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박자에 맞춘 나의 공간, 나의 집

윤정훈 2024. 1. 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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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영은 모든 것을 살피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요가를 한다. 요가 수련을 통해 몸은 내 영혼의 집이라는 걸 깨닫고 있다.
©unsplash

나와 반대인 사람의 집에 간 적 있다. 처음 만났기에 아는 건 많지 않았지만, 나에게 없는 것이 많은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주고받은 메일 몇 통과 마주 보고 앉아 나눈 짧은 대화 속에서. 그는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소신 있게 밝혔고, 웃을 때는 입을 활짝 벌리며 “하하핫” 호탕한 소리를 냈다. 멋진 사람이었다는 뜻이다. 1인 가구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사는 모습은 달랐다. 그가 거실 겸 서재로 사용하는 곳에는 공간의 가로 너비만 한 책상이 있었다. 그 위에는 책상의 반을 차지하는 차반이, 차반 위에는 자사호가 여섯 개 정도 올려져 있었다. 그 뒤로 사람과 어깨동무가 가능한 키 큰 화분이 두 개, 침실에는 무려 돌침대까지. 곧 이사해야 할 수도 있다길래 물었다. “자취생인 우리에게는 이사가 숙명인데, 이렇게 큰 가구를 들일 때 걱정되진 않았어요?” 그는 커다란 눈으로 바라보며 질문을 곱씹더니 또 한 번 당찬 목소리로 답했다. “결혼하기 전에, 지금보다 더 큰 집으로 가기 전에···. 언젠가 있을 변화를 기다리며 살고 싶지 않았어요. 독립하면서 이미 나만의 삶이 시작된 건데, 임시로 갖추고 살 이유가 없죠. 원하는 삶의 모양을 나중으로 미루면서 엉거주춤 살기보다 하루라도 제대로 살고 싶어요.” 그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심란했다. 방 안을 둘러보다 알 수 없는 기분의 정체를 알았다. 내 방을 채우고 있는 건 최저가 검색으로 구매한 원형 테이블과 종이로 만든 친환경 책장, 철제 프레임을 조립해 사용하는 옷장과 플라스틱 서랍, 프레임 없이 둔 매트리스. 내가 가진 가구들이 ‘조립형’ ‘플라스틱’ ‘~없는’ ‘최저가’ 등의 수식어로 설명되는 사실에 머쓱했던 거다. 당시의 나는 업무차 여러 사람의 집으로 찾아갈 기회가 많았다. 세상에 정말 좋고 멋진 집이 많다는 것도 그때 체감했다. 어떤 사람은 0의 개수를 더듬거리며 세야 하는 고가의 가구로 집을 채우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건축가의 디자인으로 완성한 개성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저마다 사는 모습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일을 좋아했지만 마음속에는 늘 옅은 물음표가 떠다녔다. 시간이 흘렀다. 하던 일을 그만둬 더 이상 타인의 집을 구경할 기회가 거의 없어졌다. 목돈이 생겼을 때 ‘좋은 의자 하나 들일까?’ 잠시 고민했다. ‘의자부터 시작하는 거야. 매년 그 의자랑 어울리는 좋은 가구를 하나둘 모으는 거지.’ 하지만 내 집은 몇 년째 똑같다. 대신 무소속으로 일하다 보니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집과 더 친해졌다. 7평 남짓한 공간은 내가 울 때나 웃을 때나, 고민할 때나 기쁠 때나 모든 순간을 받아주었다. 나도 현재의 삶에 꽤 적응해 내 집을 있는 그대로 좋아하게 됐다. 아마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사람들에게 내가 사는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면 그냥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전에 많이 던졌던 질문도 나에게 해본다. “집 안의 사물들을 소개해 주세요.” “이 플라스틱 서랍장으로 말할 것 같으면 오래 써도 빛이 바래지 않고 화사한 화이트 컬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가벼워서 집 구조를 바꿀 때 옮기기도 좋고, 내구성도 훌륭하죠. 벌써 7년째 저와 살고 있네요.” 값싸고 가벼워도 내 삶에 주는 의미는 사소하지 않다. 사실 이 글은 요가를 하는 동안 떠오른 생각을 담은 것이다. 수련을 시작할 땐 언제나 ‘수리야나마스카라’라는 동작을 반복하는데, 사람들과 템포에 맞춰 동작을 하다가도 정신 차려보면 나는 꼭 조금씩 느리다. 당황하지 않고 ‘이건 뒤처지는 게 아니라 내 박자인 거야’라며 스스로 응원하다가 별안간 그때 만난 멋진 사람이 생각났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 집의 큰 덩어리들은 젊은 날의 인생이 힘없이 날아가지 않게 눌러둔 문진이었다는 것을. 모두가 각자의 사정으로 흔들리면서도 뿌리내리고 살아간다는 걸. 그 사람은 결국 이사했을까? 마음속으로 응원을 보낸다.

박근영

모든 것을 살피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요가를 한다. 요가 수련을 통해 몸은 내 영혼의 집이라는 걸 깨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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