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밴드의 화려한 데뷔 음반 캡틴 비욘드 [B메이저 - AZ 록 여행기]

최우규 2024. 1. 26.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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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최고 밴드 출신들이 들려주는 황홀경

[최우규 기자]

'슈퍼 밴드'는 말 그대로 슈퍼(대단한, 굉장한, 특별한)해야 한다. 멤버 이름만 들어도 놀랄 만해야 한다. 음악사에서 그런 밴드는 꽤 많았다. 킹 크림슨(King Crimson)과 예스(Yes) 출신이 각각 만든 아시아(Asia)나 유케이(U.K.),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이 몸담았던 크림(Cream)이나 블라이든 페이스(Blind Faith) 정도는 돼야 슈퍼 밴드를 자칭할 수 있지 않을까.

슈퍼 밴드는 단명했다. 다들 잘나서, 남의 밑에 있지 못했다. 그러니 앨범도 두세 장 내는 정도였다.

캡틴 비욘드(Captain Beyond)는 전형적인 슈퍼 밴드다. 딥 퍼플(Deep Purple)과 아이언 버터플라이(Iron Butterfly), 조니 윈터(Johnny Winter) 밴드라는 대단한 배경을 가진 아티스트들이 모였다. 좋은 음악을 하고 좋은 앨범을 만들었다.

캡틴 비욘드도 여느 슈퍼 밴드의 전철을 밟았다. 멤버 결속력은 떨어졌고, 음반사와 갈등을 겪었다. 3년의 전성기, 석 장의 앨범, 세 차례 재결성. 안타까운 이 밴드의 약사(略史)다.

이야기는 영국 가수 로드 에번스(Rod Evans)에서 출발한다. 1968~69년 딥 퍼플 첫 앨범 석 장에서 보컬을 맡았다. '허쉬(Hush)'라는 곡은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기타리스트 리치 블랙모어(Ritchie Blackmore)는 불만스러웠다. 더 강렬한 소리를 원했다. 블랙모어와 드러머 이언 페이스(Ian Paice), 키보디스트 존 로드(Jon Lord)는 에번스 노래가 너무 팝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블랙모어는 원래 보컬로 점찍었던 이언 길런(Ian Gillan)에게 합류를 요청했다. 길런은 조건을 내걸었다. "베이스 연주자 로저 글로버(Roger Glover)도 영입해달라." 협상은 순조로웠다.

다음 싱글 곡 '할렐루야(Hallelujah)'를 녹음할 때 에번스와 원래 베이스 연주자 닉 심퍼(Nick Simper)를 따돌렸다. 엉뚱한 스튜디오를 알려줬다. 나머지 멤버는 길런과 글로버를 불러들여 녹음을 마쳤다.

결과에 만족했고, 에번스와 심퍼는 해고됐다. 첫 석 장의 음반 정산과 관련, 향후 발생하는 저작권료를 받거나 일시불로 받는 두 가지 방안이 제시됐다. 에번스는 저작권료를 택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캡틴 비욘드에 가입했다.

당시 아이언 버터플라이는 해체 수순을 밟았다. 기타리스트 래리 라인하트(Larry Reinhart), 베이시스트 리 도맨(Lee Dorman)은 새로운 밴드 구성을 추진했다. 친한 드러머 바비 콜드웰(Bobby Caldwell)에게 연락했다. 여기에 에번스가 합류했다. 그렇게 해서 캡틴 비욘드 첫 앨범 <캡틴 비욘드>가 나왔다. 1972년 일이었다.
 
▲ 캡틴 비욘드 데뷔 음반 커버 캡틴 비욘드 데뷔 음반 커버는 유명 디자이너 어니 체팔루 작품이다.
ⓒ 최우규
 
앨범에는 여러 세대와 장르 음악이 공존한다. 우주를 음악으로 형상화한 스페이스 록, 환각과 신화의 세계를 다루는 사이키델릭과 프로그레시브록, 강렬한 음과 빠른 속도로 질러대는 헤비메탈까지.

첫 번째 곡 '댄싱 매들리 백워즈 – 온 어 시 오브 에어(Dancing Madly Backwards - On a Sea of Air)'는 타이트한 드럼과 액세서리를 많이 연결해 음을 왜곡한 기타 연주로 시작한다. 딥 퍼플 초기 노래를 연상케 한다.

두 번째부터 네 번째 곡까지는 독립적인 곡 같지만, 사실은 접속곡이다. '암워스(Armworth), '마이오픽 보이드(Myopic Void)', '메스머라이제이션 이클립스(Mesmerization Eclipse)'는 베트남 전에서 팔을 잃은 젊은이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과 마약에 취한 상태를 그린다. 음악 색채는 사이키델릭한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와 하드한 레너드 스키너드(Lynyrd Skynyrd) 사이를 오간다.

B면에는 8곡이 들어있으나, 두 개의 긴 노래를 세분화한 것이다. 첫 번째부터 세 번째 곡까지 하나의 주제로 엮여 있다. '사우전드 데이스 오브 예스터데이스 – 인트로(Thousand Days of Yesterdays – Intro), '프로즌 오버(Frozen Over)', '사우전드 데이스 오브 예스터데이스 –타임 신스 컴 인 곤(Thousand Days of Yesterdays - Time Since Come and Gone)' 헤비한 서던 록 느낌이다.

마지막 네 곡도 연작이다. '아이 캔트 필 나싱, 파트1(I Can't Feel Nothin', Pt.1)'으로 시작해 '아이 캔트 필 나싱, 파트2(I Can't Feel Nothin', Pt.2)'으로 끝난다. 블루스록으로 출발했다가 스페이스 록을 선보인다. 호크윈드(Hawkwind) 팬이라면 반가울 곡들이다.
 
▲ 캡틴 비욘드 데뷔 앨범 뒷면 캡틴 비욘드 데뷔 앨범 뒷면이다. 내 것은 일본 워너브라더스에서 나온 음반이다.
ⓒ 최우규
 
데뷔 앨범은 주목을 끌었다. 소속사는 이들을 무대에 많이 세웠다. 멤버들은 살인적인 스케줄에 시달렸다. 이후 멤버를 교체하며 <서피션틀리 브레슬러스(Sufficiently Breathless)>, <던 익스플로젼(Dawn Explosion)> 앨범을 냈지만,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음반사 캐프리콘 레코즈는 이들에게 서던 록 색채를 강화하라고 압력을 가했다. 멤버들은 해산을 택했다.

에번스는 가장 불행한 길을 걸었다. 음악을 접고 약학 사업을 했다. 그에게 사업가·변호사이며 키보드 연주자인 제프 에머리(Geoff Emery)가 접근했다. "딥 퍼플을 재결성하자"라고 제의했다. 딥 퍼플은 3년 전부터 활동하지 않았다.

에번스는 에머리가 이끄는 연주자들과 함께 1980년 5월부터 다섯 달 동안 북미 40곳을 도는 순회공연을 시작했다. 일부 팬들은 분노해 소요를 일으켰다. 진짜 딥 퍼플이 아니었으니까. 딥 퍼플 예전 멤버들과 소속사도 소송을 걸어왔다.

67만 달러의 손해배상과 밴드 이름 사용 금지 판결이 났다. 돈이 없던 에번스는 딥 퍼플 첫 세 앨범의 로열티를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영영 무대를 떠났다. 그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 2016년 딥 퍼플이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들었을 때 에번스는 초청받았으나, 나타나지 않았다.

1970년 대 초반 영미권의 진중한 음악의 집대성을 듣고 싶다면, 캡틴 비욘드의 이 데뷔 음반이 딱 들어맞는다. 딥 퍼플의 중후기 헤비한 사운드보다 변화가 강한 초기 사운드를 좋아하는 팬에게도 알맞다. 에번스는 불행한 젊은 날을 보냈지만, 이렇게 딥 퍼플의 명반들과 캡틴 비욘드를 후대에 남겼다. 콜드웰은 1998년 캡틴 비욘드를 되살려 현재까지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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