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혜의 트렌드 2024]유튜브·OTT 배속 시청…'분초사회' 시간가성비 시대

2024. 2. 1.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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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핵심·결론만 원하는 경향
소비자 극도의 '시성비' 추구
연차 시간단위 쓰는 직장인 늘어
기업 반반차 넘어 반반반차 도입
비즈니스도 고객 시간 관리 고민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한국 사람들이 늘 바쁘다고는 하지만, 요즘 사람들의 시간관념은 예전과 확연히 다르다. 시간을 매우 효율적으로 쓰고, 극한의 ‘시간 가성비’를 추구한다. 시간 효율성을 최적화하려는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모두가 분초(分秒)를 다투며 살게 됐다는 의미에서 ‘분초사회’라고 한다.

분초사회는 다양한 영역에서 관찰된다. 최근 반차를 넘어 ‘반반차’ 또는 ‘반반반차’를 도입하거나 도입을 검토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연차를 시간 단위로 쪼개서 쓰는 직장인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은행 업무를 처리하거나 병원을 다녀오는 등 자신의 필요에 따라 휴무를 조밀하게 나눠 쓴다. 비슷한 맥락에서 ‘짬PT’ ‘틈새PT’ ‘세미PT’ 등 점심시간을 쪼개서 운동을 즐기는 경우도 많다.

한정된 시간을 압축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배속 시청이나 몰아보기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행태도 분초사회를 뒷받침한다. 최근에 대학생과 영화관의 위기에 관해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왜 사람들은 영화관에 가지 않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해당 학생은 배속 시청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2배속으로 즐기던 세대에게 2시간 남짓의 정속 시청은 웬만한 재미가 아니고서야 견딜 수 없는 속도다.

이러한 맥락에서 점점 짧은 길이로 핵심, 결론만 제시하는 콘텐츠 경향성이 짙어지는 추세다. 새롭고 재미있는 것을 경험할 때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을 ‘도파민’이라고 부르는데, 재미없는 순간을 단 1초도 견디지 못하고 재미와 한시도 떨어지지 못하는 트렌드가 나타나고 있다. 기승전결에서 ‘기승전’을 기다릴 시간이 없기 때문에 ‘결론’만 소비하는 것이다. 이러한 도파민 중독은 독서 행태에도 변화를 예고한다. 독서량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가운데, 책 내용을 5분으로 압축해 알려주는 ‘숏북(Short Book)’ 서비스는 늘고 있다. 애플리케이션 ‘서사’는 각 분야 교수진이나 책의 저자가 직접 책을 읽고, 핵심을 짧게 압축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유발 하라리의 책 ‘사피엔스’는 업로드 3일 만에 조회수 2500회를 기록했다고 한다.

시간이 중요하기 때문에 실패도 용납되지 않는다. 어떤 드라마를 끝까지 봤는데 재미가 없었다거나 폭풍 검색으로 재킷을 구매했는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면 돈의 실패이기도 하지만 시간의 낭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요즘 소비자에게 ‘실패 소비’란 없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실패를 줄이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한다. ‘착용 컷보다 구매자의 실제 리뷰 사진을 참고할 것’ ‘구매 후기를 검색할 때는 ‘낮은 평점’ 순으로 읽어가며 광고성 ‘리뷰’를 걸러낼 것’ ‘무료 반품이 된다면, 컬러와 사이즈를 여러 개 주문한 뒤 맞는 것만 남기고 환불할 것’ 등 다년간 축적된 온라인 쇼핑 노하우가 총동원된다.

이처럼 소비자들이 극도의 시성비를 추구하게 되면서 비즈니스는 소비자의 시간을 어떻게 점유하고 낭비되는 시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관리해줄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일례로, 최근 모바일 플랫폼을 뜨겁게 달군 키워드는 ‘게임’이다. 올웨이즈가 쏘아 올린 플랫폼 내 디지털 농사게임 열풍은 공구마켓, 마켓컬리, 팔도감 등으로 이어졌다. 게임을 도입한 이유는 고객의 체류시간을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웨이즈의 이용자 월평균 사용 일수는 18.6일로 쿠팡(15일)보다 많다. 하루 평균 사용 시간도 34분으로 쿠팡의 세 배 수준이다.

고객의 시간이 낭비되지 않도록 관리해주는 것도 중요하다.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지하 1층 ‘가스트로 테이블’은 테이블에서 메뉴 확인은 물론 주문 및 계산까지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는 ‘테이블 오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고객이 앉은 자리에서 주문과 계산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서비스로, 고객 스마트폰으로 테이블에 비치된 QR코드를 스캔하면 이용할 수 있다. 매장 내에서 소비자의 동선과 시간 디자인이 중요해졌다는 의미다.

어쩔 수 없이 기다려야 한다면, 기다리는 시간을 지루하지 않도록 ‘느끼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공항이 좋은 예다. 국제선 비행기를 탈 때 출발시간 2~3시간 전에는 공항에 도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공항에서 기다림은 필수인데, 시간 자체보다 그 인식을 관리해 시간이 빨리 지나갔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싱가포르의 창이공항은 여행객들을 위해 투어를 운영하고 있다. 창이공항의 쥬얼투어는 창이공항 밖을 나가지 않고 공항에 있는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2023년 세계 최고의 공항에 선정된 창이공항은 세계 최장 실내 폭포 HSBC 레인 보어텍스, 푸른 정원과 놀이기구를 갖춘 캐노피 파크 등을 갖춰 그 자체로 관광 명소라는 평가를 받는다.

분초사회 트렌드의 확산은 소비자가 우리에게 내어준 시간의 의미를 새삼 일깨우게 한다. 우리 매장을 찾아오기 위해 사용한 이동시간, 우리 콘텐츠를 보기 위해 흘려보낸 시간, 우리 제품을 고르기 위해 고민한 시간은 다른 수많은 대안을 포기하고 내어준 순간들이기 때문이다. 이제 돈의 경쟁을 넘어 ‘시간 경쟁’의 시대가 오고 있다. 1분 1초의 시선과 발길을 사로잡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소비자의 시간을 관리하고 디자인할 수 있는 역량을 선제적으로 키워야 할 것이다. 더불어 귀한 시간을 내어 이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최지혜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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