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제품을 8억에?... 강동구청의 '이상한' 수의계약

이희동 2024. 1. 31.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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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동의 5분] '일체형 물막이판 제작구매 설치 계약'을 둘러싼 의혹②

기초단체 의원은 언론에 잘 노출되지 않지만, 기초지자체가 생각보다 많은 예산으로 다양한 일을 하는 만큼 나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본 시리즈에서는 서울시 강동구를 중심으로 구의원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고자 합니다. 자치구의 정책들이 중앙정부와 광역시 정책들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국정철학과 기조가 어떻게 지역에서 발현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에 대해 구의원이 어떻게 견제하고 지지할 수 있는지 알리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이희동 기자]

본 의원은 지난 기사(강동구청의 희한한 '단독 특허'...무산된 행정사무조사 https://omn.kr/276c9 )에서 강동구청장의 단독 특허 거짓말 의혹과 그로 인한 결과를 언급했습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특허를 강동구와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는 A업체와 강동구의 이상한 수의계약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서울시의 재촉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8월 9일, 간밤의 폭우로 일가족 3명이 사망한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다세대 주택 현장을 찾아 사고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강동구가 '일체형 물막이판'을 급하게 제작하게 된 이유는 2023년 2월부터 계속된 서울시의 재촉 때문이었습니다. 서울시는 2022년 관악구에서 발생한 반지하주택 침수 세 모녀 참사 사건을 상기시키면서 25개 자치구에 관련 대책을 세우라고 계속해서 공문을 보냈습니다. 탈출이 가능한 반지하주택 개폐식 방범창을 서둘러 설치하라는 것이었죠.

이에 많은 자치구가 장마철이 오기 전까지 반지하주택 전수조사와 함께 대책을 강구했습니다. 강동구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만 강동구는 업체들과 계약을 맺는 다른 구청들과 달리 전국 최초로 인명 구조형 특수 방범창을 자체 개발했다고 4월 7일 밝혔는데요. 이는 앞선 기사에서 지적했듯이 거짓말 의혹에 휩싸였습니다. 구청 대신 A업체 권 대표가 관련 기술을 4월 17일에 특허 신청을 합니다.

문제는 이후 벌어집니다. 특허와 관련해 우선심사를 받게 되면 특허 등록에 걸리는 시간이 약 2개월인데 구청 대신 신청했다고 주장하는 A업체의 특허가 '거절'된 것입니다. 특허청이 밝힌 거절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A업체의 발명은) 그 출원 전에 이 발명이 속하는 기술분야에서 통상의 지식을 가진 사람이 쉽게 발명할 수 있는 것이므로 특허법 제29조 제2항에 따라 특허를 받을 수 없습니다."

 
 A업체 권 대표가 신청한 '비상 탈출 및 차수가 가능한 방범창(일체형 물막이판)' 특허에 대한 특허청의 거절 이유(하단 빨간 네모).
ⓒ 이희동
 
즉 강동구청은 보도자료를 통해 전국 최초로 인명구조형 특수 방범창을 개발했다고 널리 홍보했지만, 이는 구청이 아닌 A업체가 신청한 기술이었고, 그마저도 특출난 기술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이용하고 있는 기술이지요. 실제로 강동구와 영등포를 제외한 다른 구청들은 서울시의 같은 공문을 받고 A업체가 아닌 다른 업체들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강동구는 끝까지 자체 개발했다고 주장한 기술을 고집합니다. A업체가 4월에 신청한 특허 등록이 실패하자, 특허 대신 6월에 서울시 건축과에서 보낸 공문을 근거로 A업체와의 수의계약을 추진합니다. 입찰 등을 통해 공정성을 담보한 다른 구청과 달리 강동구는 8억 원이나 되는 예산을 특정 업체와 수의계약합니다. 서울시가 보낸 공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반지하주택의 침수방지시설 설치는 우기 전에 완료되어야 할 긴급한 사업으로 자치구 사정상 입찰에 부칠 여유가 없는 경우라면 (...) 재난관리책임기관의 장인 구청장의 판단으로 '지방계약법 시행령' 제25조 제1항 제1호에 따른 수의계약 방식 적극 활용.

* '지방계약법 시행령' 제25조 제1항 제1호 : 천재지변, 감염병의 발생 및 유행, 작전상의 병력이동, 긴급한 행사, 원자재의 가격급등, 그 밖에 이에 준하는 경우로서 입찰에 부칠 여유가 없는 경우
 
 서울시가 2023년 6월 각 자치구에 보낸 '반지하주택 침수방지시설 시공자 선정 관련 안내' 공문.
ⓒ 이희동
  
강동구청은 최근 더불어민주당의 문제 제기에 대해 '서울시 공문 및 지방계약법 시행령에 의거해 적법한 절차대로 수의계약을 진행했다'고 반박했는데요. 이는 절반의 사실입니다. 법적으로는 이상이 없지만 다른 지자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의 공문대로 천재지변으로 인한 수의계약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왜일까요?
행안부의 책임 전가
 
 A업체는 '물막이판 일체형 특수방범창'에 대한 특허신청을 4월 17일에 했는데, 강동구청은 그보다 열흘 앞선 4월 7일 이를 개발했다고 홍보자료를 냈다. 연합뉴스가 보도한 기사.
ⓒ 연합뉴스 보도 갈무리
 
서울시의 공문에도 왜 천재지변으로 인한 수의계약을 맺지 않았냐는 질문에 B구청의 담당과장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서울시에서 천재지변에 준하는 것으로 적용해달라고 했지만, 행안부에서 아직 (침수)사고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지정하기 힘드니까 지방 각 단체에서 알아서 해라 한 거거든요. 우리가 법적으로 요건을 갖춰달라고 요청했는데, 그건 힘드니까 지자체가 알아서 해라. 그래서 우리는 수의계약 등 이게 나중에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어 조금 늦더라도 절차대로 했어요."

그렇습니다. 비록 서울시가 천재지변으로 인한 수의계약이 가능하다고 공문을 내렸지만 강동구와 이를 따라한 영등포구와 달리 23개 자치구는 천재지변 등을 근거로 삼은 지방계약법 시행령 제25조 제1항 제1호를 활용해 수의계약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대부분의 구청은 이와 달리 특허 등을 근거로한 수의계약을 진행했습니다. 

천재지변으로 인한 수의계약은 모든 감사의 첫 번째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고, 구청장 판단이라는 조건 역시 서울시에서 자치구로 그 책임을 미룬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례를 조사해보니 입찰을 통해 계약을 진행한 곳도 있었습니다.

실제 천재지변으로 인한 수의계약을 하려면 코로나19 정도 되는 재난이 있어야만 가능했던 것이 지금까지의 관례입니다. 그러나 강동구는 A업체가 특허 등록을 하지 못하자 천재지변을 근거로 A업체와 1인 수의계약을 맺습니다. 이게 우연일까요?

어떤 제품을 사용했을까

강동구청은 6월 28일 일체형 물막이판 제작구매설치 발주계획을 확정하고 A업체와 7월 24일 계약합니다. 천재지변으로 인한 수의계약 약 8억 원. 2월부터 서울시가 재촉했던 걸 감안한다면 너무 늦은 행정처리입니다. 무슨 이유 때문이었을까요? 혹시 A업체의 특허가 6월 21일 거절당하자 어떤 제품을 써야 할지 난감해서였을까요?
 
 강동구청이 A업체와 계약한 제품 품목. 2013년도 등록된 제품이다(빨간색 네모 안).
ⓒ 조달청
 
결국 강동구청은 A업체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조달청에 2013년에 등록돼 있었던 제품을 채택합니다. 구청이 자체 개발했다는 A업체의 기술은 특허 등록 전이었기 때문에, 다른 업체의 특허를 침해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사용하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실제 사용 여부를 떠나 서류상으로 '10년 전 제품'이 채택된 이유로 보입니다. 홍보자료에는 특허 중이었던 제품이 실렸지만 현장에 그 제품이 설치됐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요컨대 강동구청은 자체 개발한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천재지변을 근거로 8억 원 수의계약을 맺었지만, 정작 계약서에는 입찰이 가능한 2013년 제품이 올라와 있습니다. 만약 A업체의 제품을 사용했으면 계약서가 거짓이며, 2013년 제품을 사용했으면 A업체와 단독 수의계약을 할 명분이 사라집니다. 어느 쪽일까요?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단 한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구청에서 설치했다는 272군데를 모두 실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강동구청은 12월부터 지금까지 그 주소목록을 제출하지 않고 있습니다. 법적으로 요청하고 있는데도 막무가내로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음 기사에서는 의원의 자료제출 요구마저 무시할 수 있는 서울시 기술직의 문제점을 지적하겠습니다.
 
 강동구가 배포한 방범창 일체형 물막이판 사진.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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