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목 처리론 한계… 선단지 집중방제 등 ‘전략’ 다시 짜야

세종,박상은 2024. 2. 5.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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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재선충 끝나지 않은 싸움] <③·끝> 한계 부딪힌 방제, 대책은
지난달 24일 대구 달성군의 한 도로 인근 산지에 소나무재선충병으로 말라죽은 소나무가 늘어서 있다. 소나무 밑에는 훈증(감염 소나무를 잘라서 쌓은 뒤 약품을 넣어 비닐로 밀봉한 것) 더미가 놓여 있다.


소나무재선충병은 끝없는 싸움이다. 치료제가 개발되거나 소나무가 재선충을 이겨내기 전까지 매년 일정한 예산을 투입해 방제를 지속해야 한다. 그러나 체계적인 전략 없이 눈에 보이는 고사목만 제거하는 방제 작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다름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방제효과를 극대화하고, 한정된 예산을 효율적으로 집행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의 부실한 방제 전략부터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산림청은 국민일보의 소나무재선충병 보도 직후인 지난달 30일 올해 피해 규모를 87만 그루로 끌어내리겠다고 밝혔다. 고사목 QR코드 관리, 드론 예찰(산림 병해충 우려 지역 조사), 유전자 진단키트 활용 등 ‘과학적 방제’도 내세웠다.

그러나 죽은 나무에 한해 이뤄지는 소극적 방제 정책으로는 ‘승산’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소나무재선충병은 전염성이 매우 강하다. 고사목 발생 지역 반경 2㎞ 안에 있는 나무는 모두 감염 우려목으로 분류된다. 이러한 감염 우려목을 선제적으로 제거하고, 선단지(재선충병이 발생한 지역에서 가장 외곽 지대)를 집중방제하는 등 전략적으로 방제를 진행하지 않으면 확산세를 잡기 어렵다는 것이다.

송동근 산림기술사는 4일 “QR코드 이용이 효율적이라고 하나 방제 방법 자체는 2015년이나 현재나 큰 변화가 없다”며 “현재로서는 겨울철에 매개 곤충이 머물고 있는 나무를 없애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지속적인 예산 확보를 통해 적극적인 방제 작업을 진행하고, 지역별 방제전략 수립과 방제 품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정규원 산림기술사도 “재선충병은 절대 고사목 수로만 피해 정도를 판단해선 안 된다”며 “피해 나무 수와 ‘피해 면적’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방제 성과를 평가하고, 이를 감안해 예산을 투입하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애초에 방제 사업 기준이 되는 ‘피해 규모’ 자체가 정확하지 않다는 비판도 나온다. 소나무재선충병은 확산 시기에 방제 예산이 갑자기 늘었다가 피해 규모가 줄면 예산도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 정부는 지자체가 보고한 고사목 현황을 종합해 피해 규모를 발표하는데, 지역에서 피해 현황을 정확하게 분석하지 못하면 현장과 통계의 괴리도 점점 커진다. 같은 예산을 투입해도 방제 효율성이 떨어지고 오히려 확산을 가중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방제 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예를 들어 지난해 산림청이 발주한 ‘포항 권역 소나무재선충병 긴급방제 전략’ 보고서를 보면 드론을 이용한 현장 정밀감식과 월별 고사율 등을 종합해 도출한 추정 피해 나무 수가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다.

보고서는 “구룡포읍, 호미곶면, 동해면 일대의 피해 발생 면적은 732.64ha, 피해 나무 수는 4만7125그루로 추정되나 2023년 하반기 피해 발생 정도는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확산될 것으로 예측된다”며 “호미곶 일원의 대규모 피해지에 대한 방제 실현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송이 생산지와 타 시·군 등으로의 확산을 우선 차단할 필요가 있다”며 “북구 방향으로 확산을 막는 방어선을 구축해 우선적으로 집중방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소나무재선충병 방제지침은 신규 감염 나무가 발생했을 때 주변 피해 정도와 확산 가능성 등을 정밀조사하고, 2주 안에 방제 전략을 수립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날 조달청 나라장터 계약현황을 보면 3차 확산이 시작된 지난해부터 올해 1월까지 이러한 ‘방제 전략’ 혹은 ‘방제 계획’ 용역이 진행된 지역은 대전, 경북 포항·안동시, 충남 청양·예산군, 강원 춘천·원주시, 대구 달성군에 그쳤다. 일부 지역은 방제사업을 진행하면서 실태조사를 병행하기도 했으나 전국 시·군·구 147곳에서 소나무재선충병이 발생한 것을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수치다.

임재은 산림기술사는 “소나무재선충병 방제는 예산과 직결되는데 지자체에서 피해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면 정부 예산을 적절하게 배분하기 어렵다”며 “결국 일부 지역은 돈이 없어서 피해를 막지 못하고 일부 지역은 과다 예산이 배정되면서 비효율적인 방제가 반복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북 지역의 한 산림기사도 “현장에선 바깥 테두리인 선단지가 아니라 붉은 소나무가 많은 중앙부터 방제하느라 예산을 다 쓰고, 다음 해에 감염이 확산된 인근 지역에 같은 방식으로 예산을 쓰는 소모적인 방제 사례가 많다”며 “주민 민원이 많은 곳부터 방제가 이뤄지는 것도 한계”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유일한 방제 성공 사례로 꼽히는 제주에서 힌트를 얻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지자체장이 강력한 의지로 방제사업을 이끌어간 점, 전문가를 통해 방제 전략을 수립하고 감염 지역 간 전략을 공유하는 노력을 기울인 점 등이 방제 성공 요인이라는 것이다.

소나무재선충병 방제는 지자체의 협력, 지역주민과 국민의 공감대가 필요한 방제 정책이다. 그만큼 방제 책임자인 시·도지사, 시장·군수가 주체적으로 나서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현재 산림청은 지역방제협의회를 운영하고 있으나 지자체장을 중심으로 꾸려진 별도 협의체는 없다.

녹색연합의 서재철 전문위원은 “소나무를 살릴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 분기점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며 “결국 지자체장의 의지에 달려 있다. 소나무를 살릴 것이라면 시장·군수부터 예산과 행정력을 총력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 대구=글·사진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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