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미신에 매달리는 동아시아 청년들

이현우 2024. 1. 29.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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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갑진년(甲辰年) 새해 설날을 앞두고 중국 전역의 결혼식장은 밀려드는 신랑·신부들로 예약이 불가능할 지경이 됐다.

건국 이래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출산율을 고려하면 중국 정부에서 환영할 일이지만 실상은 '무춘년(無春年)' 미신이 만든 헤프닝이다.

이 무춘년 미신이란 동아시아 삼국에서 쓰고 있는 전통 달력인 음력에서 나온 미신이다.

MBTI나 무춘년과 같은 미신에 대한 맹신은 동아시아 청년들이 얼마나 불안한 상태인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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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주거 불안에 MBTI 등 매달려
청년들 불안이 바로 저출산 원인
[이미지출처=웨딩맵]

2024년 갑진년(甲辰年) 새해 설날을 앞두고 중국 전역의 결혼식장은 밀려드는 신랑·신부들로 예약이 불가능할 지경이 됐다. 건국 이래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출산율을 고려하면 중국 정부에서 환영할 일이지만 실상은 ‘무춘년(無春年)’ 미신이 만든 헤프닝이다. 어떻게든 다음달 5일 입춘(立春) 전까지 결혼하겠다는 사람들이 몰리면서 결혼식장이 만원이 된 것이다.

이 무춘년 미신이란 동아시아 삼국에서 쓰고 있는 전통 달력인 음력에서 나온 미신이다. 2024년은 입춘이 2월10일인 설날보다 빨리 돌아온다. 이는 음력과 양력 간 일수 차이를 고려해 중간에 윤달을 집어넣기 때문인데, 윤달은 작년인 2023년에 들어갔다. 이로 인해 음력으로 따지면 2023년은 입춘이 두 번 돌아오는 일명 ‘쌍춘년(雙春年)’이고, 2024년은 무춘년이 된다.

무춘년은 윤달이 들어간 지난해에 비해 날수가 적기 때문에 적다는 의미로 ‘과년(寡年)’이라고도 불렸는데 이게 과부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무춘년에 시집가면 과부가 된다"는 속설이 생겼다고 한다. 이러한 미신을 기반으로 결혼업체들이 쌍춘년에 결혼해야 잘 산다며 마케팅을 일삼았고, 미신은 더욱 강화됐다.

가뜩이나 2년 연속 인구가 감소하고 신생아 수도 급감한 중국 입장에서 급속한 저출산 기조를 막고 결혼과 출산을 반등시킬 대안을 찾아야 할 판에 이러한 미신까지 퍼지면서 중국 당국도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이처럼 음력과 얽힌 미신을 이용한 마케팅은 과거에는 동아시아 3국에서 모두 유행했지만, 2020년대 들어서면서 유독 중국에서만 나오는 뉴스로 변했다. 무춘년 마케팅의 원산지로 알려진 한국은 미국에서 들어온 새로운 ‘미신’이 퍼지면서 전통적인 미신들이 설 자리를 잃게 됐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2010년대 초반까지는 ‘쌍춘년 마케팅’은 물론 ‘황금돼지띠’ 등 각종 음력 미신을 활용한 마케팅이 크게 유행했지만 코로나19 전후로 거의 사라져버렸다. 이러한 미신과 속설의 자리를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Myers-Briggs Type Indicator)’, 일명 MBTI가 완벽하게 장악했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MBTI에 대한 집착과 맹신은 중국의 무춘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연애와 결혼은 물론 사람과 만나는 자리마다 자신의 MBTI는 명함처럼 꺼내야 하는 것이 됐고, MBTI 궁합은 사주팔자 궁합보다 더 많이 보게 됐다. 심지어 기업 채용시험에서도 볼 정도로 만능 지표가 돼버렸다.

원래 MBTI는 미국의 교사인 캐서린 쿡 브릭스와 그녀의 딸인 이사벨 브릭스 마이어스가 1944년 만든 성격지표다. 학생들의 진로상담을 돕고자 만들었던 것으로 미국에서도 과학적 근거가 없다며 인기가 사라졌는데, 한국에선 뒤늦게 크게 유행한 것이다.

MBTI나 무춘년과 같은 미신에 대한 맹신은 동아시아 청년들이 얼마나 불안한 상태인지를 보여준다. 고용과 주거 불안은 결국 생존의 불안으로 이어지고 있고, 어디에라도 기대고 싶은 심리가 미신의 확산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이 불안이 바로 저출산을 유발하는 근본적인 문제임을 직시해야 한다.

이현우 글로벌이슈팀장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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