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의 만남] 마리아는 수태고지한 천사에게 왜 등 돌렸을까

양민경 2024. 2. 2.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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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가브리엘이 동정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할 것을 알리는 '수태고지'(受胎告知)는 유명 서양화가가 즐겨 다룬 인기 주제다.

처녀가 아이를 밴 전대미문의 사건이건만 마리아의 표정은 평온할 뿐이다.

가브리엘에게 등을 돌린 마리아의 시선은 관객을 향하고 있다.

뒤돌아선 마리아를 설득하기 위해 구름 타고 달려온 하나님까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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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옆 미술관’ 펴낸 구미정 숭실대 기독교학과 초빙교수
구미정 숭실대 기독교학과 초빙교수가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각당복지재단 사무실에서 책 출간 계기를 설명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천사 가브리엘이 동정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할 것을 알리는 ‘수태고지’(受胎告知)는 유명 서양화가가 즐겨 다룬 인기 주제다. 처녀가 아이를 밴 전대미문의 사건이건만 마리아의 표정은 평온할 뿐이다.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수태고지 역시 기품 넘치는 모습을 강조한다. 한데 16세기 이탈리아 화가 로렌초 로토의 수태고지 속 마리아는 여타 작품 묘사와는 다르다. 가브리엘에게 등을 돌린 마리아의 시선은 관객을 향하고 있다. 뒤돌아선 마리아를 설득하기 위해 구름 타고 달려온 하나님까지 등장한다.

그림은 이탈리아 화가 로렌초 로토의 '수태고지'. 비아토르 제공


기독교 인문학자인 구미정 숭실대 기독교학과 초빙교수는 이 그림에서 ‘순종하되 순종적이지 않은 여성상’을 발견한다. ‘주님의 여종’을 자처한 마리아의 고백(눅 1:38) 속에 “세상 질서를 뒤집어엎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인다는 것이다. 수태고지 후 마리아가 부르는 노랫말(눅 1:46~55)이 그 증거다. “약자와 소수자를 편드는 하나님이 찬양받는” 이 가사에서 구 교수는 “세상 그 무엇에도 기대지 않고 오롯이 하나님 뜻에 자기를 개방하며 훌훌히 살아가는 여자”가 곧 마리아임을 밝힌다.

서양 종교화를 매개로 수천 년 전 이야기를 21세기에 맞게 풀어내는 솜씨가 일품인 구 교수. 그가 최근 ‘교회 옆 미술관’(비아토르)을 펴냈다. 성경과 외경(外徑) 속 여성 25인의 삶을 그린 미술 작품을 해설했다. 최근 ‘죽음 준비’를 주제로 강의 중인 그를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각당복지재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구 교수는 ‘생태여성주의’로 박사 학위를 받은 기독교윤리학자다. 미술 전공이 아닌 그가 서양 종교화로 성경을 풀어낸 배경엔 ‘CBS 성서학당’ 출연이 있다. 2011년 당시 강사진 중 유일한 여성이었던 구 교수는 타 강의와의 차별화를 위해 이성뿐 아니라 감성으로도 성경을 조망할 수 있도록 강의를 준비했다. 이를 위해 준비한 도구가 성화(聖畵)다. 그는 성경 인물화뿐 아니라 렘브란트 반 레인과 빈센트 반 고흐, 마르크 샤갈 등 거장의 그림에서도 복음의 진수를 추출한다.

구 교수는 “개신교는 일상이 예배이기에 개신교 신자인 고흐가 그린 풍경화에서도 기독교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고흐의 명작 ‘별이 빛나는 밤’을 살펴보면 건물 중 유독 교회만 불이 꺼져 있다. 빈부 격차 등 사회 문제와 거리를 둔 19세기 유럽 교회는 죽었다는 의미다.

그는 “신앙의 눈으로 작품을 해독하고 그 교훈을 바탕으로 현실을 반성해야 할 책임이 그리스도인에게 있다”고 말했다. 그림뿐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를 보더라도 하나님의 음성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이런 태도를 ‘성육신’(成肉身)이라고 불렀다. “일상에서 하나님과 성경에 접붙여 살려는 노력이 곧 성육신이 아니면 무엇이냐”는 것이다.

책 속 기독교 여성 26명 중 기억에 남는 이들로는 사르밧 과부를 꼽았다. 구 교수는 “선지자 엘리야에게 수중의 마지막 음식을 건네는 이방 여인 사르밧 과부는 약자를 대변한다”며 “죽음 앞에서도 고통의 감수성을 잃지 않은 이 여인을 보며 한국 기독교가 이런 감수성을 사회에 발휘하고 있는지를 되돌아봤다”고 했다.

미술관을 찾는 이들이 늘고 미술관에 관한 에세이가 베스트셀러 종합 1위에 오르는 등 최근 MZ세대를 주축으로 미술에 대한 인기가 뜨겁다. 구 교수는 “스치듯 봐서는 작품의 진가를 알기 힘들다”며 “서양 종교화를 볼 땐 작가의 영성에 접선해보자. 그러다 보면 종교를 넘어 인류의 문화유산이 된 이들 작품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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