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1400미터, 네팔 소수민족과 홈스테이를 하다

강재규 2024. 2. 3.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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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떠난 안나푸르나 트레킹] 즉석에서 이루어진 침술 의료봉사

지난 2023년 12월 22일부터 2024년 1월 1일까지 9박 11일간의 안나푸르나 트레킹 중 보고 느낀 바를 기록합니다. <기자말>

[강재규 기자]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마치고 저녁 무렵에 네팔 제2의 도시인 포카라에 도착했다. 숙소인 마운트 카일라쉬 리조트(Mount Kailash Resort)에서 숙식을 하며 모처럼 트레킹으로 쌓인 여독을 풀 수 있었다. 얼마 만에 맞이한 휴식다운 휴식이었는가.

이튿날인 29일에도 오전과 오후에 다소의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다. 왜냐하면 오후에 네팔의 소수민족인 구룽족이 생활하는 마을 향자곳(해발 1,400미터)을 방문하는 홈스테이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문화나 사람들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생활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함께 생활해 보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기에 홈스테이를 할 수 있도록 요청을 했었다.
  
▲ 향자곳 우리 일행이 방문했던 포카라 행자곳 홈스테이 가정
ⓒ 강재규
 
그래서 우리 일행은 페와호수에서 유람선을 타면서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 봉우리가 올려다보이는 포카라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 수 있었다. 점심 식사 후 우리 일행이 타고 갈 지프차가 도착해 꾸려둔 짐을 차량의 지붕에 싣고 홈스테이를 할 향자곳으로 향했다. 가다가 염소 고기를 파는 푸줏간에 들러 염소 갈비 3kg을 구입했다. 우리 차량에는 염소 불고기 요리를 할 수 있는 현지 요리사이자 이번에 포터로도 수고해준 라지 라이(Raj Rai)가 함께 타고 있었다. 나머지 두 사람의 포터는 트레킹을 마치고 하산을 하면서 도중에 헤어졌다.

이 길 끝에 사람이 과연 살고 있을까

구절양장처럼 꾸불꾸불한 비포장도로를 지프차로 오를 때에는 이 길의 끝에 과연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막상 올라보니 산 정상을 비롯해 제법 큰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마을 주민 대부분이 홈스테이를 하는 마을 같았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향자곳은 EBS의 세계 테마 기행에서 TV에 방영되어 한국에도 이미 소개된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홈스테이를 한 집은 말끔히 잘 정돈되어 있었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할 때 들린 롯지와는 달리 방에도 화장실과 세면대가 딸려 있었다. 우리 일행이 도착하자 주인인 젊은 부인은 무척 반갑게 맞아주었다. 가족은 할머니(남편은 20여 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용병군인 즉 '구르카'였다고 했다. 네팔에서는 구르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것 같았다), 아들, 며느리, 손녀, 손자 등 5명으로 이루어진 단란하고 화목한 가정으로 보였다. 할머니(63세)는 영어도 비교적 잘하고 언행에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시골의 평범한 할머니 같지 않았다.

네팔 왕국의 형성에 기여한 구르카군은 그 용맹함으로 전 세계에 알려졌고, 영국과 인도, 싱가포르 등에서 자국 군대에 구르카 용병을 고용하여 전투력을 보강하고 있다.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미국과 북한의 정상회담 경비를 싱가포르 경찰과 함께 구르카 용병이 담당한다고 보도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구르카에 복무하고 전역한 사람은 네팔 안에선 부유층으로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도 수많은 젊은이들이 수십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구르카가 되기 위해 몇 년간을 구르카 준비에만 매달려 사회문제가 되기도 한단다.
 
▲ 향자곳 한의사인 정흥식 원장이 홈스테이 가족들에게 침을 놓고 있다.
ⓒ 강재규
   
우리가 홈스테이를 한 가족 구성원들은 고된 농사일도 하고, 소를 키우며 산중에서 석청이나 동충하초와 같은 약초 등을 채취하며 생활을 하기에 다리와 팔, 목 등이 저리고 관절도 좋지 않다고 했다. 할머니는 무릎과 발목 관절이 좋지 않고, 아들은 발목과 무릎 관절염을 오래 앓아왔다고 했다. 마침 우리 일행 중 한의사인 정흥식 원장은 할머니, 아들, 며느리에게 저녁과 이튿날 아침까지, 두 차례 침을 처방하는 즉석 의료봉사를 했다.
할머니는 침을 맞은 후 계단을 가볍게 오르내리면서 기분이 좋다, 'feel good
'이라며 무척 만족스러워했다. 그런 고마움의 표시인지 저녁에는 히말라야 산속에서 직접 채취한 귀한 천연꿀인 석청까지 내어놓고, 산에서 캔 산마와 감자까지 내어놓아 캠프파이어용 모닥불에 구워 먹었다. 어렸을 적 시골에서의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났다.
 
▲ 향자곳 현지 요리사 라지 라이가 요리한 염소갈비찜
ⓒ 강재규
   
저녁 밥상에는 우리와 동행한 요리사 라지 라이가 포카라 시내에서 구입했던 염소 갈비로 맛있는 갈비찜을 만들어 내놓아 맛있게 저녁 식사를 했다. 우리 일행은 피워놓은 모닥불 앞에 둘러앉아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른 채 향자곳 밤하늘에서 금새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은하수를 바라보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마을에서는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 봉우리가 바로 눈앞에 펼쳐졌고, 이튿날 향자곳에서 맞은 일출은 정말 장관이었다.
 
▲ 향자곳 지난 12월 30일 오전 향자곳에서 맞이한 일출
ⓒ 강재규
   
이른 아침 서둘러 아침 식사를 하고 짐을 꾸려 놓고는 우리가 머물렀던 홈스테이 가족과 가이더 싱거만, 요리사이자 포터였던 라지 라이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려는데, 홈스테이 주인장 할머니는 우리 일행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축복의 의미인 붉은 점(티카)을 이마에 찍어주고, 카타(khata)라는 하얀 스카프를 목에 걸어주었다. 이는 주는 이가 받는 이에게 순수한 마음을 다하여 행운이 함께 하길 바라는 축원을 전하는 것이라고 한다.
주인장 할머니가 걸어준 스카프를 두른 채 홈스테이 가족과 우리 일행은 함께 사진을 찍고 포카라행 지프차에 올랐다. 당일 일정은 포카라에서 경비행기로 카트만두로 돌아가는 일정이었다.
 
▲ 향자곳 지난 12월 30일 향자곳 홈스테이를 마치고 떠나기 전 우리 일행과 가족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 강재규
   
내려오는 길은 올라갈 때와는 달리 반대편 방향이었다. 그 길은 한창 도로공사 중이었다. 도로가 확장되고 포장이 되면 방문객이나 주민들에게는 편리한 점도 있겠지만, 개발로 인한 여러 가지 부정적인 영향도 뒤따를 것이다.

짧은 시간 네팔에서 홈스테이를 하면서 이들 가족을 통해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얼굴 표정에 웃음과 정이 흐른다는 점이었다. 할머니와 아들, 며느리, 손녀, 손자 사이에 흐르는 사랑과 가족 구성원간 무언의 질서를 지켜보면서 이런 게 진정한 가족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행복이란 돈과 명예, 물질적 풍요로움과 도시화와는 무관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한, 1박 2일의 멋진 향자곳 홈스테이였다.

그래서 포카라 향자곳은 책 '오래된 미래' 속에서 소개된 인도 히말라야의 작은 마을 '라다크'가 겪었던 길로 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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