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늘어난 후각 상실… 훈련 등 되돌리는 치료해야" [헬스조선 명의]

이채리 기자 2024. 1. 2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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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조선 명의톡톡’ 명의 인터뷰
‘후각 상실 명의’ 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 김창훈 교수
사진=세브란스 병원
길을 가다 어릴 때 먹었던 음식 냄새가 나면, 그 시절의 기억이 나곤 한다. 감정적으로 정겨운 느낌마저 든다. 실제로 후각은 경험적인 기억과 관련이 있다. 어머니의 목소리보단 옷에서 나는 냄새가 더 감정적으로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후각이 상실되면 삶의 질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미각에도 영향을 끼쳐 맛도 제대로 느낄 수 없다. 실제로 경험하지 않는다면, 후각 없는 삶은 상상하기 어렵다.

의외로 후각 상실을 경험하는 사례들은 우리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독감이나 코로나에 걸리고 나서 후각 상실을 경험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향이 강한 음식을 코에 가까이 대거나, 음식을 먹어도 아무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대개 완치 후 2~3주 내 회복되나, 오랜 시간이 지나도 후각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몸에 다른 질환이 생겼거나, 후각 세포가 파괴됐다는 신호일 수 있다. 후각은 사람의 감정과 기억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뇌의 기능과 매우 밀접하다. 후각 상실을 가볍게 여겨선 안 되는 이유다. 일반인이 접근할 수 있는 후각 상실 정보도 다른 질환에 비해 그리 많진 않다. 후각 상실에 대한 모든 것을 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 김창훈 교수에게 물어봤다.

-후각 상실이란 무엇인가?
우선 후각에 대해 알아야 한다. 우리 뇌에는 12개의 신경이 존재하는데, 첫 번째 신경이 바로 후각 신경이다. 특히 코는 뇌하고 연결돼 있는데, 외부로 노출돼 있는 신경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신경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이유는 코의 천장에 위치한 상피세포 덕분이다. 코 안에 있던 분비물 속에 냄새 입자가 녹아들어 가면 후각 상피 세포가 흥분되고, 뇌에서 냄새를 인지한다. 이런 원리로 후각이 느껴지는 것이다. 

사진=김창훈 교수 제공
후각 상실은 말 그대로 후각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냄새를 맡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상실된 정도에 따라 후각 상실과 후각 저하로 나눌 수 있다.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보통 후각 식별 검사를 통해 나온 결과 값으로 구분한다. 예를 들어 후각 검사에서 36점이 만점이라고 치면 점수 구간을 기준으로 21~36점은 정상 수준, 14~20점은 후각 저하, 그 아래 수준은 무후각으로 본다. 다만, 이런 기준 역시 진단을 위한 것일 뿐이다. 정상인 사람 중에서 10점 이상 차이가 나기도 한다.

-후각 상실의 원인은?
후각 상실은 크게 전도성 장애와 감각 신경성 장애로 나뉜다. 전도성 장애는 후각 신경은 정상이나, 냄새가 후각 신경 세포까지 도달하는 길이 막혀 냄새를 맡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코감기, 알레르기성 비염, 부비동염이 대표적이다. 감각 신경성 장애는 후각 신경 자체에 이상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코감기는 나았지만 후각 기능에 문제가 생기거나, 두부외상, 파킨슨병, 알츠하이머가 대표적인 예다.

후각 상실을 호소하는 환자 대부분이 전도성 후각 상실에 해당한다. 코가 부으면 코가 막히기 마련이다. 이때 후각 기능이 저하되는 건 당연한 현상이다. 코감기나, 알레르기성 비염으로도 후각 상실이 나타날 수 있다. 흔히 축농증이라 불리는 부비동염 역시 마찬가지다. 코 주위의 공기가 차 있는 공간인 부비동에 염증이 생겨 콧물이 배출되지 못하면 냄새를 맡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코에 걸리는 모든 바이러스 질환 이후에는 후각 상실을 동반하기도 한다. 실제로 독감이나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이후 후각 상실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바이러스가 몸에 들어오더라도 코가 잠깐 막혔다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저절로 좋아지기 때문에 대개 특별한 치료 없이도 빠르게 후각이 회복된다. 다만, 바이러스 감염 완치 이후에도 후각이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예외적으로 존재한다. 이 경우 감각 신경성 장애에 해당한다. 후각 상피 세포 중에서도 냄새를 맡는 기능을 하는 후각원이라는 세포가 있다. 바이러스가 후각원을 지지하는 세포(리셉터 수용체)에 침투하면 후각원이 파괴돼 후각이 상실된다. 아직까지 정확히 어떤 독성 물질이 후각 세포를 파괴시키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두부 외상도 감각 신경성 장애로 인한 후각 상실을 동반한다. 두부 외상은 머리에 물리적 충격이 가해져 뇌가 손상을 입은 상태를 말한다. 후각 신경은 아주 얇은 뼈를 통해 코 아래로 내려오는데, 뇌 앞쪽 부분이 손상되면 코와 뇌를 연결하는 후각 세포가 파괴된다. 후각 세포 회복이 어렵다. 비슷한 원리로 퇴행성 뇌 질환 역시 후각 세포가 파괴하면서 후각 상실을 일으킨다. 

사진=세브란스 병원
-후각 상실이 퇴행성 뇌 질환과 관련 있다고 했는데…    
실제로 파킨슨 환자 대부분이 후각 상실을 경험한다. 파킨슨병은 뇌간의 중앙에 존재하는 뇌흑질의 도파민계신경이 파괴되면서 나타나는 신경퇴행성질환의 하나다. 실제로 발병 5~10년 전부터 후각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치매를 일으키는 퇴행성 뇌질환인 알츠하이머병 역시 마찬가지다.

만약 자신이 60대 이상이고, 치매와 관련해 가족력이 있는 상태에서 갑작스러운 후각 저하를 경험한다면 추후 발병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다. 이 경우 치매 검사를 한 번 받아보는 게 좋다.

다만, 후각이 떨어지면 무조건 파킨슨병이나 알츠하이머와 같은 퇴행성 뇌 질환에 걸리는 줄 알고 걱정하시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잘못된 생각이다. 후각 상실의 원인 중 하나일 뿐이다.

-후각 상실 유병률은?
노인 인구가 점점 많아지면서 유병률 역시 과거에 비해 현저히 올라갔다. 후각도 나이가 들면 퇴화한다. 더군다나 노인 중에서 치매가 오는 경우도 많아 후각 상실을 경험한다. 코로나가 창궐한 이후에도 후각 질환의 유병률이 확 올랐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후각 상실 환자 중에서 50~60대 여성 환자들이 유독 많다. 그 이유에 대해선 아직 규명하지 못한 상태다.

-후각 상실 진단은 어떻게 하는가?
진단은 우선적으로 비강에 대한 내시경 검사를 시행한다. 구조적 이상, 염증성 질환 여부 등을 확인한다. 이후 후각 키트를 이용해 후각 검사를 진행한다. 이전에는 검사 키트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인증하는 의료기기 품목이 아니었으나, 최근 병원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한 키트가 의료기기 승인을 받았다. 키트는 복숭아, 스피아민트, 초콜릿, 나프탈렌 등 여러 문화권에서 맡을 수 있는 8개의 향료와 한국인에게 문화적으로 친숙한 숯불고기, 누룽지, 홍삼, 한약의 4개 향료로 이뤄졌다. 환자가 향료를 주입한 펜의 냄새를 맡고, 어떤 향인지 판별하는 방식이다.

세브란스 병원이 자체 개발한 후각 검사 진단 키트./사진=세브란스 병원
사진=세브란스 병원
-어떻게 치료하는가?
전도성 후각 장애는 코 세척을 하거나, 코에 뿌리는 약을 쓰는 등 코 막힘 증상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치료를 진행하면 된다. 다만, 부비동염은 항생제를 투여하면 대개 호전되지만, 오래된 경우 물혹이 발생한다. 이 경우에는 재발이 잦다. 재발 방지를 위해 스테로이드를 상황에 맞게 잘 조절해 가며 사용해야 한다. 두부외상, 퇴행성 뇌질환 등 신경성 장애에 의한 후각 상실은 치료법이 따로 없다. 후각 훈련을 해줘야 한다. 후각을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훈련을 통해 후각 신경의 기능이 다시 돌아오게 만들어야 한다.

후각 훈련은 의료 기술은 아니다. 냄새를 잘 맡을 수 있게 끔 훈련하는 과정으로 보면 된다. 자신이 잘 아는 냄새를 4~5개 정도 정해 놓고, 아침과 저녁 두 번 5가지 냄새를 10초 동안 ‘킁킁’ 소리를 내며 맡으면 된다. 냄새가 안 나도 맡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 냄새 맡기가 끝냈다면 10초를 쉬고, 다른 향의 냄새를 맡으면 된다. 중요한 건 지속성이다.

-냄새가 강한 식초를 맡거나 매운 음식을 먹는 게 후각 회복에 도움이 되는가?
조금 도움이 될 순 있겠으나, 제대로 된 후각 훈련 방법은 아니다. 코를 찌르는 식초 냄새와 매운맛은 3차 신경을 함께 자극하기 때문이다. 일부에선 이런 식의 자극도 후각 신경이 돌아오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나, 아직까지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는 없다. 오히려 너무 강한 자극을 주기 때문에 권장하지 않는다.

-후각은 단계적으로 돌아오는가, 아니면 한 번에 회복되는가?
원인에 따라 다르다. 원인이 코가 막혀 발생한 전도성이라면 약물 치료 과정에서 후각이 한 번에 돌아온다. 그러나 후각이 신경이 손상된 감각 신경성 장애라면 회복되는 경우가 드물지만, 점진적으로 돌아온다. 한 번 파괴된 후각세포는 회복이 불가능에 가깝다.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10명 중 2~3명 정도다.

사진=세브란스 병원
-후각 상실을 방치하면 어떤 위험이 있는가?
후각 상실을 방치하면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진다. 후각이 떨어지면 맛을 느끼지 못하고, 밥맛도 없다. 영양실조가 오는 경우도 꽤 있다. 냄새를 맡지 못해 상한 음식을 그냥 먹거나, 불이 난 위급한 상황에서도 냄새를 감지하지 못해 의도치 않은 피해를 볼 수 있다. 실제로 어르신들이 불이 났을 때 제대로 대피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냄새를 잘 맡지 못하기 때문이다.

-후각 상실로 고민하는 환자들에게 마지막 한마디?
대부분 후각이 떨어지더라도 다시 돌아온다. 후각 신경이 손상돼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있긴 하나, 후각 훈련 치료가 계속 개발되고 있다. 제일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는 자세다. 후각 훈련을 6개월 이상으로 한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다 보면 후각이 돌아올 수 있다. 실제로 후각 훈련을 열심히 한 환자들이 예후도 좋았다. 지속적인 훈련이 후각을 정상으로 돌리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김창훈 교수는…
연세대 이비인후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마쳤다. 20여 년간 연세대학교 이비인후과학교실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재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 과장이다. 주요 진료과목 후각 장애, 부비동염, 비부비동 종양, 외비성형 등이다. 후각 장애 분야 연구자인 김 교수는 환자 치료와 더불어 후각 검사 연구에도 힘써왔다. 공동 연구를 통해 한국에게 익숙한 후각원을 도입한 한국형 후각 검사법 YOF(YSK olfactory function) test를 개발했다. 앞으로도 환자들에게 효과적인 치료법을 제시하는 한편, 연구를 통해 후각 상실 원인 규명에 매진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연세대 기도점액연구소 소장을 역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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