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한국? 무서워요” 대학가 점령한 중국식 상점

2024. 1. 24.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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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전용 상점 속출… 사장도, 직원도 중국인
‘안 그래도 싫은데’ 재학생들은 ‘싸늘’
“어쩔 수 없는 흐름, 상생할 방법 찾아야”

중국 유학생이 크게 늘면서 국내 대학가가 중국풍에 휩싸였다. 마라탕·탕후루 열풍에 이어 식당과 학원, 노래방 등 중국인 전용 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일부 한국 학생들은 간단한 대화조차 통하지 않는 곳이 늘고 있다며 불편을 토로할 지경이다.

식당·학원·노래방… 차이나타운 방불
지난 16일 찾아간 서울 회기동 경희대학교 인근 거리에는 중국어 간판을 단 가게들이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한국에서 인기인 마라탕과 훠궈집은 물론 중국 본토 음식을 파는 가게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경희대 부근에 있는 사천요리 전문점 '촨후' 입구. 간판과 메뉴가 모두 중국어다.정고운 인턴기자


학교 근처에 있는 사천요리 전문점은 근방의 중국인들 사이에서 맛집으로 통한다. 사장 황모(38)씨는 처음부터 중국 유학생들을 타깃으로 가게 문을 열었다. 메뉴는 중국 사천요리를 고스란히 가져왔다. 조만간 충칭식 훠궈를 추가할 예정이다.

황씨는 “주 손님은 중국 학생들이다. 홀 주문에 배달까지 합하면 월매출은 4000만원이 넘는다”고 전했다. 점원은 모두 중국인이다. 황씨는 “한국인을 고용하고 싶지만 중국어가 가능한 사람이 없다”고 설명했다.

경희대 정문 앞에 마주 보고 위치한 중국 운전학원들. 김지혜 인턴기자


장사가 가장 잘 되는 정문 앞에는 중국 운전학원이 자리 잡았다. 중국인 직원 수동(33)씨는 “작년 6월에 문을 열었는데 지금은 한달에 40~50명이 등록하고 있다”고 전했다. 학원 맞은편에도 중국 운전학원이 있어 두 곳이 경쟁하고 있다.

고려대학교가 있는 안암동 거리도 비슷한 상황이다. 중국 노래방인 ‘KTV’와 중국 통신매장 ‘판다 통신’이 눈에 띈다. 이들은 중국인 유학생이 많은 대학가마다 하나씩 위치한 체인점이다. 중국인 혹은 중국어가 가능한 직원만 채용한다.

성균관대학교는 상권의 중국화 현상이 두드러졌다. 쪽문 주변에서 10년 넘게 부동산을 운영해 온 공인중개사 김모(55)씨는 “중국 상점이 꾸준히 늘고 있다”면서 “특히 정문·쪽문 원룸촌 주변에 눈에 띄게 몰려 있다”고 설명했다.

모두가 잘 되는 건 아니다. 치열한 경쟁에서 밀려나는 가게들이 속출하고 있다. 안암역 3번 출구 쪽에 있는 중국 가정식 식당 사장 김모(62)씨는“이 주변 식당은 죄다 나눠먹기식”이라면서 “손님이 줄기도 했고 그마저 오는 손님은 대부분 한국인”이라며 씁쓸해했다.

경희대 부근에서 12년째 중국식 생선요릿집을 운영하는 강모(40)씨 역시 “어느 순간부터 중국 식당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졌다”며 “불경기에 가게가 이렇게 많으니 찾아오는 손님은 오히려 줄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마라탕이 유행하자 마라탕집이 정신없이 생겨났는데세달, 여섯달 만에 망하는 집이 너무 많다”고 덧붙였다.

“당연히 싫지 않겠어요?” 한국 학생들은 싸늘

성균관대학교 정문·쪽문 거리의 중국 음식점들. 정문 앞에는 총 14곳, 쪽문 거리에는 총 30곳의 상점 중 9곳이 중국 상점이다. 김지혜 인턴기자

낯설게 변한 학교 앞 풍경을 바라보는 한국 학생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성균관대 정문 주변에 거주하는 김모(25)씨는 “원래 향신료 냄새에 약한데 도전하는 심정으로 방문했다가 중국어로만 쓰인 메뉴판을 보고 쫓겨나듯 나온 경험이 많다”면서 “집 주변에 못 가는 음식점이 많아져서 불편하다”고 말했다.

학교 앞에서 식당을 찾을 때마다 유학 온 느낌이 든다는 이모(22)씨는 “한식을 먹으려면 검색해야 하고, 중식을 먹으려면 구경하다 골라서 들어가면 되는 지경”이라면서 “중국어로 가득한 간판을 보면 무섭다는 느낌마저 들어 학교 주변이 이제는 편하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이런 불만의 이면에는 중국 학생들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이 깔려 있다.

김씨는 “조별 과제가 생기면 중국 학생들을 피해서 조를 짠다”면서 “그들은 수업을 이해하지 못했고 과제 자료 조사도 힘들어했다. 열정적인 태도를 보인 학생은 소수였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학생들이 달갑지 않아서 그런지 중국화 된 거리가 더욱 불편하게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재학생 심모(23)씨는 “소통할 마음이 없어 보이는 학생들을 수업에서 많이 만났다. 유학을 왔음에도 한국어·영어 대화를 피하고 유학생들끼리만 다니는 모습이 의아했다”고 말했다.

유학생 매년 느는데… “이제는 받아들일 때”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외국인 유학생 수는 16만 6892명으로 10년 새 2배 이상 늘어났다. 이 중 중국인 유학생이 6만 7439명으로 가장 많다. 경희대, 성균관대, 고려대는 교내 중국인 유학생 수 최상위권(1·2·4위) 대학이다. 세 대학 모두 중국 유학생 비율이 전체 유학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성균관대 학생 오모(24)씨는 “이제는 다문화 사회를 받아들여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 유학생들과 함께 양꼬치 전문점을 방문한 기억을 떠올리며 “음식이 생각보다 맛있었고 한국과 다른 중국 문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즐거웠다”면서 “타국에 이런 편한 장소가 있다는 게 유학생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원씨의 가게 메뉴판과 실제 제공되는 마라탕. 원씨는 성균관대학교 앞에 최초로 마라탕 전문점을 개업했다. 김지혜 인턴기자


해당 양꼬치 전문점 사장 원모(42)씨는 마라탕 전문점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원씨는 “중국 상점들도 한국 학생 유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가게는 중국 유학생들을 따라간 한국 학생들이 대학 커뮤니티와 블로그에 추천 글을 올리며 입소문을 탔다. 원씨는 “한국 학생들이 찾아와 준 덕에 가게를 3개까지 넓혔다”고 했다.

대학은 중국 학생을 포함한 유학생 수가 앞으로 늘어날 것이라 이야기한다. 저출산 영향으로 학생 수가 줄어들었지만 유학생 수요는 꾸준히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27년까지 외국인 유학생을 30만명 유치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고려대학교 대외협력처 관계자는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학생들을 계속 선발할 예정”이라며 “바람직한 다문화 캠퍼스를 위해서는 타문화를 이해하고 수용하려는 개방된 자세와 외국인 학생들의 국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교내 문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 정종현 교수는 “해외 유학생들에 대한 편견은 직접 만나고 교류하는 과정에서 해소될 수 있다”면서 “외국인 유학생과 이민자들을 계속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인만큼 친하게 지내는 방법부터 연습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정고운·김지혜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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