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로 때리고, 수은 조각 먹이고… ‘동물학대’ 후진국 수준

이가현,정신영 2024. 2. 3.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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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갈 길 먼 ‘동물복지’ 감수성
게티이미지뱅크


반려동물 양육 인구가 1500만명에 이르고 동물 학대 처벌 강화 법안이 통과된 지 2년 만에 ‘개 식용 금지법’이 제정되는 등 동물복지에 관한 관심이 부쩍 커졌다. 하지만 동물 학대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후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최근 동물 학대 영상을 유튜브에서 생중계하거나 유기동물을 상대로 무차별 폭력을 행사하는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2일 동물 학대 콘텐츠 게시에 대한 문제의식이 부족하고, 선진국과 비교해볼 때 한국 사법부의 동물학대 처벌 수준이 너무 낮다는 점 등을 그 원인으로 짚었다.

최근 경찰은 자신이 키우는 웰시코기를 학대하는 모습을 생중계한 유튜버 A씨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다. A씨는 지난달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웰시코기를 죽도로 내려치는 영상을 공개했다. 그는 “해부해버려. 동물이 말을 안 들어먹어”라며 머리를 죽도로 수차례 내리쳤다. 웰시코기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A씨 손에 붙들려 있었다. 동물보호단체 캣치독의 신고를 받은 경찰과 지자체는 해당 웰시코기와 A씨를 분리한 뒤 범행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타인의 반려동물을 겨냥한 테러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 지난달 21일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한 다세대주택 옥상 곳곳에 수은 건전지 조각이 뿌려져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콩알만 한 크기의 건전지는 겉면이 갈색으로, 실제 개 사료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동물이 수은 조각을 섭취할 경우 위장 점막이 손상되거나 소화기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이 다세대주택은 12가구 전부 반려견을 키우는 것으로 조사됐다. 누군가 여러 마리의 반려견이 사는 점에 불만을 품고 동물을 해칠 목적으로 수은 건전지 조각을 뿌렸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현행법상 동물 학대 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게 돼 있다. 지난 2022년 4월 국회는 동물 학대 행위를 구체화하고 처벌 수준을 강화한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실제 법정에서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는 드물다.

대법원 판결문 열람시스템을 통해 지난해 1월부터 1년간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사건 중 확정된 사건들을 살펴본 결과, 동물을 죽인 경우에도 징역형이 아닌 벌금형이 선고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벌금도 수백만원 선으로 경미했다. 서울남부지법은 지난해 7월 자신이 키우던 포메라니안을 마당에 던져 죽게 한 B씨에게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B씨는 술에 취한 채 부모님이 운전면허학원비를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화가 나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반려견 때문에 집안이 엉망이 된다는 이유로 키우던 치와와를 3층 베란다 밖으로 던져 죽게 한 C씨에게는 벌금 500만원이 선고됐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생방송 중계가 가능한 플랫폼이 동물학대 콘텐츠를 생산하는 통로로 악용되기도 한다. 평소 길고양이를 혐오했던 D씨는 텔레그램 채팅방에서 익명의 사람들과 길고양이를 죽이고 학대하는 영상, 사진을 주고받았다. D씨는 각종 방법으로 길고양이를 고문하는 영상을 공유했다. E씨는 해당 채팅방에 직접 본인이 길고양이를 질식시키는 영상을 찍어 공유했다. 부산지법은 E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D씨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수원에서 벌어진 비슷한 사건에서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안종민 캣치독 실무장은 “최근 들어 인터넷방송에서 동물 학대를 하고 있다는 제보가 빗발치고 있다”며 “이목을 끌어 자신의 채널을 성장시키기 위한 수단”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대부분 후원 계좌번호를 기재해놓고 학대 방송을 진행한다. 학대당하는 동물을 보고 안쓰러워하는 시청자들에게 입양을 거래해 돈을 받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안 실무장은 2019년 반려견 허스키 ‘태양이’를 학대하는 영상을 올려 징역형이 선고된 유튜버 ‘승냥이’ 역시 그런 경우라고 전했다.

해외에서는 동물학대 콘텐츠 게시 행위를 규제하기 위한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일고 있다. 영국 정부는 지난해 동물학대 콘텐츠가 소셜미디어에 올라올 경우 해당 플랫폼 회사가 학대 콘텐츠를 신속하게 제거하고, 이를 어길 시 벌금을 부과하는 법률을 마련했다.


국내에서도 동물보호법상 동물학대 행위를 사진,영상으로 찍어 올리는 행위는 금지돼있다. 동물보호법 제10조는 동물을 포획해 판매 또는 죽이는 행위, 그럴 목적으로 포획하는 행위 등을 촬영한 영상을 인터넷에 게재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영상을 올려 후원금을 받는 등 영리행위를 하는 것에 대한 가중처벌 기준은 별도로 없다.

동물법 전문 권유림 변호사는 “동물학대 영상이 문제가 돼도 실제 선고되는 형이 낮다보니 눈 앞의 이익에 쉽게 현혹되고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지는 것”이라며 “다중이 시청할 수 있는, 전파력이 높은 SNS를 통해 돈까지 버는 행위에 대해 가중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양형기준을 마련해 재판부별로 들쭉날쭉한 선고형 역시 간극을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다 근본적으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들에 대한 인식 교육을 강화하고 자격 심사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동물보호법 전문가 한재언 변호사는 “캐나다 독일 네덜란드에서는 반려동물 보유세를 내게 하고 반려동물 입양 전 의무교육을 이수토록 하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반려동물 양육자의 자격을 엄격하게 심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가현 정신영 기자 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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