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봄이 왔나... 계절을 착각하게 만든 그 꽃

성낙선 2024. 1. 27.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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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여행] 안산식물원, 단원조각공원, 노적봉... 김홍도미술관까지

[성낙선 기자]

 안산식물원, 운용매화.
ⓒ 성낙선
한겨울에 여행을 하는 게 만만치 않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날이 계속되면, 몸도 마음도 꽁꽁 얼어붙는다. 이럴 때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갈 수 있는 곳이 식물원이다. 식물원 내부의 기온과 습도 등이 식물들뿐만 아니라 사람들 역시 활동하기 좋은 조건으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한겨울 여행지로 식물원만큼 알맞은 곳도 없다.

경기도 안산시에도 식물원이 하나 있다. 안산시 상록구에 있는 안산식물원이다. 규모로 따지면 서울시 마곡동에 있는 서울식물원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다. 서울식물원처럼 세련되고 화려한 멋도 없다. 그래도 서울식물원과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안산식물원은 무엇보다 따듯한 온실 내부에서 동네 마실이라도 나온 듯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은 곳이다.

안산식물원에서 가까운 거리에 성호공원, 단원조각공원, 노적봉공원, 김홍도미술관 등이 산재해 있어, 마음먹기에 따라 좀 더 다채로운 여행을 즐길 수도 있다. 식물원을 구경하고 나서는 조각 작품들이 즐비한 공원을 거닐다가, 노적봉공원의 소나무 울창한 산책로를 지나, 김홍도미술관에 전시돼 있는 각종 예술 작품들까지 감상하고 나면 긴 하루가 저문다.
 
 안산식물원 내부.
ⓒ 성낙선
동네 사랑방 같은 식물원

안산식물원은 동네 사랑방같이 정겨운 식물원이다. 실제로 근처 마을 주민들이 소일삼아 자주 찾아가는 곳 중에 하나다. 유리 온실 내부 곳곳에 벤치가 배치돼 있다. 심지어 신발을 벗고 올라가 앉아서 쉴 수 있는 마루도 있다. 방문객들이 그 마루 위에 모여 앉아 도란도란 담소를 나눈다. 이런 모습도 다른 식물원들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요즘 안산식물원에서 가장 사랑받는 꽃은 '영춘화'와 '운용매화'다. 모두 꽃이 만개한 상태다. 영춘화는 개나리와 흡사하고, 영춘매화는 매화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똑같이 닮았다. 그 꽃들이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보는 사람마다 벌써 개나리하고 매화가 피었다고 야단이다. 오해는 오래가지 않는다. 다행히 그 나무들 앞에 이름표가 붙어 있다.
 
 안산식물원, 봄을 부르는 영춘화.
ⓒ 성낙선
 
 안산식물원, 꽃이 만개한 운용매화.
ⓒ 성낙선
영춘화는 이름에 '봄을 맞이하는 꽃'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영춘화가 꽃을 피우는 시기는 2~3월이다. 식물원이 아닌 곳에서 먼저 이 꽃을 봤다면, 봄이 오고 있다는 신호를 접한 것이다. 영춘화도 그렇고, 운용매화까지 나뭇가지 가득 꽃을 매달고 있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아닌 게 아니라 정말 봄이 코앞에 당도한 게 아닌가 하는 성급한 생각을 하게 된다.
안산식물원은 3개의 전시관과 야외식물원으로 구성돼 있다. 제1전시관인 열대식물원에서는 극락조화와 선인장 등의 식물을, 제2전시관인 중부식물원에서는 영춘화와 구절초 등의 식물을, 제3전시관인 남부식물원에는 동백나무와 습지식물 등을 심어 가꾸고 있다. 야외식물원에는 장미원, 유실수원, 식물천이원, 연못 등 있다.
 
 안산식물원, 극락조화.
ⓒ 성낙선
 
안산식물원 바깥으로는 바로 성호공원과 단원조각공원이 이어진다. 단원조각공원에서는 산책로를 따라가며 공원 잔디밭 곳곳에 배치돼 있는 다양한 조각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이곳에는 단원미술대전에서 수상을 한 작품들과 함께 국내 중견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주제도 다르고 소재도 다 다른 작품들이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만큼 많다.
 
 성호공원, <생명의 순환> 작품 일부.
ⓒ 성낙선
 
 단원조각공원, <만남의 공존>.
ⓒ 성낙선
 
안산에서 만나는 김홍도

단원조각공원에서 구름다리 하나만 건너면 노적봉공원이다. 이곳에는 해마다 5월이면 수많은 품종의 장미들이 피어나는 장미원과 20여 미터 높이에서 쏟아져 내리는 인공폭포가 있다. 지금은 한겨울이라 주변이 다소 황량해 보인다. 하지만 봄이 오고 장미꽃이 필 무렵이 되면 완전히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이 공원 풍경이 '안산 9경' 중의 하나로 꼽힌다.

노적봉은 해발 143m에 불과한 낮은 산이지만 다양한 풍경을 접할 수 있는 곳이다. 산길을 따라서 진달래군락, 참나무 군락, 리기다소나무군락, 조팝군락, 쪽동백군락, 제비꽃군락, 연산홍길 등이 형성돼 있다. 그런 까닭에 계절마다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가을에는 단풍 명소로 사랑을 받는다. 노적봉 정상에서는 안산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김홍도미술관, 전시중인 단원 김홍도의 작품들. 가운데에 공원춘효도가 있다. 공원춘효도는 '과거시험이 시작되기 직전 새벽녁의 과거장 풍경을 그린 것'으로, 한국전쟁 직후 미국으로 반출됐던 것을 안산시가 경매를 통해 환수한 작품이다.
ⓒ 성낙선
김홍도미술관은 조선 후기 전채 화가로 이름을 날렸던 단원 김홍도의 작품을 전시하고 그의 예술혼을 기릴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단원구'라는 지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김홍도는 이곳 안산시와 상당히 인연이 깊다. 7~8세 무렵부터 20세가 될 때까지, 스승으로 모셨던 표암 강세황의 집에서 살면서 그림과 글을 배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김홍도 미술관은 3개 전시관으로 구성돼 있다. 제1전시관에서는 현재 경기 시각예술 성과 발표전인 '생생화화(야생화)'전이, 제2전시관에서는 안산시 기증전인 장성순·성백주 작가전이 열리고 있다. 제3전시관에서는 단원의 작품을 전시 중이다. 이곳에서 전시 중인 작품은 대부분 복사본이지만, 그 그림 속 이야기는 김홍도미술관에서만 접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작품들 중에 '공원춘효도' 같은 작품은 미국에서 어렵게 환수해 온 것이라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김홍도미술관은 이 작품 한 점을 보러 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이 작품은 과거시험이 열리는 날 '과거장 풍경을 그린 것'으로, 그 시대의 풍속을 솔직하고 아름답게 표현했다. 그 그림이 교과서에서 흔히 보던 것이 아니라, 더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김홍도미술관에서는매년 경기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의 전시회를 개최한다. 지금은 '생생화화 <야생화>'전이 열리고 있다. 사진은 전시중인 작품 일부.
ⓒ 성낙선
다른 뜻으로 불리는 이름

김홍도미술관을 떠나면서 무심코 뒤를 한 번 돌아다본다. 거기에 내 발길을 잡는 무언가가 남아 있다. 쉽게 마음이 떠나지 않는다. 예전에는 단원하면 김홍도가 먼저 떠올랐다. 한국에서 의무교육을 받은 사람치고 김홍도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게다가 주입식 교육을 받은 탓에 단원이 김홍도의 호라는 걸 잊어 버리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단원이 다른 뜻을 가진 단어로 대체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제는 단원하면, 다른 이름이 먼저 떠오른다. 이름만 생각나는 게 아니다. 그해 4월 16일 이후에 벌어진 일들이 자동으로 재생된다. 아이들이 가라앉는 배 안에서 나누던 대화들이 귓전을 맴돈다.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이다.
 
 안산식물원, 붉은 동백꽃 한 송이.
ⓒ 성낙선
그때 이후로 국민이 대형 참사를 겪는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면 또 모를까. 어처구니가 없게도 같은 일이 또 발생했다. 답답한 노릇이다. 반성의 기미도 없이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위정자들을 볼 때마다, 사는 게 그냥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위태롭게 느껴진다. 안산에서 채 피어 보지도 못하고 일찍 져 버린 어린 꽃들을 생각한다.
안산을 떠나기 전에 혹시나 해서, 노적봉을 오른다. 그 산 어딘가에 봄소식을 알리는 꽃이 피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 봄은 멀었다. 미끄러운 산길을 힘들게 오르지만, 결국엔 그 산에서 꽃 한 송이 보지 못하고 내려온다. 산 아래 식물원 안에서 보았던 풍경과는 달리, 산 정상은 여전히 찬 바람이 쌩쌩 부는 한겨울이었다. 꽃들이 활짝 피는 '봄'은 언제 올까?
 
 노적봉 정상.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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