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옥·나문희 "스스로 못 다스리면 불행…불필요한 연명치료 안 해"

나원정 2024. 2. 7.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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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개봉 영화 ‘소풍’ 주연
김영옥‧나문희 63년 우정
"긴 인생 준비하게 하는 영화"
영화 '소풍'(7일)은 어릴적 고향 단짝 친구이자, 사돈 지간인 은심(나문희)과 금순(김영옥)이 60년 만에 함께 고향 남해로 여행을 떠나며 16살의 추억을 다시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100세 시대라지만 제일 중요한 건 건강이죠. 돈‧자식‧남편이 있어도 내가 나를 다스릴 수 없을 때의 불행은 대처할 길이 없어요. 살아도 산 게 아닌데 의료행위로만 끌고 있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김영옥)
“아픈 몸으로 한없이 누워있을 때가 정말 지옥인 것 같아요.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하고 회복이 안 될 때는 과감하게 (병원에서 연명치료 하지 않고) 지옥에서 해방되면 좋겠습니다.”(나문희)

최고령 현역배우 김영옥(86)과 80대 최고 흥행배우 나문희(82)가 불필요한 연명치료에 대한 입장을 이렇게 밝혔다. 실제 63년 지기 친구인 두 사람은 노년의 우정과 나이 듦을 그린 영화 ‘소풍’(감독 김용균)에서 주연을 맡았다. 영화 개봉일인 7일 서울 삼청동에서 이들을 만났다.
‘수상한 그녀’(2014), ‘아이 캔 스피크’(2017) 등 출연 영화의 총 관객 수가 4124만명에 달하는 나문희는 18년 전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MBC) 속 명장면 “호박 고구마”가 MZ세대에도 사랑 받는 현역 스타다.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2021), 애플TV+ ‘파친코’(2022) 등 글로벌 OTT 시리즈의 ‘신스틸러’로 부상한 김영옥과는 JTBC 예능 ‘뜨거운 씽어즈’(2022)의 실버 합창단을 함께하는 등 연예계 소문난 절친 사이다.


실패한 자식, 노인 존엄사…묵직한 소재 잔잔하게


영화 '소풍'(7일)에서 금순(김영옥, 왼쪽부터)과 은심(나문희)가 고향 남해에서 활짝 웃었다. 가족과 옛 사연에 얽힌 우여곡절 끝에 두 친구는 곱게 단장하고 소풍길에 오른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이들은 ‘소풍’에선 사돈이자 고향 친구인 은심(나문희)과 금순(김영옥)이 됐다. 사업에 실패한 아들 내외가 은심이 사는 집을 팔자며 들이닥친 날, 연락도 없이 금순이 찾아온다. 소녀 때로 돌아간 듯 무인 주문기 조작이 서툰 걸 놀려대고, 햄버거를 먹고, 즉석 사진을 찍던 두 사람은 60년 만에 함께 경남 남해로 소풍 가듯 고향 길에 오른다. 학창 시절 은심을 짝사랑한 태호(박근형)는 막걸리 장인이 되어 고향 땅을 지키고 있다.
도합 195년의 연기 경력(나문희 63년, 김영옥 67년, 박근형 65년)을 지닌 배우들이 “연기라기보다는 카메라에 나를 담은 듯”(나문희), “우리들의 이야기”(김영옥)를 잔잔히 그려냈다. 바닷바람을 안주 삼아 주고받는 유쾌한 막걸리 한잔 속에 노화로 인한 질병, 마지막 보금자리까지 위협하는 재개발‧상속 문제, 노인 학대와 존엄사 등 묵직한 화두가 자연스레 담긴다.
영화에서 은심은 파킨슨병으로 인한 손 떨림이 심해지면서 돌아가신 엄마가 부쩍 눈에 어른댄다. 그런 은심에게 “헛것을 보냐”고 걱정스레 묻는 금순은 자신도 허리 통증이 악화해 대소변 가리기 힘들어진 처지다. 자식에 버림받고 요양원에서 정신을 놓아버리거나, 가족에게 짐이 될까 봐 불치병을 감추는 노인도 나온다.
지난해 12월 남편과 사별한 나문희는 “연기는 사실적인 게 중요하다. 나한테 닥친 것을 과감하게, 솔직하게 표현했다”고 했다. 김영옥은 “지금 나이에 아무렇지 않다면 거짓말이다”라면서 “노인이 쓰러지면 가정에서 씻기고 먹이고 대소변 받아내던 시대도 이젠 지났다. 건강은 본인이 챙겨야 한다는 걸 ‘소풍’을 통해 더 느꼈다”고 말했다.
영화 '소풍'(7일)에서 금순(가운데, 김영옥)의 집 평상에 모여앉은 은심(나문희)과 태호(박근형). 남해 바다가 내다보이는 마당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태호가 만든 막걸리 잔을 나눈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소풍’은 나문희의 20년 지기 매니저의 아내인 조현미 작가의 각본을 토대로 ‘와니와 준하’(2001), ‘더 웹툰: 예고살인’(2013) 등을 만든 김용균 감독이 연출했다. 극중 은심과 서로 '삐심이', '투덜이'라 놀리는 금순 역의 김영옥은 나문희가 직접 섭외했다. “영화 '여고 동창생'(1976), 드라마 ‘내가 사는 이유’(1997, MBC)·‘디어 마이 프렌즈’(2017, tvN) 등 쭉 같이 하며 좋았다. 우린 눈만 봐도 안다”고 그는 말했다.

'태권브이', 마릴린 먼로 목소리 스타들


1961년 MBC 성우극회 1기로 만난 두 사람은, 김영옥이 ‘마징가Z’, ‘로봇 태권브이’ 등 만화영화 소년 역, 나문희가 배우 소피아 로렌, 마릴린 먼로 등 외화 더빙을 도맡던 때부터 중년 이후 연기자로 전성기를 맞기까지 평생 쌓아온 우정이 극 중 두 친구와도 닮았다. 나문희는 “우리가 배고픈 시절 같이 연기했다. 인생 공부를 했다”면서 “김영옥 씨하고 나는 친해도 조심하고 경우를 지킨다. 필요할 땐 꼭 있어 준다”고 돈독한 관계의 비결을 밝혔다.
김영옥(왼쪽)과 나문희가 1961년 MBC 성우 공채 1기 당시 단체 사진 모습이다. 최근 MBN 예능에 출연해 공개했다. 사진 MBN
올 설 대목 극장가는 실버 배우들이 격돌한다. ‘소풍’과 같은 날 윤여정 주연 영화 ‘도그 데이즈’가 개봉했다. 앞서 윤여정은 언론 인터뷰에서 80대 라이벌들을 반기며 10살 많은 현역 김영옥이 ‘롤모델’이라 고백했다.
“그 대배우가 무슨 나를 롤모델”이라며 “황감하다”고 손사래 친 김영옥은 “못하겠다 하다가도 나를 믿고 대본을 주면 ‘미친 사람’처럼 내가 해야겠다고 욕심을 부린다”면서 “연기는 할 때마다 신들린 듯 인물에 빠져서 좋아서 한다. 행복한 고생”이라고 말했다.
최근 한 방송에서 그는 음주 차량에 하반신이 마비된 손자를 8년 째 남편과 돌보고 있다고도 밝혔다. “사랑하니까 돌본다. 자식들은 데려간다는데 내가 못 보낸다”는 그다. 오래 사랑하고 연기하기 위해 술은 가급적 멀리하고 조금씩 스트레칭 하는 게 소박한 건강 비법이란다. ‘소풍’ 엔딩곡 ‘모래 알갱이’를 헌사한 가수 임영웅 팬클럽 활동도 사는 낙이다.

나문희 "길고 힘든 인생 준비하기 위한 영화"


홀로 된 나문희는 “보편적 사람을 연기하기 위한 노력”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KBS 휴먼 다큐멘터리 ‘인간극장’, ‘6시 내 고향’을 보면서 다른 할머니들하고 똑같이 생활하려 그런다”면서 “배우가 건강하고 연기할 수 있으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그 기회를 유지하려고 집에서 불경을 외면서 요가 비슷하게 운동하고, 대중탕 가서 남들하고 야쿠르트 나눠 먹으면서 소통한다”고 말했다.
이어 “‘소풍’은 노인네가 주인공이지만, 어느 세대도 소홀할 수 없는 이야기”라면서 “철이 덜 든 사람이 보면, 인생이 얼마나 길고 힘든지 알 수 있다. 영화를 보면 더 많이 느끼고 (삶에 대해) 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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