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깅 트래블]전나무 숲길의 번뇌…채석강에 띄워 보낸다

김희윤 2024. 1. 2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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⑪고즈넉한 풍경 가득 전북 부안
국보 지정 동종, 전나무 숲길 명소 '내소사'
켜켜이 쌓인 지형이 빚은 채석강의 절경

"저는 장인 한중서를 만난 인연으로, 고려 종에 담긴 뛰어난 주조 기술과 문양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동종 전문가로서 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전북 부안군 진서면 내소사의 설경. [사진제공 = 전라북도]

지난 9일 전북 부안군 진서면 내소사에서 개최된 내소사 고려동종 국보 승격 기념식에서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내소사 동종을 제작한 한중서와의 인연을 소개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홍익대 대학원 재학 당시 금속공예 전공으로 청동북을 주제로 한 석사학위논문을 준비했고, 이 과정에서 장인 한중서를 알게 됐다고 소개했다. 한 청년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천 년 전 장인의 기술은 이날 국보 승격식을 계기로 다시 한번 대중의 주목을 받으며 그윽한 아름다움을 과시했다. 동종의 수려함 못지않게 내소사는 여행자들 사이에서 '치유의 공간'으로 알려진 대표적인 명소 중 한 곳이다.

국보 지정된 내소사 고려동종.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모두 다 소생하는 곳" 치유받는 전나무 숲길 '내소사'

본래 내소사는 백제 무왕 34년(633년) 혜구 두타스님이 세운 절로, 원래 창건 당시 이름은 소래사(蘇來寺)였다고 한다. '이곳에 오는 분들 모두가 다 소생하게 해주십시오' 라는 원력을 품은 소래(蘇來)라는 명칭은 이 절이 위치한 능가산이 이름을 딴 능가경에 나오는 구절에서 유래한 것이다. 비록 18세기 이후 내소사로 그 이름은 바뀌었으되, 여전히 세사에 지친 불자들을 비롯한 여행객의 발걸음은 이곳에 모여 소생을 간절히 염원하고 있다.

내소사가 치유의 공간으로 명성을 얻게 된 데에는 일주문부터 대웅전에 이르기까지 약 500M가량 이어진 전나무 숲의 공이 크다. 전나무 숲길이 계속되다 천왕문을 지나 좁은 다리를 건너고 나서부터는 벚나무 길, 단풍나무 길로 바뀐다. 전나무 숲에서 벚나무 그리고 단풍나무로 이어지는 고즈넉한 산사 초입길은 사시사철 내소사를 찾는 여행객에게 매 계절 다채로운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내소사 전나무길의 설경. [사진제공 = 내소사]

내소사 전나무숲길은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숲길, 경기도 포천시 광릉수목원 숲길과 함께 '전국 3대 전나무 숲길'로도 꼽히는데, 이곳의 전나무 숲은 조선 인조 11년(1633년)에 청민선사(靑旻禪師)가 임진왜란 때 소실된 사찰을 중건하면서 사방이 너무 황량해 심은 것이 시초라고 전해진다. 30m가 넘는 울창한 전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에 숲을 걷기만 해도 마음속 걱정, 근심 잠시간 내려두고 평안을 얻는 순간을 만끽할 수 있다.

채석강의 낙조. 수만권의 책을 켜켜이 쌓은 듯한 지형과 바다 풍경, 멀리 내려앉는 노을의 풍경은 오직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천혜의 절경이다. [사진제공 = 한국관광공사]
세월이 켜켜이 쌓아 올린 해안 절경 '채석강'

숲속에서 몸과 마음이 다시금 '소생'했다면 부안의 명물 채석강을 둘러볼 차례다. 당나라 시인 이태백이 시를 읊고 술을 마시며 풍류를 즐겼다는 중국 차이스지(采石磯)와 지형이 흡사해 같은 이름이 붙게 된 채석강은 격포항 인근 해안 절개지에 있다. 이름에 강이 있어 흔히들 한강이나 섬진강 같은 지형을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로는 바다를 마주한 해안 절벽 지대를 통칭하는 지명이다.

수 만권의 책을 켜켜이 쌓은 듯한 지형은 선(先)캠브리아대(약 46억~5.41억 년 전) 화강암과 편마암이 기저층을 이룬 것에 백악기(약 7000만년 전) 때 퇴적한 성층이 바닷물에 의해 침식돼 겹겹이 층을 이루며 완성된 것이다. 세월이 쌓아 올린 지형의 아름다움만큼이나 이곳에서 맞는 낙조의 깊이는 그 어떤 노을도 비견할 수 없는 특별한 풍광을 자랑한다.

적벽강 해안 길을 따라 북쪽으로 3km쯤 올라가면 오랜 세월 이곳을 지켜온 수성당이 변산반도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곳은 칠산바다를 수호하는 해신(海神) 개양할미를 모시고 제사를 올리는 당집으로 지방유형문화재 제58호로 지정된 곳이다. 개양할미 설화는 흡사 '힘쎈여자 강남순'을 떠올리게 하는데, 서해 칠산바다 일원의 길흉화복과 원화소복을 관장하던 개양할미는 해신으로 키가 구름 위로 솟을 만큼 크고 굽 나막신을 신고 서해를 종횡무진하며 너무 깊은 곳은 메우고, 또 얕은 곳은 파서 고르게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개양할미가 어김없이 바다에서 작업하던 중 곰소 앞바다 '여룬개'에 이르려 발이 빠져 치마가 젖게 되었다. 화가 난 개양할미는 치마에 돌을 가득 담아와 ‘여룬개’를 메웠다고 한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그곳 수심이 깊어 부안 토박이들 사이에서는 "깊기가 곰소 둠벙속 같다"는 속담도 전해온다.

변산반도 해안길 중간에 위치한 수성당(지방유형문화재 제58호)에서 굿판이 벌어지고 있다. 이곳은 해신인 개양할미 설화가 깃든 곳으로 원삼국시대 이전부터 제사가 이뤄진 지역으로 발굴조사 결과 확인됐다. [사진제공 = 부안군]

'힘쎈여자'의 시초, 수성당에 깃든 개양할미 설화

다산과 풍요를 가져다준다는 개양할미는 딸만 8명을 낳았는데, 이 딸들을 각각 위도와 곰소, 고창 영신당, 돈지, 계화도, 새포, 대벌리 등 당집에 보내고 막내딸은 차마 보내지 못하고 자신이 데리고 수성당에 머물렀다고 하여 지역민들은 이곳 당집을 '구낭사(九娘祠)'라고 부르기도 한다. 국립전주박물관이 1990년대 수성당 일대를 발굴조사 했는데, 당시 출토된 유물들을 분석한 결과 원삼국시대(기원전 2세기~기원후 3세기) 이래로 해양제를 지낸 제사 터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수성당집 아래로는 대나무밭이 무성한데, 조선 시대에는 나라에서 관리하는 죽전(화살) 밭이었다고 기록돼있다. 화살제작에 사용되는 대나무(신우대)를 베어 저장막에 모아두었다가 한양으로 수송했는데 '대화살 저장막이 있는 마을'이라 하여 이곳 지명이 대막골(竹幕洞)이 됐다고 한다.

변산8경 중 2경으로 꼽히는 직소폭포 풍경. ⓒ이연재 [사진제공 = 부안군청]

용을 품은 변산의 보물 '직소폭포'

부안까지 왔으니 변산의 보물, 직소폭포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서해안권 국가지질공원 명소로 지정된 직소폭포는 변산 8경 중 2경에 들 만큼 절경을 자랑하는 명소다. 높이만 30m에 달하는 바위 위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시원한 물줄기는 보기만 해도 마음이 뻥 뚫리는 듯한 쾌감을 선사한다. 물줄기가 연못으로 바로 떨어져 직소(直沼)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내륙 깊숙한 곳에 보물처럼 직소가 숨겨져 있어 이 일대를 '소금강'이라고도 부른다. 직소폭포는 봉래구곡의 제2곡으로 꼽히는데, 내변산에서 약 20km에 이르는 신비로운 하천 지형 아홉 곳이 봉래구곡이다. 상류부터 1곡 대소, 2곡 직소폭포, 3곡 분옥담, 4곡 선녀탕, 5곡 봉래곡인데, 6~9곡은 1996년 부안댐 완공으로 물에 잠겨 이제는 볼 수 없는 풍경이 됐다.

직소폭포의 못 아래에는 용소가 있다. 용이 살았다는 전설만큼이나 주변에 울창한 나무와 암벽이 조화를 이뤄 신비롭고도 아름다운 절경을 만들어낸다. 입구부터 완만한 경사로 이뤄져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방문할 수 있는 탐방 코스다. 길이는 약 2.3㎞이며 계절마다 색을 바꿔 입는 숲의 전경과 더불어 다양한 동식물을 살펴볼 수 있다.

곰소염전 맞은 편에 자리한 슬지네제빵소. 2000년 읍내에 문을 연 슬지네찐빵이 곰소염전으로 확장 이전하며 지역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사진제공 = 슬지네제빵소]

지역을 살리고 곰소항 명소로 떠오른 '슬지네제빵소'

예로부터 부안은 젓갈과 소금으로 유명한 지역으로 곰소항은 염전으로도 대중에게 각인된 곳이다. 최근 곰소 염전을 찾는 여행객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는데, 특이한 것은 이들이 소금이나 젓갈이 아니라 하나같이 종이봉투에 가득 담긴 빵을 사 온다는 점이다. 검은 지붕과 바닷내음 물씬 풍기는 곰소염전 맞은편에 자리한 슬지네제빵소는 2017년 문을 연 빵집으로 원래는 부안 읍내에서 유명한 찐빵집이었다. 2000년 김갑철 대표가 둘째 딸의 이름(슬지)을 내걸고 찐빵을 만들어 팔기 시작하며 '슬지네찐빵'이 상표가 됐고 이를 상표등록 하면서 오색 찐빵을 만들어 특허 출원하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찐빵의 인기가 높아지며 전국에서 손님이 몰려들자 연일 과로를 거듭한 대표 아내 건강이 악화하기 시작했고, 김 대표는 서울에서 직장생활 중인 둘째 딸 본인에게 빵집 운영을 도와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처음에 아버지의 부탁을 거절한 딸은 중앙대 경영대학원에 진학해 경영 공부를 마치고 난 뒤에야 고향으로 돌아와 기왕 하는 장사, 제대로 하겠다며 슬지네 찐빵을 슬지네제빵소로 바꾸고 장소 역시 읍내에서 벗어나 곰소염전 옆 넓은 부지를 확보해 새롭게 문을 열었다.

딸의 판단은 주효했다. 지역 주민보다 관광객 등 유동 인구가 많은 곳에 빵집이 문을 열자 이곳을 찾은 여행객의 발걸음이 모이기 시작했고, 곰소항에 새로 문을 연 지 3년 만에 신관을 건립하며 부안의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지금은 연간 30~40만명의 손님이 이곳을 찾고 있으며, 제빵소에서 연간 사용하는 팥만 30t, 밀가루는 30t, 찹쌀은 1t에 달한다. 대부분 부안과 인근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사용하고 있어 제빵소 매출이 늘어나면 동시에 지역 농민 소득도 정비례해서 증가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있다.

오색 찐빵이 대표 상품이었지만 젊은 고객층을 겨냥한 다양한 상품개발도 진행 중이다. 직접 이곳을 찾은 날 오색 찐빵은 이미 동난 상태였다. 대신 국산 밤과 우리 밀에 국산 팥을 넣어 만든 찐팥밤빵, 인절미 빵, 크림치즈 찐빵 등 다양한 제품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주말이나 휴일이면 부안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찾아오고, 지금은 지역 주민과 더불어 이웃 도시에 사는 사람들 또한 나들잇길에 들르는 필수코스로 떠올랐다. 이런 성공에 힘입어 김슬지 대표는 2022년 지방선거에 비례대표로 부안 출신 최초 여성 도의원으로 당선돼 지금은 빵집을 떠나 의정활동에 매진하고 있다고 한다.

찾아가는 길내소사

차량 : 서해안고속도로 줄포나들목을 빠져나가 보안사거리(영전검문소)에서 좌회전하여 곰소를 지나면 내소사주차장이 나온다. 호남고속도로에서는 정읍나들목을 빠져나와 김제·부안 방면으로 국도를 달리다가 고부~ 줄포 ~보안사거리(영전검문소)을 지나면 된다.

대중교통 : 서울 강남고속터미널 호남선이나 동서울터미널에서 고속버스로 부안읍에 도착해서 내소사 행 300번 군내버스를 갈아탄 뒤, 종점인 내소사 입구에서 내리면 된다. 부안읍에서 시내버스는 아침 6시부터 오후 8시 30분까지 30분마다 출발하며, 약 50분 정도 소요된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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