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두려운 아빠와 딸의 특별한 여행

이정희 2024. 2. 10.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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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힘이 될 콘텐츠] 넷플릭스 <내 친구 어둠>

올해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2월, 설입니다. 가족과 친지를 만나 정을 나누어도 모자랄 시간이지만, 올해는 왠지 마음이 무겁습니다. 경기는 어렵고 들려오는 뉴스도 팍팍한 소식 뿐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가라앉아 있을 필요는 없겠죠? 안팎으로 지친 당신에게 단비가 될 영화들을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이정희 기자]

고백하건대, 아직도 깜깜한 게 무섭다. 혹여라도 홀로 잠드는 밤이면 불 한 자락은 켜놓아야 한다. 눈을 감으면 빛이나 어둠이 보이는 것도 아닌데, 어둠이 감싼 공간의 중압감을 이 나이가 돼서도 이겨내지 못한다.

어디 어둠뿐일까. 저마다 어른이 되어서도 혹은 어른이 되어서 더욱 견뎌내기 힘든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 예전 박경리 선생님이 홀로 사는 집안의 적막함이 싫어 늘 tv를 켜놓으셨다는 인터뷰를 보고 저런 분도 견디기 힘들어 시는 게 있구나 하면서 위로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

내 자신의 마음을 직시하고 포용해야 한다는 정서적 치유가 시대적 트렌드가 되면서 인간사의 복잡한 속내를 '주인공'으로 삼은 작품들이 등장했다. 2015년작 <인사이드 아웃>이 대표적이다. 기쁨과 슬픔을 형상화하는 데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만한 게 있을까. 여전히 마음 속에 기쁨이, 슬픔이와 함께 버럭과 소심의 롤러코스트를 타며 살아가는 '어른이'들이 열광적으로 반응했다. 

겁많은 소년을 찾아온 어둠
 
 넷플릭스 <내 친구 어둠> 스틸 이미지.
ⓒ 넷플릭스
 
2023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내 친구 어둠>은 역시나 한 소년의 마음을 들여다 본다. <인사이드 아웃>처럼 소년의 두려움을 주제로 삼았지만 마음을 형상화하는 대신, 그 '두렵고 걱정되는' 대상이 되는 '어둠'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불이 꺼진 방 한 구석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라 시커먼 두건을 쓴 검은 거인으로 형상화된 어둠. 빛이 사라진 공간이 자아내는 두려움을 이보다 더 절묘하게 형상화시킬 수 있을까. 

박물관 천장에 매달린 전시물이 떨어질까 두려워 견학가기를 꺼려하는 오리온은 두려운 게 많은 소년이다. 관심이 가는 소녀에게 말 한 마디 건네기 힘들고,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에게 겨우 낙서를 통해서야 복수하는 소심한 소년. 그중에서도 가장 그를 힘들게 하는 건 매일 밤 어두운 방안에서 홀로 잠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매일 밤 엄마, 아빠 방으로 쳐들어 가는 오리온 덕분에 부모들도 잠이 부족하다고 하소연을 할 정도다. 오늘 밤만은 엄마-아빠 방으로 찾아오지 말고 자라는 당부와 함께, 다시금 밤을 맞이한 오리온. 홀로 견디기 힘든 어둠에 대한 두려움을 하소연하려던 찰라, 소년의 뒤로 '어둠'이 찾아온다. 

그런데 소년을 찾아온 어둠은 뜻밖의 제안을 한다. 자신을 싫어하는 아이들이 차고도 넘치지만 오리온이 제일 심하다며, 더는 견딜 수 없으니 24시간 동안 자신과 함께 하며 '어둠'에 대한 편견을 없애보면 어떻겠냐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리온은 자의 반 타의 반 어둠과 함께 길을 떠나게 된다. 

<내 친구 어둠>은 어둠의 친구들로 밤을 채우는 캐릭터들을 소환한다. 잠, 꿈, 조용, 불면, 소음이란 단어에 딱 걸맞은 캐릭터들이 등장해 저마다 활약한다.  

아버지와 딸이 만들어 간 스토리텔링 
 
 내 친구 어둠
ⓒ 넷플릭스
 
 
 내 친구 어둠
ⓒ 넷플릭스
 
캐릭터들의 면면과, 어둠과 빛의 갈등을 보자면 <내 친구 어둠>은 <인사이드 아웃>류의 애니메이션 전형을 따라가는 듯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던 순간, 겁에 질린 오리온이 어느덧 아빠가 돼 딸인 히파티아와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데 누가 그 아빠에 그 딸 아니랄까 봐 역시나 매일 밤 잠들기 힘들어하는 딸과 그런 딸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오리온이 장면을 채운다. 

<내 친구 어둠>이 가진 매력은 한때는 겁많은 소년이었던 오리온에서, 작가가 된 딸 히파티아, 그리고 영화의 절정에서 시간을 거슬러 활약하는 손자까지 3대의 활약에 있다. 

오리온과 히파티아 부녀는 말한다. 빛처럼, 어둠도 그곳에 있어야 하는 존재라고. 그리고 어둠이 있어야 밤 하늘에 별들이 빛나듯이, 어둠도 어둠만의 몫이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별자리의 이름을 가진 오리온과 최초의 여성 천문학자의 이름을 가진 히파티아다운 스토리텔링이 아닐 수 없다. 

어둠을 두려워하는 오리온처럼 우리는 다양한 감정을 품고 그로 인해 고통받는다.  과연 그 감정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어떻게 나만의 이야기로 소화해 낼 것인가. 어둠마저 친구로 받아들이는 건 결국 '나'의 선택이며 '해석'인 것이다.

<내 친구 어둠>이 주는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겁많고 소심한 소년과 그 딸은 아름다운 이야기의 스토리텔러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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