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소리 들려' 아랫집 항의에 미련없이 귀촌, 하고 싶은 게 많아요"

월간 옥이네 2024. 2. 10.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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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방 채움'은 안에서부터 들려오는 클라리넷 소리로 떠들썩했다.

김기량(62)씨가 공방을 찾은 주민의 신청곡을 연주하는 소리였다.

김기량씨는 "시골이다 보니 이렇게 음악 접할 기회가 많이 없잖아요?"라며 손에 든 클라리넷을 내려놓았다.

한쪽은 김기량씨의 클라리넷과 반주기가, 반대쪽엔 권미자씨의 공방 물건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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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후 옥천에 집 짓고 새로운 삶 시작한 '공방채움' 김기량·권미자씨 부부

[월간 옥이네]

 김기량·권미자씨 부부
ⓒ 월간 옥이네
 
'공방 채움'은 안에서부터 들려오는 클라리넷 소리로 떠들썩했다. 김기량(62)씨가 공방을 찾은 주민의 신청곡을 연주하는 소리였다. 김기량씨는 "시골이다 보니 이렇게 음악 접할 기회가 많이 없잖아요?"라며 손에 든 클라리넷을 내려놓았다.

카페 카운터를 지키고 있는 건 그의 아내 권미자(59)씨. 부부는 이제 막 충북 옥천으로 귀촌한 새내기다. 이원면 평계리 조용한 마을 한쪽에 공방을 차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간섭받지 않을 곳으로

공방 채움은 김기량·권미자씨 부부가 집 마당에 차린 공간이다. 한쪽은 김기량씨의 클라리넷과 반주기가, 반대쪽엔 권미자씨의 공방 물건으로 가득하다. 카페 테이블은 단 두 개뿐. 조명과 인테리어, 카페 메뉴판까지 직접 정성스레 꾸몄다.

정년을 5년여 남겨두고 앞으로 뭘 할까 고민하던 김기량씨는 나만의 시간과 평온한 일상이 있는 곳을 찾았다. 그러던 중 옥천에서 택시기사로 일하는 친구의 소개로 도착한 곳이 이원면 평계리, 지금 집이 있는 곳이다. 마을과 적당한 거리, 널따란 대지, 그리고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공간이었다.

4년 전 땅을 매입하고 컨테이너 1개 동에 작은 냉장고와 기본 시설을 마련해 둔 후 한 달에 두어 번 내려오며 옥천과 인연을 맺었다. 정년퇴임을 한 2023년, 4월부터 집을 짓기 시작해 9월에 입주했으니 정식(?)으로 귀촌한 지는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40여 년을 아파트에서 살았잖아요. 요즘도 문제가 되는 층간소음으로 고생을 좀 했죠. 출근한다고 새벽 4시 50분에 진동으로 알람을 맞춰놨는데 어느 날 아침에 보니 문 앞에 쪽지가 붙어있더라고요. 진동 소리가 아래층까지 들리니 알람을 작은 소리로 해달라고요. 주변에선 층간소음으로 다툼이 있기도 했어요.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어요." (김기량씨)

귀촌 희망 사항 1순위는 "뭘 하든 간에 간섭받지 않을 수 있는 곳"이 됐다. 전 직장 린나이에서 국내 유일 민간기업 관악 합주단 '린나이 팝스 오케스트라'의 클라리넷 연주자로 오랫동안 활동한 그는 "도시에서 악기 연습하려면 연습실을 따로 구해야" 하고 막상 연습하려고 하면 "나가기 귀찮을 때도 있고 해서 잘 가지 않게 되더라"며 언제든 연주할 수 있는 이곳이 퍽 맘에 든다고 했다. 최근엔 임영웅의 '미워요'가 좋아 생각나면 연주해보고 있다고.

권미자씨는 20여 년 동안 요가 강사로 활동했는데, 나름 손재주가 좋아 이것저것 만들기를 좋아했다. 그러던 차에 마크라메 매듭을 배워 여러 물건을 만들고 있다. 비즈, 키링, 자개 모빌, 인형 등 아기자기한 작품이 공방 선반에 가득하다. 은퇴하고 하고 싶었던 걸 하는 공간이다.

"공방을 준비하며 사업적인 성과는 기대하지 않았어요. 여긴 각자의 놀이터라고 할까요? 내가 놀 수 있는 곳, 마을 사람들이 지나가다 들러서 차 한잔하며 수다 떨 수 있는 곳이 됐으면 했죠. 그래서 공간도 넓지 않고 소박하게 했어요." (권미자씨)

어느덧 시골 사람
 
 충북 옥천 공방채움 내부 공간
ⓒ 월간 옥이네
 
김기량씨는 귀촌 후 화물운송 일을 하고 있다. 그 나름대로 귀촌 준비였는데 운전하는 것을 좋아해 트레일러, 버스, 대형차량 면허를 땄고 어떻게 하면 가장 많은 여가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선택한 게 화물운송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휴대전화로 일거리를 찾아보고 멀리 가지 않는, 적당한 일감만 받아서 하고 있어요. 큰돈을 벌겠다고 하는 게 아니라 용돈 정도 벌려고 하는 거니까 부담 없이 하고 있죠. 시골 사니까 지출이 자연스레 줄더라고요." (김기량씨)

시골 생활에 아쉬운 부분도 있다. 무엇보다 문화생활이나 기타 여러 생활기반의 부족이 눈에 띈다. 도시에 살 땐 당연한 일상의 일부이던 배달 음식, 영화 관람과 같은 문화생활, 맛집 탐방 등이 쉽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막상 생활에서 누리기 어렵게 되니 아쉬움이 가시지 않는다. 최근 유행한 영화를 보고자 옥천 향수시네마(옥천 작은영화관)를 찾았지만, 매진 돼 보지 못한 게 영 개운하지 않다. 그런 문화생활을 포기하고 얻은 건 마음의 평화와 풍요로운 자연이다.

"도시에선 창문을 열 일이 별로 없죠. 창 너머로 보이는 건 앞집뿐이고요. 귀촌하고 가장 달라진 점은 자연과 가까이 살게 됐다는 거예요. 아침엔 알람 대신 새소리로 잠에서 깨요. 주방으로 나오면 통유리를 통해 언덕 위 자작나무를 볼 수 있어요. 어느 날 집 베란다에서 요가를 하는데 천장 대신 하늘이 보이더라고. 그 광경을 보며 너무 행복했어요. 도시가 그리울 때도 있지만 이런 데서 작은 행복을 찾아간다고 생각해요." (권미자씨)

"이곳이 익숙해졌는지 가끔 딸아이 집에 가면 답답해요. 아파트는 마당이 없으니 갈 곳이 없다고 느껴지더라고요. 거실에만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해서 답답하고, 주차하기도 힘들고, 귀촌하고 생긴 가장 큰 변화죠.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좋은 점만 보이는 건지 모르겠네요(웃음). 지금 집 앞이 다 잔디인데 주민분이 지나가다 그러시더라고요, '한 2년 지나면 시멘트로 바뀔 거라'고(웃음)." (김기량씨)

앞으로 하고 싶은 것들

아직 귀촌 1년 차니 해보고 싶은 게 많다. 마당 한쪽에 남겨둔 공터에 나무를 심을 생각이다. 남들은 귀찮게 여길 잔디깎이나 나무 손질에서 성취감도 느끼고, 깔끔해진 마당을 볼 때마다 보람차다. 무엇보다 가끔 들르는 자녀들이 좋아하니 참 다행스럽다.

"우리 애들도 오면 참 좋아해요. 마당에서 배드민턴도 치고 자전거 타고 개심저수지까지 다녀오기도 해요. 한번은 길을 잃어버려서 딴 동네 갔다 오기도 했는데 그 나름대로 재미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처음 왔을 때도 아이들이 도움을 많이 줬어요. 남편 반주기도 그렇고, 근처에 영화관 없다고 큰 텔레비전을 사주기도 했고요. 애들이 아직 결혼하진 않았지만, 시골 마당에서 뛰어놀 수 있는 할머니 집이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 있었는데 이참에 이뤘네요." (권미자씨)
 
 충북 옥천 공방채움 내부 모습
ⓒ 월간 옥이네
 
공방과 부부의 귀촌은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다. 앞으로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는지 묻자, 오랫동안 고민해온 듯 바로 답이 나온다.

"제가 일을 나가면 혼자 있으니까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어울리는 공간이 됐으면 해요. 개인적인 욕심이라면 저희 '린나이 오케스트라' 단원을 불러서 작은 연주회를 해보고 싶네요. 그뿐만 아니라 같이 연주할 사람들을 모아 정기적으로 공연하는 것도 괜찮겠지요." (김기량씨)

"조금 외지긴 했지만, 젊은 친구들이 와서 같은 공간에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나누고 했으면 좋겠어요. 집이 마을과 좀 떨어져 있으니까 오히려 심적으로 더 편하게 올 수 있지 않겠냐는 기대가 있어서 공간도 지금처럼 만들어 뒀어요. 주변 또래들, 지인들, 지나가던 행인, 마을 주민 가족이 편안하게 모이는 사랑방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어른들의 놀이터, 평계리 수다방이 되었다가, 때로는 우리 남편이 들려주는 연주도 들을 수 있는 곳 말예요." (권미자씨)

도시를 벗어나며 비워낸 삶을 부부는 이곳에서 다시 새롭게 채워 나갈 테다.

월간 옥이네 통권 79호(2024년 1월호)
글·사진 임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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