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기 위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

이경진 2024. 1. 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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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은 본래 잠자는 곳이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고급 호텔들이 고객에게 새삼 ‘괜찮은 수면’을 약속하기 시작했다. 팬데믹이 일으킨 혼란과 건강에 대한 욕구가 스파를 비롯한 호텔 숙박의 모든 서비스로 스며든 결과일까?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수면 관광’이라는 이름의 ‘잠자기 위한 여행’이 증가 추세다. 구글 트렌드(Google Trends)에서 발표한 데이터에 따르면 2023년은 전 세계적으로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수면’을 검색한 해다. 사람들은 취침 시간 루틴, 수면 자세에 대해 배우고 ”나는 왜 항상 피곤한가?”를 이해하기 위해 인터넷을 사용했고, 고급 호텔과 웰니스 리조트에서는 고급 침구와 암막 커튼을 뛰어넘는 수면 프로그램을 출시하고 있다.

영국 메이페어의 브라운스 호텔의 ‘포르테 윙크스(Forte Winks)’ 패키지는 몽환적이고 방해받지 않는 9시간의 잠을 약속한다. 완벽한 침대와 아침 식사, 실크 아이 마스크, 페이스 릴랙싱을 위한 히비스커스 나이트 크림을 제공한다. 턴 다운(Turn Down) 서비스에는 신선한 캐모마일 플라워 티와 베개 미스트가 포함돼 있다. 브라운스 호텔의 수면 프로그램을 디자인한 아이린 포스테는 이렇게 말한다. “편안한 저녁 루틴을 돕기 위해 고안된 프로그램이죠. 매우 중요한 서비스지만 복잡하지는 않습니다. 요즘은 호텔마다 수면 패키지가 다양하게 준비돼 있어요. 우리 프로그램은 꽤 간단한 편이죠.”

illustrator ÓSCAR DUARTE

이보다 더 교육적이고 강력한 도움을 주는 수면 패키지도 있다. 첼시의 호텔 더 카도간(The Cadogan)은 수면 컨시어지를 갖추고 수면 전문가이자 최면 치료사인 말민더 길(Malminder Gill)과 협력해 객실에서 녹음된 명상 프로그램과 다양한 소재와 높이의 베개 메뉴, 취침 티 서비스, 아로마와 미스트가 포함된 서비스를 마련했다. 다른 도움이 필요한 경우 최면 치료사와 1:1 세션을 제공하기도 한다. 2020년 초에 등장한 영국 최초의 수면 호텔 런던 제드웰(Zedwell)은 시차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낮에 잠자야 하는 야간 근무자처럼 완전히 전원을 꺼야 하는 사람들에게 최적의 환경을 제공한다. 750개 객실에 방음 장치가 설치됐으며 TV와 전화, 창문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면 방해 요소를 걷어낸 미니멀리즘 객실이다. 이어 질 높은 수면을 위한 공기정화장치, 천연 참나무로 마감한 실내 데커레이션, 자체 개발한 발열 안대를 통해 투숙자가 최적의 수면에 취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가 하면 뉴욕의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을 위해 파크 하얏트 뉴욕은 30평 규모의 브라이트 수면 회복 스위트(Bryte Restorative Sleep Suite)를 마련했다. 브라이트 수면 회복 스위트 디자인에 과학자가 참여해 투숙자의 체온과 호흡 패턴, 심박수, 수면 패턴 등의 바이오 정보를 측정하고 그에 따라 침대 온도와 탄력을 지속적으로 조정하는 AI 침대를 고안했다. 따뜻한 휴양지의 럭셔리 리조트도 수면 관광 트렌드에 발맞추는 추세다. 몰디브의 식스 센스 라아무(Six Senses Laamu)에는 3~10일 동안 이어지는 수면 웰니스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수면 추적과 건강 검진, 스파 트리트먼트, 명상 또는 호흡운동, 영양 조언이 제공되는 서비스다.

‘잠을 판다고? 잠을 잘자기 위한 여행이라니.’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묵어본 브라운스 호텔에서 굿나잇 페이셜 케어를 받기 위해 스파 침대에 누웠을 때 문득 깨달았다. 내 직장, 사랑하는 가족과 애완동물을 비롯한 삶의 모든 요구사항들, 도무지 굴복할 수 없는 피로와 얼마나 싸우고 있었는지 말이다. 유능한 테라피스트는 페이셜 케어를 “스킨케어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휴식에 가깝다”고 설명했고 나는 테라피스트가 머리 마사지를 시작한 지 2분 만에 숙면에 돌입했다. 이윽고 내 코 코는 소리에 놀라 깨어났지만 곧장 다시 잠들었다. 최면에 걸린 것처럼 말이다. 그날 브라운스 호텔에서 나는 오후 9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다행스럽게도 스마트폰 충전기를 챙기지 않았는데, 스마트폰이 꺼졌을 때 컨시어지로 달려가는 대신 옆에 있던 책을 집어 읽기 시작했다. 브라운스 호텔의 수면 패키지에 포함되지 않은 이 작은 요소 역시 그날 밤 만족스러운 숙면에 빠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새로운 즐거움을 탐색하기 위해 활동적으로 여정을 즐기기보다 휴식과 회복에 중점을 둔 여행. 수면 관광은 수면을 위해 특수 설계된 호텔 객실에서 스트레스를 최소화하며 수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평소에는 우선 순위에서 밀려 있던 요가나 산책에 나서고, 스마트폰 대신 책을 집어 들게 한다. 우스운 소리로 여겼던 ‘수면 관광’은 나를 좋은 잠으로 데려다줄 일상 속 작은 습관을 환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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