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가고 싶으면 630만원" 단속 비웃는 고액 컨설팅 학원들

최민지, 서지원 2024. 1. 22.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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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 대입 컨설팅 업체들의 입간판들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 서지원 기자

“서울대 의대는 학종(학생부종합전형) 컨설팅 안 붙이는 애들이 없어요. 저희는 과목별로 한 학기씩 싹 봐요, 과목당 90만원 받고…. 국·영·수·사·과(화학·물리) 여섯 과목 하시면 540만원, 여기에 창체(창의적체험활동) 붙이면 630만원.”

의대 입시를 준비하는 고교 1학년 정모군이 어머니와 함께 지난 17일 서울 대치동 A학원에서 들은 상담 내용이다. 내신과 학교생활기록부 관리를 주력으로 하는 학원이었다. 학원 관계자는 “말이 컨설팅이지 실제론 우리가 수행평가도 다 해준다. 그 시간에 아이는 공부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같은 날 대치동의 B학원은 ‘컨설팅’ 능력을 과시하는 듯한 홍보가 한창이었다. 비치된 홍보 전단지엔 ‘입학사정관 & EBS 진학상담 위원 출신의 ○○○ 대표’라는 사람의 이력과 사진이 담겨 있었다. 그가 근무한 서울 주요 사립대, EBS 진학상담실과 서울 모 구청 교육지원과 근무 이력 등 공교육 영역에서 쌓은 경력이 빼곡했다.

교육부가 ‘컨설팅 학원(진학 상담지도 교습과정 운영)’의 고액 교습비 수수 등을 특별점검(12월 12일부터 2월 16일까지)하고 있지만, 서울 대치동의 학원가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앞서 교육부는 “교습비 초과 징수 여부, 학원 종사자의 입학사정관 경력 부풀리기 등 과대·거짓 광고를 집중 확인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는 최근 서울 대치동의 컨설팅 학원 10여곳을 돌아봤다.


“일회성 상담 45만원부터”…보고서, 대회는 추가 비용


정근영 디자이너
대입 컨설팅 학원은 수시모집 정원이 대폭 확대된 2010년 전후 크게 늘었다. 최근엔 수시 학종(학생부종합전형)에서 자기소개서 등의 서류보다 학생부 내용이 중요해지면서 고교 1~3학년 전 활동을 ‘토털 케어’ 해주는 추세라고 한다.

컨설팅은 일회성 상담부터 시작된다. 상담 가격대는 1시간30분 기준 45만원 전후로 형성돼 있었지만, 그보다 높은 경우도 있었다. 학원장이 직접 컨설팅한다는 B학원 관계자는 “고3은 1~2시간 컨설팅에 55만원”이라며 “1학기 학생부 관리의 가이드라인을 잡고 향후 작성할 보고서 등을 정해준다”고 했다. C학원은 “일반 상담은 90분에 45만원이지만, 정시 모집 상담은 60분에 60만원”이라고 말했다.


보고서 대리 작성은 공공연한 비밀


학원 컨설팅의 주된 내용은 학생부에 기재할 보고서 작성, 대회 준비 등이다. 모두 도와주는 대신 수백만원의 컨설팅 비용을 요구한다. D학원 관계자는 “8월까지 선생님을 3번 정도 만나는데 200만원”이라며 “중간중간 피드백도 해주고 수행평가 지도도 해준다. 학생이 써서 보내면 선생님이 첨삭해주는 형식”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실제 수시 원서를 쓰려면 따로 55만원을 내고 상담을 받아야 한다”며 “7월 기말고사 끝나고 한 시간 반, 9월 모평(모의고사) 끝나고 30분 등 총 두 시간 상담을 해준다”고 덧붙였다.
E학원은 “지금부터 9월까지 450만원에 주요 과목과 창체까지 관리해주겠다”면서 “리포트 작성이나 별도 실험이 필요한 대회 준비는 별도로 150만원의 비용을 받는다”고 했다. F학원은 “이과는 6개월에 240만원을 받는데, 국어나 사회과목 컨설팅까지 합하면 300만원”이라고 말했다. 앞서 언급한 A학원 관계자는 “애들이 조금이라도 써오면 첨삭해주는데, 대치동 애들은 (학원이) 다 해준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보고서 대리 작성이 공공연한 비밀이란 얘기다.
서울 대치동의 한 대입 컨설팅 업체에서 광고하고 있는 인쇄물 중 컨설턴트 경력 부분 내용 일부. 전직 입학사정관, EBS 진학상담위원 등의 경력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 인쇄물 캡쳐


컨설팅 시장 키운 대입 ‘불확실성’


학원가에선 2024학년도 수능이 ‘역대급 불수능’이었던 게 대입 컨설팅에 다시 불을 붙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2025학년도엔 의대 증원 이슈까지 맞물리며 수시·정시 구분할 것 없이 수험생과 학부모의 불안감이 커져 컨설팅 업체를 찾는다는 것이다.

한 입시업체 관계자는 “수시는 물론 정시도 선택과목별 점수 차이, 대학별 선택과목 반영 비율 등 점점 더 복잡해지다보니 수험생·학부모 개인 입장에서 합격·불합격 예측 가능성이 점점 더 떨어지고, 결국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외부 컨설팅을 받아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수백만원을 쓰고 후회하는 학부모들도 많지만, 자식 문제인 만큼 ‘안 쓰고 후회하느니, 쓰고 후회하는 게 낫다’는 분들이 대다수”라고 했다.


“자녀 문제, 제보·신고 거의 없어”


지난 11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24 교육 연속 세미나 '사교육 카르텔 타파 이젠 제대로 하자'에서 양정호 성균관대 교수가 발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육계에서는 고액 컨설팅을 적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대치동의 한 컨설턴트는 “간판에는 ‘컨설팅’을 내걸지 않고 영업하는 곳도 많다”며 “단속 대상을 분류하는 것부터 힘든 일”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서초교육지원청 관계자는 “관내에 학원‧교습소‧개인과외 등이 다른 지역에 비해 많아 컨설팅 학원 단속에만 집중하기는 힘든 여건”이라고 말했다.

수시·정시 등 특정 시즌에만 은밀하게 운영하고 사라지는 업체도 많아서 점검이 쉽지 않다. 교육부 관계자는 “현장 점검보다는 제보를 통해 정황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직 교육지원청 관계자는 “지원청 공무원은 수사권한이 없는 데다가 자녀 문제인 만큼 조금이라도 해가 될까 싶어 신고도 거의 없다”고 했다.

‘시간당 30만원’이하는 상한선이 무의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입시업체 관계자는 “온라인·이메일 상담 등으로도 해당 시간을 채울 수 있기 때문에 업체가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법적 테두리 안에서 고액 컨설팅이 가능하다”고 했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수를 주축으로 한 시민단체는 법정 상한선 이상 대입 컨설팅 비용을 지출한 학부모를 모집해 초과분을 환급받도록 하는 집단소송을 추진 중이다.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국장은 “무한 경쟁 교육, 학벌우선주의를 깰 수 있는 근본적인 정책들이 마련돼야 학부모들의 사교육 불안감이 줄어들고, 고액 컨설팅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다”며 “발생할 수밖에 없는 현상을 현실적으로 어려운 관리·감독으로 잡으려고만 할 게 아니라, 근본적인 교육 개선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민지·서지원 기자, 송다정 인턴기자 choi.minji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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