀌고 있는 만큼 형식에 억눌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모여서 어울리고 즐길 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세종=이우림 기자 yi.wo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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