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만 '층간소음' 규제 강화?…빌라·원룸은 사각지대

이지은 2024. 2. 8. 07:3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신축아파트 층간소음 기준 지켜야 준공승인
빌라 층간소음 문제로 살인 사건까지
다가구주택 층간소음 규제 여전히 낮아

지난해 2월 경기 수원시의 한 빌라에서 40대 남성 A씨가 소음 문제로 말다툼을 벌이다 옆집 주민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당일 A씨는 "앰프 소리가 시끄럽다"고 주장하며 피해자를 자신의 집으로 유인했다. 이후 피해자와 대화하는 과정에서 실랑이가 일자 A씨는 부엌에서 흉기를 가져와 범행을 저질렀다. 법원은 이 남성에게 징역 25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층간소음 문제가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사례가 잇따르자 국토교통부는 이전보다 규제 수위를 높인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가 정한 층간소음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신축 아파트는 보완공사 없이는 준공승인을 내주지 않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그러나 다가구주택과 원룸 등은 관리 대상에 제외돼 여전히 층간소음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시내 빌라 밀집 지역의 모습.[이미지출처=연합뉴스]

다가구 주택은 법적으로 '단독주택'…층간소음 규제 수위 낮아

7일 한국환경공단 산하의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센터에 접수된 층간소음 관련 민원은 3만6435건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 확산하기 이전인 2019년(2만6257건)과 비교해 38.8% 증가한 수치다.

층간소음 민원 신고는 증가 추세에 있지만 다가구 주택과 원룸 등은 제대로 통계조차 집계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현행법상 층간소음이란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에서 입주자의 활동으로 발생하는 소음으로 정의된다.

다가구 주택과 원룸 등으로 이뤄진 '다중주택'은 건축법에 따라 단독주택으로 분류돼 이곳에서 발생한 소음은 층간소음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도 민원을 제기할 수 없어 개인이 직접 다른 입주자와 분쟁 조정에 나서야 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관계자는 "다가구 주택은 민원 접수 대상에 속하지 않아 센터에서 신고받지 않는다"며 "사실상 해결 방법이 전무하다"고 말했다.

층간소음과 관련해 적용되는 규제의 수위도 아파트에 비해 낮다. 국토부는 아파트의 경우 공사 완료 이전 단계에서 층간소음을 측정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건물은 보완시공을 의무적으로 시행하도록 하는 방침을 추진할 계획이다. 하지만 다가구주택은 의무 시행 대상에 제외됐다. 국토부 관계자는 "건축법에 따라 오피스텔과 다가구 주택 등은 공동주택 건설 기준에 적용받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다가구주택 건축 시 층간 바닥에 충격음 차단 구조를 갖추게 하는 행정규칙이 마련돼 있긴 하나, 이마저도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가구 주택과 다중주택은 건축 시 중량충격음에 대해 50㏈, 경량충격음에 대해 58㏈을 충족하는 바닥구조를 갖춰야 한다.

그러나 공사 단계에서 층간소음 성능검사를 받도록 점검 시기를 앞당긴 아파트와 달리 다가구 주택은 완공 이후에야 공사 감리자가 기준 충족 여부를 판단한다. 이로 인해 실제 바닥 충격 구조의 시공 품질을 장담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긴다.

국토부 관계자는 "다가구 주택은 건물이 지어지면 공사 감리자가 설계 도면대로 지었는지 판단 후 준공 승인을 신청하는 구조"라며 "사전점검은 절차상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되기에 다가구와 다중주택과 같은 소형주택들은 물리적, 행정적 한계로 섣불리 중간점검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분노 촉발 층간소음…주택 분류 재정의해야"

전문가들은 층간소음이 추가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 경실련이 추산한 통계에 따르면 층간소음으로 시작된 살인 폭력 등 강력범죄는 2016년 11건에서 2021년 110건으로 5년 사이 10배가 늘었다.

표승범 공동주택문화연구소 소장은 "층간소음은 감각을 자극하기에 불편이 조금만 지속돼도 분노를 빠르게 촉발한다"며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라도 층간소음 관리 위원회 등을 결성해 사각지대에 있는 다가구 주택의 층간소음 갈등을 빠르게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가구주택도 층간소음 갈등에서 보호받을 수 있도록 건축법상 주택 분류를 재정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영민 경실련 도시개혁센터 정책위원장은 "현행법상 공동주택에서 발생한 문제만 층간소음 범주에 속해 다가구주택들이 겪는 문제는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며 "다가구, 원룸 건물이라 하더라도 2가구 이상의 주택은 공동 주거시설로 분류해 이곳에서 발생한 소음 문제도 층간소음 범주로 묶어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지은 기자 jelee0429@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