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먹었니” 이모·삼촌 사랑에 세상 나갈 힘 얻는 청년들
‘오병이어 기적’ 실천 ‘52패밀리’
“밥은 먹었니.” 누군가를 만났을 때 자연스럽게 나누는 인사다. 부모와 자녀, 친구 등 가까운 사이일수록 자주 사용되는 이 인사법은 인간관계의 친밀도를 나타낸다. 끼니를 거르기 쉬운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에게 식사 안부와 함께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며 이들의 멘토 역할까지 담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52패밀리(대표 이지남)가 주인공이다. 식사를 매개로 자립준비청년과 관계를 맺고 있는 52패밀리 소속 이모·삼촌들은 이들의 멘토로 든든한 울타리 역할을 감당한다. 1대1 관계 속에서 따뜻한 온기를 확인하며 안정감을 갖게 된 자립준비청년들은 이들의 사랑과 정성이 담긴 ‘밥심’으로 세상에 나갈 채비를 한다.
선한 프로젝트로 뭉친 52패밀리의 ‘오병이어’ 기적은 우연한 기회에서 비롯됐다. 성경공부와 라이프 스타일 관련해 두 개의 개인 유튜브 계정을 운영하던 ‘오지라퍼’ 이지남(51) 52패밀리 대표가 벌인 프로젝트의 ‘나비 효과’라고나 할까.
최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만난 이 대표는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재정 지원만 하는 것은 이들에게 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며 “가족의 부재로 마음이 텅 빈 이들에게 평생 이모가 돼 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2021년 세 명의 아들을 어느 정도 키운 이 대표는 자녀를 양육하며 한창 어려웠던 시절이 생각났다고 했다. 그래서 어린이날을 맞아 개인 유튜브 계정에서 판매한 갈비 수익금으로 보육원 아이들을 돕겠다고 구독자들에게 발표했다. 그의 이야기에 구독자들은 “왜 혼자서만 좋은 일 하세요. 저희도 동참할게요”라며 열띤 호응을 보였다. 십시일반 모아진 유튜브 구독자들의 후원금은 1억5000만원이나 됐다.
이 사건을 ‘오병이어 기적’으로 소개한 이 대표는 “구독자들 덕분에 전국 225개 아동양육시설과 576개 그룹홈에서 지내는 1만3412명의 아이들에게 음식을 제공할 수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52패밀리 활동이 자연스럽게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52패밀리는 예수가 한 소년으로부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건네받아 5000명의 군중을 먹인 ‘오병이어의 기적’을 착안해 만든 이름이다.
그해 12월 52패밀리는 전국 197개 보육원의 7600여명 아동에게 ‘크리스마스 선물 보내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듬해 3월에는 보육원 아동을 위한 정서적 활동 지원으로 1대1 후원뿐 아니라 ‘이모 가족’으로 이들 곁에서 신뢰할 수 있는 멘토로 소통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을 통해 이 대표는 딸을 입양하게 됐다.
㈔52패밀리를 설립한 이 대표는 2022년 11월 보육원 아동을 넘어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밥톡톡 프로젝트’에도 도전했다.
그는 자신이 아들들에게 늘 질문하는 식사 안부를 자립준비청년 조카들에게도 건네며 이들에게 따뜻한 반 한끼를 책임지기로 했다. 매달 1회 건강한 밀키트를 제공하는 프로젝트다. 자립준비청년들과 1대1로 연결된 120여명의 이모·삼촌들은 밀키트 발송 일정과 조리법, 밥상 안부를 전하며 자립준비청년과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한다.
현재 260여명의 자립준비청년들이 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 대표는 자립준비청년과의 건강한 소통을 위해 이들의 상황을 올바로 이해하는 정기 교육을 의무화하고 있다.
이 대표는 “처음엔 제대로 답변하지 않고 시큰둥하게 반응한 자립준비청년들이 매달 음식을 보내며 꾸준히 소통하는 이모들에게 점점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며 “그렇게 1년간 이 프로젝트를 지속하니 자립준비청년들과 끈끈한 관계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52패밀리는 지난해 11월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50여명의 자립준비청년과 이모, 삼촌들과 만남을 주선했다. 이 대표는 “이산가족 상봉이 따로 없었다”며 “자립준비청년들과 지속해서 만나고 이들에게 맛있는 식사 한 끼를 해줄 수 있는 공간을 물색 중”이라고 밝혔다.
52패밀리는 자립준비청년의 온전한 자립을 위한 ‘멘톡’을 기획하고 있다. 자립준비청년들이 고민하는 주거 문제, 금융 관리, 의료 지원 등에 따른 필요가 시급해 각계각층의 전문단을 꾸려 맞춤형 자문과 지도를 받도록 하기 위해서다. 자립준비청년과 소통하는 이모·삼촌도 전문단 상담을 함께 받으며 자립준비청년들이 상담 내용을 실제 삶에 적용하도록 도울 예정이다. 이 대표는 “부모가 자녀에게 애정어린 잔소리를 하는 것처럼 자립준비청년들의 실질적인 필요를 채우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
‘밥톡톡’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이모 120여명과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소통하는 이 대표는 “자립준비청년들을 공동육아 하는 느낌”이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자립준비청년들에게 좋은 어른들로 남고 싶다. 돌아오는 설날에는 우리 집에 자립준비청년들을 초대할 예정이다. 외로움과 상처로 기억되는 이들의 명절을 가족과 함께하는 풍성한 시간으로 채워주고 싶다”고 전했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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