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 명사십리 터줏대감 모래고둥을 아시나요?

완도신문 정지승 2024. 2. 8.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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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온 사람들도 평안을 얻은 장소

[완도신문 정지승]

명사십리는 전남 완도군이 자랑하는 신지도의 명품해변이다. 주민들은 이곳을 '울모래'라고 부른다. 모래가 운다는 뜻이다. 모래울음소리가 십리를 간다는 십리해변 명사(鳴沙)의 의미에는 여러 가지 깊은 사연이 있다. 
 
 명사십리
ⓒ 완도신문
신지도는 조선시대 유배지였다. 죄지은 사람을 먼 지방으로 귀양 보내는 형별을 유배라고 한다. 지은 죄의 정도에 따라 2천리, 2천 5백리, 3천리 세 등급으로 나누었다.

중국 유배형벌의 영향으로 거리를 그대로 적용한 조선사회는 땅이 좁은 관계로 3천리를 확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고육지책으로 오던 길을 되돌아가는 방법으로 3천리를 채우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 방법이 여의치 않았던지 섬을 하나 건너면 1천리에 해당하는 거리 환산법을 시행했다. 한양에서 전라도 끄트머리를 1천리로 짐작하고 강진에서 고금도를 건너 신지도에 이르면 3천리 유배형에 딱 맞는 거리 환산법이 적용됐다. 

유배지 중에서도 3천리 형량인 원악지로 여긴 신지도는 당쟁에 휘말려 희생당한 선비가 오는 일이 많았다. 그렇다보니 억울한 죄명을 얻은 사람들의 절규가 모래해변의 십리까지 들린다는 비유를 했다.

명사십리는 사계절 맑은 바람과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위로 넓은 백사장이 끝없이 펼쳐진다. 앞섬에 막힘없는 시원한 바다가 있어서인지 가히 명품해변답다. 남해의 푸른바다를 이곳에 옮겨다 놓은 것 같은 느낌그대로 바라보는 내내 쌓였던 체증이 싹 가시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명사십리 해변에는 다양한 생물이 서식한다. 바다를 정화하는 좀보리 사초와 통보리 사초 등 띠풀군락과 함께 주민들의 사랑을 독차지한 모래고둥이 이곳의 터줏대감 격이다. 

모래사장을 거닐며 조개 줍는 추억은 누구나 갖고 있다. 예쁜 모양의 조개껍데기를 모으는 일이 해변에서 느꼈던 가장 즐거운 추억 중에 하나일 것이다. 

울모래 해변에 서식하는 모래고둥은 비록 서해비단고둥으로 등록이 되어 있지만, 명사십리의 모래고둥은 다른 지역의 고둥과는 색감의 차별을 보인다. 

애칭은 해방고둥
 
 해방고둥
ⓒ 완도신문
더 맑고 깨끗한 색상을 지닌 명사십리 모래고둥은 '해방고둥'이라는 애칭도 갖고 있다. 보통 8월 중순에 많이 채취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신지도는 완도군의 소안도, 고금도와 함께 유서 깊은 항일운동의 섬이기도 해서 해방고둥이라는 별칭이 너무 애틋하다. 

조국해방을 맞이한 기쁨을 명사해변에 모여서 함께 나눈 지역민들은 그날을 기념해 해마다 남녀노소 모두가 해변에 나와 고둥을 잡아 잔치를 했다. 모래고둥 하나만으로도 그만큼 풍성하고 알뜰한 일을 할 수 있었다.

명사십리 모래고둥은 서해 지방에서 처음 발견해 한국패류학회 학술지에 등록되어 명명한 것이기에 서해비단고둥으로 고유명사처럼 사용되는 아쉬움이 있다. 복각류의 특징상 같은 종류의 분포도가 넓지만 일반적으로 서해와 남해에서 많이 서식한다.

명사십리 모래고둥은 겨울철 해변에 패각으로 많이 밀려온다. 그것을 줍기도 하고 모아 붙여서 예쁜 화분도 만들었다는 지역 주민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으니 옛 추억이 물씬하다.

명사십리를 노래한 구준모 시인의 가곡도 많이 알려졌다. 신지도 명사십리 결 고운 모래밭에 파도가 밀려와서 사랑을 속삭이면 님 소식 실려 왔을까 귀 기울여 본다는 애틋한 사연의 노랫말이다.

파도가 어루만진 결 고운 모래밭은 내 님의 살결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명사십리 해변에 가면 내 님의 숨결 같은 그 바람을 만날 수 있다. 파도만이, 파도만이 밀려오는 명사십리 솔숲의 바람소리는 맑고 청아하다. 한 겨울 추위를 녹게 만드는 치유의 마력도 더한다. 해변을 따라 걷다보면 색색의 모양을 띤 해양생태계가 신비롭게 다가온다.

명사십리 해변을 걸으면 중국의 명사산이 먼저 떠오른다. 명사십리 이름 때문이다. 중국 돈황시 남쪽으로 5km 떨어진 곳에 있는 모래와 암반으로 이루어진 산 이름인 '명사(鳴砂)'는 언덕의 모래들이 바람에 굴러다니면서 내는 소리가 마치 '울음소리 같다'는 데에서 유래한다. 명사산은 서역이 시작되는 실크로드의 관문으로 황금 모래사막이 바다처럼 넘실거리며 산을 이룬다. 그곳에는 2천 년 동안 마르지 않은 샘이 솟아나 그 절경이 사람들을 부른다. 

청해진 장보고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해신(海神)에서도 중국의 명사산이 소개된 적 있다. 신라의 백성들이 노예로 팔려 가는 현장을 목격한 장보고가 그들을 구출한 장면이 각인된 곳은 명사산의 사구였다. 

그곳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리며 죽어 간 원혼의 울음소리가 명사의 전설이 되어 전한다. 그 소리는 한 맺힌 절규다.

명사십리 해변에는 정말로 그 울음소리가 들릴까? 그것이 궁금해서 한 방송사 스폰지라는 예능프로그램에서 강호동이 실험했다. 그 결과 입자가 고운 모래는 사람들이 걸을 때마다 미세한 진동과 울음소리를 토해낸 것으로 밝혀졌다. 해변의 미세한 모래 입자는 사람들이 걸을 때 공명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명사십리 모래는 그만큼 곱고 미세하다. 해변에 들면 마치 세파에 시달리면서도 갓난아이를 안전하게 품어주는 어머니 품속 같은 느낌이 든다.  바위 절벽에 부딪히는 파도는 산산이 부셔져도 모래 해변은 세찬 파도를 부드럽게 잠재운다.

한 시절 버려지고 쓸모없는 땅으로 여겨 신지도에 유배 온 사람들조차도 명사십리 해변을 걸으며 세상을 원망하기보다는 평안을 얻었다. 서예가로 이름을 알린 원교는 신지도에서 조선의 사상가다운 면모를 보였다. 그 사상을 오롯이 작품에 반영해 동국의 시대를 열기도 했다. 신지도 명사십리는 그들에게 큰 위안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밀려드는 파도를 잠잠히 받아들이는 결 고운모래를 밟아 보는 것만으로도 어느새 마음이 차분해 진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문화예술활동가입니다. 이 기사는 완도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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