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에 갇힌 27세·35세 소방관, 무너진 공장서 끝내 못나왔다 [르포]
1일 오전 1시쯤 경북 문경시 신기동 제2일반산업단지. 4층짜리 육가공업체 공장이 마치 종잇장처럼 구겨져 있었다. 이 건물에 큰 불이 나면서 겉은 새카맣게 그을린 모습이었고 건물 내부는 여전히 열기가 식지 않았는지 허연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큰불이 잡힌 지 1시간여가 지난 시점이었지만 여전히 공장 주변에는 매캐한 연기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상태였다.
불은 어느 정도 잡혔지만, 공장 앞은 소방 펌프차와 굴절 사다리차, 굴삭기 등 여러 장비가 바쁘게 움직였다. 소방대원들이 손전등을 들고 건물 구석구석을 비추고, 공중에는 드론이 날아다녔다. 건물 안에 소방대원이 고립되면서 소방 인력과 장비 모두 수색 작업에 매달리고 있었다.
전날 발생한 불…건물 무너지며 고립
앞서 전날 오후 7시47분쯤 이 공장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났다. 인근 소방서 8~11곳의 장비를 총동원하는 대응 2단계가 발령될 정도로 큰 불이었다. 건물 4층에서 시작된 불은 삽시간에 건물 전체를 집어삼켰다. 이 과정에서 건물이 무너지면서 화재 진압에 투입된 소방대원 4명 중 2명이 고립됐다. 불길이 급격히 확산하자 계단을 통해 대피하려 했지만, 미처 탈출하지 못한 것으로 소방당국은 추정했다.
고립된 소방대원 2명 중 1명은 이날 0시21분쯤 건물 3층에서 숨진 채 발견돼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나머지 1명은 이후 3시간 이상 수색작업을 했지만 찾지 못했다. 추운 날씨에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기적의 생환’을 기원했지만, 현실은 끝내 외면했다. 다른 소방대원 시신은 오전 3시54분쯤 같은 층에서 발견됐다.
두 번째 소방대원을 발견한 곳은 처음 찾은 구조대원 시신과 불과 5m 정도 떨어진 지점이었다. 거리는 가까웠지만, 건물이 무너지고 잔해가 상당히 쌓여 발견과 구조가 어려웠다. 2020년 5월 사용 허가를 받은 이 공장 건물은 연면적 4319㎡ 규모 전체가 샌드위치 패널로 이뤄져 있다 보니 불이 붙으면 삽시간에 번지고 잔해가 많이 떨어졌다.
문경소방서 소속 35세·27세 대원 순직
숨진 두 소방대원은 경북 문경소방서 119구조구급센터 소속 김수광(27) 소방교와 박수훈(35) 소방사였다. 김 소방교는 2019년 7월, 특전사 중사 출신인 박 소방사는 2022년 2월에 임용됐다.
하룻밤 새 두 대원을 잃은 배종혁 문경소방서장은 이날 현장 브리핑에서 이들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 울먹였다. 배 서장은 “희생한 대원들은 현장에서 인명 수색과 화재 진압에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소방당국은 합동감식을 통해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하는 한편 발견된 소방대원 유전자(DNA) 검사를 진행하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장례도 진행할 계획이다.
소방대원 유가족은 현장을 찾아 오열했다. 소방당국은 심리상담지원팀을 소방대원 유가족들과 인근 마을회관에 머물도록 했다.
尹 “소방대원 구조 최선” 당부했지만…
한편 앞서 소방청은 이날 화재가 발생한 뒤 오후 8시25분에 대응 1단계, 이어 24분 뒤인 8시49분에 대응 2단계를 발령했다. 화재 진압과 인명 구조에는 인원 348명, 장비 63대를 동원했다.
문경=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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