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기 산 지 45일 만에 중고마켓으로 간 사연

전미경 2024. 1. 31.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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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경 기자]

갑자기 시행한 일을 만족할 확률은 거의 없다. 갑자기 그 음식이 먹고 싶거나, 갑자기 미용실이 가고 싶거나, 갑자기 전화를 하거나, 갑자기 쇼핑을 하거나 등. 이런 '갑자기'를 막상 실행에 옮기면 대부분 기대에 못 미쳐 실망은 배가 되었다. 갑자기 하는 일은 안 하니만 못해 별것 아닌 것이라 해도 의식적으로 안 하려고 노력한다. 갑자기 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하지 말라는 조언을 늘 명심했다.

빨래를 널다 갑자기 의류 건조기를 사야겠다는 생각이 발동했다. 일주일에 한 번 돌릴까 말까 한 적은 양의 세탁물이지만 한번 빨면 양이 제법 되니 겨울철 빨래를 말리기는 쉽지 않았다. 아무리 해가 잘 드는 남향 베란다지만 해가 짧아 저녁 때가 되어도 축축했다.

늦은 밤 베란다에 널어둔 빨래를 걷어 방바닥에 펼쳐 놓다가 '이게 뭐 하는 짓이지... 이렇게 살아야 돼?' 하는 자괴감이 갑자기 들었다. 어지간하면 집집마다 건조기 하나쯤은 있고 남들에겐 고민 거리도 안 될 필수템일 텐데. 

겨울철 건조기 구매를 망설이는 내게 화가 났다. 스스로를 납득시키며 구매할 온갖 이유를 만들면서도 건조기 놓을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신중을 기했다. 미니멀리스트로서의 고민도 있었다.

참 신기하다. 한동안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하려 식탁과 오디오 등 사용하지 않는 것들을 중고마켓에 처분했었다. 그런데 지금 그 자리에 실내자전거와 공기청정기가 들어왔다. 비워낸 만큼 다시 채워졌다는 사실이 놀라웠지만 아무리 봐도 모두 필요한 것들이다. 버릴 게 없다.

미니멀리스트의 길은 진정 먼 것일까. 유일한 주거용 방은 정리가 덜 된 자취방 마냥 물건들이 공간 틈틈이 마구잡이로 자리 잡고 있다. 언제까지 이렇게 어수선하게 있어야 하지? 괜히 공부방이 된 작은방으로 화살이 날아가지만 소용없는 짓이다.

빨래한 옷을 방바닥에 다 널지도 못했는데 발 디딜 틈이 없다. 양손에 들린 빨래를 보니 한숨이 나왔다. '그래 이렇게 살 수는 없어. 미니 건조기라도 사자. 이건 충동구매가 아니야' 팽팽했던 고민의 접전은 그렇게 스스로를 이해시키며 쇼핑몰로 돌진해 의류건조기를 구매하게 했다. 로켓배송이다. 취소를 고민할 여지도 없이 도착했다.

문 앞에 놓인 커다란 박스를 보고 또 한 번 고민했다. 사용할 것인가. 반품할 것인가. 갈팡질팡 하면서도 커다란 박스를 질질 끌고 안으로 들어왔다. 마지막까지도 고민했다는 것만 알아다오. 미니멀리스트의 심정이다. 자리를 차지하는 무언가를 살 때는 늘 고민이다(이래서 다들 더 큰 평수가 필요한 걸까).
 
▲ 미니의류건조기 심사숙고해서 구매한 의류건조기
ⓒ 전미경
 
실내자전거를 밀어내고 그 자리에 건조기를 설치했다. 방에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더 이상 빨래를 방바닥에 널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딱 두 번 사용했다. 그것도 방치하기 아까워 테스트 겸 사용했을 뿐이다. 가성비가 없으니 구매 후에도 처리를 놓고 계속 고민 중인 건조기다.

이유는 건조기를 사용할 정도로 빨래가 많지 않았고 설령 말린다 해도 미니 건조기라 여러 번 돌려야 하는 번거로움에 시간이 많이 소요됐다. 소음은 또 어떤가. 위치한 자리도 불만이다. 빨래의 가습 효과도 없다. 혼자 사는 내게는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은 구매였다. 이제와 반품 하자니 큰 박스를 구하기도, 포장도 귀찮다. 사용 여부를 놓고 고민하는 사이 반품 기한 한 달이 지났다. 

나름 심사숙고 해 구매한 결정이라 번복도 쉽지 않다. 또 언제 건조기가 필요할지 모른다. 팔았다 다시 산 공기청정기처럼. 그러나 볼 때마다 계속 신경 쓰이는 건조기다. 매일 저울질 하던 반반의 고민은 결국 중고 마켓행을 결정지었다. 45일 만이다. 어느 날 늦은 밤 그렇게 갑자기 구매한 건조기는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주방 한구석으로 밀려났다. 중고마켓에서 거래되기를 얌전히 기다리면서.     
  
공기청정기를 반품 한 지 얼마 안 돼 의류 건조기 마저 중고거래에 내놓은 나의 '갑자기'는 이번에도 실망이다. 그럼에도 하루에 몇 번씩 쇼핑앱을 들락거리며 결제와 취소를 반복한다.

그러나 이젠 장바구니에 넣어 두었다 하루가 지나도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구매하는 방법으로 바꿔본다. 그리고 결제를 누를 때 한번 더 생각한다. 취소할 자신이 없는가? 꼭 필요한 것인가? 장단점 리스트를 작성 미니멀리스트의 시선으로 구매를 결정한다.

할까 말까 할 땐 하지 말고, 갈까 말까 할 땐 가고, 먹을까 말까 할 땐 먹지 말고, 살까 말까 할 땐 사지 말라는 어느 교수님의 말씀을 들었다면 겪지 않았을 일들이다. 고민할 때 고민 없이 다시 한번 새겨본다. 하지 마, 먹지 마, 사지 마. 그리고 가라. 결정에 도움 줄 생활의 지혜로서 괜찮은 방법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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