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약·화장품까지…" 日편의점은 대형마트 축소판

이서희 2024. 1. 18.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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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편의점 글로벌 1000호점 시대]⑥
일본 편의점 둘러보니…매출 절반은 PB
노인 돌봄 등 행정·편의 서비스 확대

"今週??された新刊、ありますか?"(이번 주 발매된 신간 있나요?)

오후 7시, 직장인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편의점으로 들어와 점원을 찾았다. 발간된 지 얼마 안 된 최신판 패션 잡지를 구하는 모습이었다. 남성이 잡지를 집어간 곳으로 걸어가니 꽤 큰 규모의 가판대가 눈에 들어왔다. 패션, 뷰티, 모빌리티, 스포츠 등 한눈에 봐도 20여개에 달하는 잡지가 종류별로 진열됐고, 옆에는 이를 직접 펼쳐 읽고 있는 이들도 제법 있었다. 편의점 관계자는 "한국이 편의점에서 잡지를 판매하지 않는 것과 달리 일본은 다양한 종류의 잡지를 취급하고 있다"며 "음료, 도시락, 디저트를 구매하는 고객 외에도 잡지, 휴지, 세제 등 각양각색 생필품을 구매하기 위한 고객들로 일본 편의점은 언제나 붐비는 편"이라고 전했다.

일본 편의점 계산대 앞에 다양한 패스트푸드가 진열돼 있다. /이서희 기자 @dawn

지난달 초 방문한 일본 도쿄의 편의점들은 '대형마트 축소판'이었다. 유제품과 음료류, 즉석식품 등 식품 판매대는 대체로 한국과 비슷했지만, 한 벽면을 꽉 채운 의약품 판매대와 화장품 가판대가 들어서 식품보다 생필품 종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의약품 판매대에는 체온계, 영양제, 감기약 등이 종류대로 구비됐고, 바로 옆에는 생활용품 브랜드인 무인양품점과 양말, 두루마리 휴지, 세제 등이 자리했다.

화장품 판매대에는 립스틱과 아이라이너, 아이브로우 등 기본적인 제품이 갖춰져 있었다. 가격은 대체로 1000엔 아래로 일본 시중가보다 저렴했다. 이날 만난 한 40대 여성은 "급하게 휴지가 떨어졌을 때 인근 편의점에 들른다"며 "간식을 구매하기 위해 방문하는 대학생들도 많지만, 주부와 노인들도 생필품 구매를 위해 편의점을 많이 찾는다"고 전했다.

동일본 대지진·코로나가 바꾼 '일본 편의점 지형도'

일본 편의점이 오늘날 단순한 편의점이 아닌 생활용품점으로 기능하게 된 것은 두 가지 사건이 있은 뒤부터였다.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과 2020년 발생한 '코로나 바이러스'다. 두 번의 사회적 재난을 겪으며 일본 편의점은 '식품 판매'에서 '일상에 필요한 모든 물건을 갖춘 공간'으로 거듭났다. 사회적 재난이 발생할 경우 편의점의 물리적 접근성이 중요한 자원으로 떠오르면서다. 이 같은 변화는 일본 정부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발간한 '편의점의 새로운 존재 방식'이라는 보고서에서 잘 드러난다. 해당 보고서를 통해 일본 정부는 "편의점은 더 이상 단순한 상점으로 기능하지 않으며, 사회 문제 해결용 비즈니스로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편의점에 화장품 코너가 마련돼 있다./이서희 기자 @dawn

편의점의 행정 및 편의 서비스가 확대된 것도 이때부터다. 주요 편의점(세븐일레븐, 훼미리마트, 로손)에 복사·출력기, 우편 배달, 공공요금 수납 서비스 등이 도입됐다. 고령층을 위한 노인 돌봄 서비스도 커지는 추세다. 일본 편의점 업계 3위인 로손은 2015년 4월, 도쿄 인근 도시 가와구치에 고령층을 위한 돌봄 서비스 '케어 로손' 1호점을 열었다. 간편 조리식, 성인용 기저귀 등 고령층을 위한 물품을 구매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로손과 제휴를 맺은 보험사 소속 사회복지사를 통해 건강 상담, 보험 상담, 운동 교실 등 각종 서비스도 제공받을 수 있다. 편의점이 지역 커뮤니티와 경로당, 보건소를 모두 합친 기능을 하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케어 로손점에서는 늘어나는 고령층을 위해 소비와 복지 업무를 합친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며 "약물 복용 보조 기구, 저칼로리 식품 등 고령층을 위해 구비된 물품은 100여가지가 넘고, 편의점 안쪽에는 별도 상담 창구가 마련돼 전문 사회복지사와 언제든지 상담이 가능해 인근 주민의 방문율이 높다"고 말했다.

경쟁력 있는 PB 상품이 매출 절반 차지

일본 편의점의 또 다른 특징은 수많은 '자체 브랜드(PB) 상품'이었다. 기자가 방문한 세븐일레븐, 훼미리마트, 로손 모두 디저트와 음료류 판매대의 절반 가까이가 PB 상품으로 채워진 모습이었다. 식품 외에도 볼펜, 수첩, 세제 등 생활용품 판매대의 PB 상품도 눈에 띄었다.

특히 붐빈 곳은 냉장 음료와 디저트류 코너였다. 20대 외국인 관광객이 세븐일레븐 PB상품인 커피맛 버블티를 고르자, 뒤이어 또 다른 관광객이 바닐라맛 푸딩을 집었다. 한국인 관광객 이수연씨(26)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유명한 세븐일레븐 푸딩을 사러 일부러 편의점을 찾았다"면서 "일본 편의점 음식은 워낙 맛있기로 유명해 '일본 가면 꼭 사 와야 할 편의점 음식 TOP10' 같은 리스트가 친구끼리 공유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편의점에 카페테리아 공간이 마련돼 있다. /이서희 기자 @dawn

일본 편의점의 PB 상품은 '고급 식당 못지않은 맛과 품질'로 유명하다. 통상 PB 상품은 유통 과정을 없애 소비자 가격을 낮춘 대신 음식의 질이 떨어지는 '저가격 저품질'이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일본 편의점의 경우 맛과 품질을 우선시한다. 이에 따라 시중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책정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만큼 맛이 보장된 경우가 많아 소비자들은 더 높은 가격에도 기꺼이 지갑을 여는 모습이다. 실제로 일본의 경우, 편의점 전체 매출에서 PB 상품이 차지하는 비율은 절반 이상으로 우리나라(25%~30%)를 훨씬 웃돈다.

맛의 비결은 개발 과정에 있다. 세븐일레븐의 경우, 내부 직원과 식품 전문 업체 직원, 요리 전문가 등 각계각층의 다양한 전문가가 모여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한다. 세븐일레븐 본사는 제품의 콘셉트를 정하고 기획하는 등 기본 틀을 제시하고, 식품 업체와 요리 전문가는 맛을 내기 위해 세부적인 연구에 전념하는 셈이다.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엔 설비 업체까지 참여해 전용 설비와 생산 라인을 만들기도 한다.

일본 세븐일레븐 매장 전경 /이서희 기자 @dawn

일본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매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은 갓 지은 밥을 이용해 만든 도시락과 갓 만든 빵인데, 이들 모두 우리 회사에서만 나오는 PB 상품"이라며 "맛의 비결은 하나의 제품을 개발하기까지 다양한 업체가 모여 들이는 노력과 시간"이라고 전했다.

다양한 브랜드 종류도 일본 편의점 PB만의 특징이다. 일본 편의점의 경우, 제품의 특징과 가격대에 맞게 PB 상품 안에서도 다양한 브랜드가 존재한다. 소비자는 원하는 브랜드를 우선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예컨대 세븐일레븐의 PB 상품은 '프리미엄 골드', '프리미엄', '프레시푸드',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 등 네 종류로 나뉜다. 프리미엄 골드는 최고급 재료를 사용해 품질을 높인 브랜드로 모든 라인 가운데 가장 가격대가 높다. 프리미엄은 가격에 비해 품질을 높인 가성비 브랜드로 모든 라인 가운데 역사가 가장 오래됐다. 프레시푸드는 가정에서 갓 만든 듯한 신선한 상품을,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은 일상 용품을 취급한다.

이서희 기자 daw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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