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검사가 되는 것보다..." 권력 맞선 30년 택한 이 사람

김병기 2024. 1. 1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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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10만인]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인터뷰②

[김병기 기자]

 하승수 변호사가 충남 홍성군 홍동면에 있는 '농본' 사무실 앞에서 자기 마을을 소개하고 있다.
ⓒ 김병기
"올해부터 벼농사도 할 겁니다. 오늘 아침에 아내가 논 900평을 사기로 계약했거든요."

하승수 변호사(공입법률센터 '농본' 대표,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는 이 말을 하며 활짝 웃었다. 충남 홍성 홍동면, 그의 집 앞 텃밭을 걸으면서다. 손바닥만 한 밭이려니 짐작했는데 300평에 달했다. 배추, 무는 심어서 김장도 하고 남는 것이 있을 때에는 주변과 나누기도 한단다. 천년초 선인장은 녹아버린 양초처럼 바닥에 달라붙었지만 날씨만 맞으면 금세 우뚝 설 듯한 자세였다.

지난 5일, <오마이뉴스>를 후원하는 10만인클럽 회원인 하승수 변호사를 만났다. 2017년에 20여 가구가 사는 이곳으로 이사를 왔으니, 귀촌 7년차이다. 그의 통나무 집 앞은 우렁이 농법으로 농사하는 친환경 논이다. 하 대표가 가끔 강의도 한다는 풀무학교 전공부 건물은 논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있다.

통나무로 만든 그의 집에 들어갔더니, 거실 벽면에 붙은 액자 속의 문구가 눈에 띠었다.

"감사하고 나누며 살자, 뚝배기보다 장맛"
  
 하승수 변호사의 집 거실에 붙어있는 문구.
ⓒ 김병기
그를 빼닮은 문구라는 생각을 했다. 사법연수원 시절, 참여연대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권력감시 운동에 뛰어든 그는 30년 가까이 한 길을 걸었다. 시민운동을 위해 교수직도 내던졌다. 변호사 사무실은 없지만 수임료를 포기한 채 건강한 농촌을 위해 무료변론을 하고 있다. 아주 오래된 장맛 같은 삶이다.

이날 하 변호사와 함께 3시간 동안 '농본' 사무실과 집을 오가고, 논둑길을 걸으며 '감사하며 세상과 함께 나누는'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세금도둑잡아라] "한번 물면 끝장을 보는 권력 감시운동"
▲ [이 사람, 10만인] 사법연수원 동기 ‘한동훈’과는 가는 길이 달랐다...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인터뷰 #하승수 #시민운동 #10만인클럽 ⓒ 김병기

하 변호사는 정보공개청구운동의 대표주자다. 그가 변호사가 된 해인 1998년부터 시행된 정보공개법이 그의 무기였다. 참여연대 첫 상근변호사·협동사무처장으로 활동하면서 소액주주운동과 예산감시운동을 펼치며 정보공개운동을 시작한 그는 "정보공개는 국민과 정부의 관존민비(官尊民卑) 관계를 역전시킬 수 있는 놀라운 제도라는 데에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하 변호사가 본격적으로 정보공개운동에 뛰어든 것은 2008년이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를 설립해 초대 소장을 역임했다. 2017년에 설립된 '세금도둑잡아라'는 그 연장선이다.

하 변호사는 "국회 등을 상대로 정보공개청구 운동을 벌이기도 했는데, 그 때 잠깐 바뀌었다가 원상복구 되곤 하는 상황이 안타까웠다"면서 "한번 물고 늘어지면 완전히 바뀔 때까지 끝장을 보는 집중적인 감시운동이 필요해서 단체명도 아주 세게 잡았다"고 말하며 웃었다.

세금도둑잡아라는 검찰 특활비와의 싸움에 뛰어들기 전, 3~4년 동안 국회예산을 집중 감시했다. 국회사무처의 '입법 및 정책개발비'를 팠다. 그 결과, 정책연구용역을 하지 않고 보좌관 친구에게 돈을 줬다가 돌려받은 황당한 사례 등을 적발했다. 결국 국회의원들은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고 2억여 원의 예산을 반납했다. 국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다 잡은 '세금도둑'을 놓친 경우도 있었다. 2021년 4월, 보궐선거로 당선됐던 박형준 부산시장이 그가 꼽은 대표적인 예다. 당시, 국민의 힘 부산시당이 전문가, 퇴직 공무원 등으로 선거공약개발단을 구성했다. 이곳에서 소요되는 밥값과 회의 수당 등의 활동비용은 정치자금으로 써야한다.

하 변호사는 "선거공약개발단이 국회 사무처의 입법 및 정책개발비를 3300만 원 끌어다 쓴 게 확인됐다"면서 "국민의힘 부산지역 국회의원 14명이 220만 원씩 나눠서 연구 용역을 하는 것처럼 서류를 꾸며 돈을 타낸 것을 적발했는데, 지난 연말에 검찰이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 다잡은 도둑을 놓쳤는데 항고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의 한계상 직접 처벌하지는 못하지만, 수사기관처럼 세금 도둑을 적발할 수 있었던 건 25년 넘게 벼리고 벼린 정보공개라는 무기였다. 그는 올해도 할 일이 많다. 

"1월부터 윤석열 대통령 취임 100일 동안에 쓴 특수활동비와 업무추진비, 수의계약 내용 등 대통령 비서실을 상대로 한 소송결과도 나올 겁니다. 2월 8일에는 부산 해운대에서의 대통령 회식비에 대한 1심 판결도 나옵니다. 올해는 검찰 특수활동비 문제에 집중할 계획인데, 전국예산감시네트워크 등과 함께 지역의 권력감시운동도 함께 해나갈 계획입니다."

[공익법률센터 '농본'] 3년차, 몸살 앓는 농촌 지역 30여 곳 지원사격
 
 충남 홍성군 홍동면에 있는 하승수 변호사의 집 앞의 논. 풀무학교는 이곳에서 우렁이 농법으로 친환경농사를 짓는다.
ⓒ 김병기
 
하 변호사가 한적한 전원생활을 누릴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살아있는 권력 기관과 소송전을 펼쳐야 하는 세금도둑잡아라 활동만 해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게 불보 듯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상이었다. 공입법률센터 '농본'의 대표직도 겸하고 있는 그는 이 단체에 가장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쏟고 있단다.

"2013년에 이곳에 통나무집을 지었고, 2017년에 완전히 귀촌을 했어요. 서울에서 시민운동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주변에서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산업폐기물, 환경오염시설, 발전소, 송전탑, 채석장, 축사... 농촌 난개발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서울에는 여러 단체들이 많은 데 농민을 대변하고 농촌 문제를 해결하는 공익법 단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에서 이름을 따온 '농본'은 2021년 창립됐다. 농본 사무실 벽에 붙어있는 전국 지도에는 귀촌 4년차부터 지원사격을 시작한 농촌 지역이 동그란 색종이 스티커로 표시돼 있었다. 어림잡아 전국 30여 곳이다. 빨간 딱지가 붙은 곳은 산업폐기물·소각장 문제 지역이다. 노란 딱지는 발전소·석산개발, 파란 딱지는 송전탑·변전소 문제가 있는 지역이다.

지금은 다른 단체들과 함께 '지역센터 마을활력소' 건물 2층에 책상 2개를 놓고 세 들어 살고 있는데, 농본의 첫 사무실은 그의 집 앞에 펼쳐진 논둑 위에 있는 컨테이너 박스였다. 지금도 사무실 겸 자료실로 쓰는데, 홍성군 갈산면에 들어서려던 산업폐기물 매립장 반대대책위원회가 농본의 법률 지원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 기증한 사무실이었다.
 
 하승수 '농본' 대표가 자신의 집 앞에 있는 논을 산책하고 있다.
ⓒ 김병기
농민들이 그에게 전한 황당한 일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채석장이나 석회석 광산 사업이 끝나면 복구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곳을 더 파서 산업폐기물을 묻겠다는 사업도 벌이고 있죠. 그동안 고통을 겪었던 농촌주민들의 입장에선 기가 막힌 노릇이죠. 주민들이 반대하면 업체들은 돈으로 회유합니다. 찬성하면 가구당 4천만 원씩 준다는 등. 그럼 마을공동체가 분열되고 깨집니다."

하 변호사는 "너무 늦게 찾아와서 우리가 손을 쓸 방법이 없는 경우도 많다"면서 "이런 사례들을 감안해서 산업폐기물 관련 법 개정운동을 하고 있고, 올해에는 농촌지역의 난개발이나 환경오염시설이 무분별하게 들어오는 것을 지역 차원에서 차단할 수 있는 조례 개정운동도 병행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제4회 삼보일배오체투지 환경상 시상식에서 하승수 변호사가 '환경 현장 활동 및 현장 연구 지원기금'에 선정된 소감을 밝히고 있다.
ⓒ 김병기
그러나 실제 농촌 지역 무료 변론뿐만 아니라 세금도둑을 잡으려면 많은 '군자금'이 필요하다. 농본 홈페이지(https://nongbon.org/)에서 후원회원을 모집하지만 활동비 마련도 쉽지 않다. 다행히 올해 농촌의 난개발과 환경오염에 대한 지역차원의 대응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지자체 조례 제·개정 연구 활동 등을 위한 지원금은 확보했다. (사)세상과함께가 시상하는 제4회 삼보일배오체투지환경상의 '환경 현장 활동 및 현장 연구 지원기금' 대상자로 선정된 것이다.
[귀촌 7년차]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선택은 권력과 맞선 것"
  
 하승수 변호사가 충남 홍성군 홍동면에 있는 집에서 이야기를 하면서 활짝 웃고 있다.
ⓒ 김병기
이렇게 바쁘게 살 거면 왜 귀촌을 했을까? 하 변호사는 귀촌하기 전에는 경기도에 있는 전셋집에 살았다. 그가 주로 감시하는 권력기관이 서울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는 운전면허도 없기 때문에 홍성에서의 왕래가 불편할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이곳 생활에 만족하는 소소한 이유들을 줄줄이 댔다.

"경기도 아파트에 살 때 주말농장을 했는데, 여기는 좀 더 넓게 농사지을 텃밭도 있습니다. 자가이기에 이사를 안가도 되죠. 밤에 별도 보입니다. 좋은 도서관도 있어요. 교통편은 장항선이 있습니다. 서울까지 2시간 정도면 기차나 버스를 타고 갈 수 있습니다."

<녹색평론>의 고 김종철 발행인과 함께 녹색당을 창당하고 대표직을 역임했던 하 변호사는 "이곳에 특별한 연고가 있는 건 아니지만 녹색당 창당을 준비할 때 홍성에 일찍 귀농·귀촌한 분들과 알게 돼서 자연스레 이곳에 왔다"라면서 "풀무학교에서 가끔은 지역과 자치, 인권 등에 대한 강의도 하면서 교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 변호사를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 사법연수원 시절에 참여연대에서 자원봉사를 했고, '생계비' 정도의 월급을 받으며 참여연대로 출근했다. 정보공개운동으로 권력기관에 맞섰고,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를 지낼 때에는 선거제도개혁을 외치며 오랫동안 1위 시위도 벌였다.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직도 내던졌다. 변호사 사무실도 없는데 농촌 마을공동체를 살리려고 무료 변론을 하고 있다. 왜일까?

"판사나 검사가 되는 것보다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입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이 몇 가지 있는데 연수원 다니면서 참여연대 활동했던 일과 농촌에 내려와서 이렇게 활동하는 일입니다. 권력의 편에 서기보다는 권력과 맞서는 일을 주로 해왔는데 그것도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진 생각 중 하나가 '소수자나 약자의 편에 서자'는 겁니다. 농촌은 지금 완전히 소수자이죠. 시민운동도 마찬가지이고 녹색당 활동도 '사람뿐만 아니라 말 못하는 생명들의 편에 서 보자라'는 활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날 긴 인터뷰를 마치고 하 변호사는 부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홍성역까지 기자를 배웅했다. 도서관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권력감시의 칼끝에 서 있지만, 농촌지역에서 쏟아지는 구원 요청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겠지만, 부부는 잠시나마 여유로워보였다. 올해 귀촌 부부가 처음으로 수확하는 쌀은 어떤 맛일까? 그의 집 거실에서 본 이 문구가 다시 떠올랐다.

"감사하고 나누며 살자, 뚝배기보다 장맛"
 
 제4회 삼보일배오체투지환경상 시상식 때 '환경 현장 활동 및 현장 연구 지원기금'에 선정된 '농본'의 하승수 대표가 지리산 자락에서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 김병기
▲ [이 사람, 10만인] “한동훈은 ‘동료 시민’ 입 밖에 내지 말라”...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 인터뷰 #검찰특활비 #특별활동비 #윤석열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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