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트레킹 중 만난 고산증, 이게 특효약이었네

강재규 2024. 1. 28.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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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떠난 안나푸르나 트레킹] 히말라야에서 맞은 크리스마스

[강재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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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찔한 출렁다리, 도로 옆 절벽... 순간 막막했다 https://omn.kr/2761z

히말라야에서 맞은 크리스마스
 

안나푸르나 트레킹 두 번째 숙소인 밤부 롯지에 도착한 후 우리 일행은 각자의 방에 여장을 풀고, 롯지 식당에 서둘러 음식을 주문해두었다. 히말라야 산장에서 맞는 크리스마스이브가 흔한 일은 아닐 터여서 가이드와 3명의 포터, 그리고 우리 일행 5명은 롯지 식당에 모여서 주문한 음식을 안주 삼아 미리 준비해간 한국 소주와 주문한 네팔 맥주를 마시며 크리스마스이브 파티를 했다.
  
▲ 크리스마스이브 파티 우리 일행들과 가이드, 그리고 포터와 함께 크리스마스이브 파티를 즐기고 있다.
ⓒ 강재규
 
파티가 끝난 후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한참을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었는데, 잠이 깨어 시간을 보니 새벽 2시였다. 화장실을 다녀온 후 다시 몸을 뉘지만 쉬이 잠들지 않았다. 그래서 블로그 정리도 해보고, 블로그 댓글에 답도 쓰고 하다 보니 오전 5시가 된다. 롯지에서는 저녁이면 특별히 할 일이 없어 일찍 잠자리에 들게 되고, 또 잠을 설치지만 이상하게도 이튿날 전혀 피곤하지를 않았다. 이유는 원생자연 히말라야의 맑은 공기 때문이란다.

고산지역이라 와이파이가 연결돼도 인터넷 연결이 원활하지 않았다. 핸드폰을 충전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고산지대임에도 이렇게 와이파이 연결이 되고 인터넷이 된다는 사실에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지 싶다.

안나푸르나 트레킹 3일째, 밤부 롯지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서둘러 아침 식사를 하고 데우랄리를 향해 트레킹에 나섰다. 밤부에서 도반(2600m)까지는 약 1시간 30분이 걸린다. 이 길은 깊은 원시림과 오른쪽은 만년설이 녹아 에메랄드 빛깔의 물이 우렁차게 쏟아지는 계곡을 끼고 걷는 길로, 다행히 심한 오르막길은 많지 않았다. 오가는 트레커들의 인사가 '나마스테'에서 '메리 크리스마스!'로 바뀌었다.

히밀라야 계곡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 빛깔은 몇 년 전 스위스와 독일을 넘나들며 보았던 알프스 계곡의 빙하 녹은 물과 같았다. 보석 가루를 빻아 뿌려놓은 듯, 옛날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던 고향마을의 어둠 속에서 보았던 깜깜한 밤하늘의 은하수 빛깔과도 닮았다.
  
▲ 네팔의 대나무 한국의 대나무와는 달리 무더기로 자란다.
ⓒ 강재규
   
▲ 대나무로 엮은 지붕 대나무를 쪼개 엮어서 지붕을 이었다.
ⓒ 강재규
 
밤부는 대나무가 흐드러지게 자라는 지역이라 밤부(또는 뱀부, Bamboo)라 한단다. 실제 밤부 롯지 인근에는 많은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나무는 뿌리줄기가 땅속으로 뻗어나가 넓게 대숲을 이루지만, 네팔의 대나무는 무더기를 이뤄 자랐다. 대나무가 흔해서인지 트레킹 중 만난 네팔의 민가들은 울타리나 지붕도 대나무를 많이 활용했다.
트레킹 중 마신 네팔 소주 '럭시'
 
▲ 네팔의 소주 럭시 히말라야 롯지에서 이도정 대장과 필자가 네팔 소주 럭시를 마시고 있다.
ⓒ 강재규
   
도반에서 다시 계곡을 지나 이어지는 높은 오르막길을 1시간 30분을 걸어서 히말라야 롯지(2920m)에 도착했다. 점심 식사 전 이도정 대장에게 이끌려 조용한 곳을 찾아 네팔의 소주인 따끈한 럭시를 한 잔씩 했다. "도정아, 이렇게 높은 곳에서 술을 마셔도 괜찮아?"하고 물었더니, "나하고 마시면 괜찮아"라고 했다. 흡연이나 음주는 고산병에 위험하다는 얘기를 들어 살짝 걱정은 됐지만, 친구는 히말라야 트레킹의 경험이 많으니 믿어도 될 듯했다. 그리고 양도 많지 않았으니 문제가 되지 않았던 듯하다.

다시 1시간 30분을 걸어서 힌쿠 동굴(3170m)을 지났다. 동굴이래야 머리 위로 큰 바위가 툭 튀어나온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3000m 고지대로 진입하는 단계라, 체력을 안배해 가며 몸이 고도에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천천히, 천천히(비스타리, 비스타리) 걸었다.

힌쿠 동굴에서 약 1시간을 더 걸어서 세 번째 숙소인 데우랄리 롯지(3200m)에 도착했다. 롯지에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구름이 몰려들었다. '3000미터가 넘는 고산지대란 이런 것이야'라며 보여주려는 듯이 말이다. 기온도 갑자기 떨어졌다. 구름으로 뒤덮여 금방 눈이나 비가 쏟아질 것만 같았다. 조금 움직이니 숨이 가빠지는 느낌이었다.

다음 날 있을 MBC, ABC 트레킹이 슬슬 걱정이었다. 사전에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보거나, ABC 트레킹을 마치고 내려오는 이들에게 ABC 상황을 물었을 때 들었던, "너무 추워 얼어죽는 줄 알았다", "두꺼운 패딩 점퍼까지 껴입고 침낭 속에 들어가도 추워서 잠 한숨 못 잤다"라는 말이 빈말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어쩌랴? '여기까지 왔는데, 부딪혀 보는 거지 뭐!'

이튿날 아침, 데우랄리의 아침은 쾌청했다. 지난밤에 몰려들었던 짙은 먹구름은 사막의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렸다. 그 많던 구름이 눈으로 내려 얼어붙었다면 마지막 남은 MBC와 ABC 트레킹은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아이젠을 꺼내 등산화에 장착해야 할 것이고, 걸음도 느려져서 트레킹에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맑게 갠 날씨가 고맙고도 감사했다.

고산증 특효약은 '하산'
 
▲ 데우랄리 롯지에서 ABC 등정에 나서는 일행들 데우랄리 롯지에서 최종 목적지인 ABC를 향한 트레킹을 나서기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강재규
   
파이팅을 외치고 MBC(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 3700m)로 향했다. 서서히 숨도 가빠지기 시작했다.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후 아내는 심한 두통을 호소했다. 고산지역이라 산소부족으로 인한 고산증 증세인 듯했다. 가이드인 싱거만은 마늘 수프가 고산증 증상에 도움이 된다며 주문을 해왔다. 그리고 준비해간 타이레놀도 먹었지만 별 진전이 없었다.
이도정 대장도 걱정이 돼 아내에게 속은 메스껍지 않은지, 토하려는 증세는 없는지를 물으며, 두통 이외에는 별다른 증세가 없다고 하자 참아보자고 했다. 그 즈음 히말라야 하늘을 나는 헬기 소리가 귀에 들렸다. '저 헬기를 타고 하산을 해야 하나?' 고민이었지만, 일단 참아보기로 했다.
  
▲ 고산증 증상으로 두통을 호소하는 아내 MBC 롯지에서 아내는 고산증 증세로 두통을 호소하고 있다.
ⓒ 강재규
 
MBC 롯지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로 향했다. 일행의 걸음걸이는 늦어졌고 숨도 가빠오기 시작했다. 목표지점이 멀게만 느껴졌다. 드디어 ABC 롯지가 눈에 들어왔다. 두통을 호소하는 아내를 롯지에 남겨두고 이도정 대장과 나는 가이드 싱거만과 함께 안나푸르나 눈 속에 잠든 고 박영석 대장 등을 추모하기 위해 추모비를 찾아 나섰다. 이곳저곳 한참을 헤매다가 힘겹게 추모비를 찾아 한국에서 준비해간 소주와 안주를 올려놓고 묵념을 하고 영원한 안식을 빌고 내려왔다.
 
▲ 고 박영석 대장 등 추모비  이도정 대장과 필자는 박영석 대장 등의 추모비를 찾아 묵념하고 있다.
ⓒ 강재규
   
계속 두통을 호소하는 아내로 인해 저녁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숙소에 들었으나, 눈 한 번 붙이지 못하고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의 긴긴밤을 뜬눈으로 지샜다. 어쩔 수 없이 새벽녘에는 옆방의 한의사 정흥식 원장의 방문을 두드려 깨웠다. 약사인 정원장 부인이 준비해준 고산증 약을 아내에게 먹이고, 정원장은 아내에게 침까지 놓아주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정원장도 밤새 잠 한숨 자지 못한 채 앉아서 밤을 지샜다고 했다. 친구에게는 미안했지만, 아내를 잃을 수도 있다는 걱정이 친구에 대한 미안함을 상쇄하리라 생각했다.

고산증약도 친구가 놓아준 침도 아내의 두통을 해소해주지 못했지만, ABC에서 하산을 시작해 어느 지점까지 내려오자 밤새 아내를 괴롭혔던 두통은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렸다. 아내는 밤새 두통으로 잠 한숨 자지 못했지만 하산하는 내내 전혀 피곤함을 느끼지 않았다고 했다. 그것은 역시 히말라야 원생자연의 맑은 공기 탓이지 싶다. 그리고 고산증에는 어떤 명약보다도 하산이야말로 최고의 특효약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깨닫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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