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찾은 느낌이에요”… MZ 사로잡은 ‘시니어 가게’

백재연 2024. 1. 17.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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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정애쿠키 1개밖에 안 남았어요?"지난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계동길 인근 '정애쿠키'를 찾은 오설화(30)씨의 눈이 빠르게 돌아갔다.

정애쿠키는 78세의 이정애씨가 운영하는 시니어 가게다.

정애쿠키 단골인 오씨도 올 때마다 할머니집에 놀러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정애쿠키 사장 이씨는 가게를 찾는 젊은이가 늘어난 것이 신기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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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 입맛 사로잡은 78세 이정애씨의 ‘정애쿠키’
아흔 바라보는 윤연옥 할머니의 ‘라면전문점’
서울 용산구 '라면전문점'에서 16일 윤연옥(87)씨가 환하게 웃으며 라면을 건네주고 있다. 이한형 기자


“할머니, 정애쿠키 1개밖에 안 남았어요?”
지난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계동길 인근 ‘정애쿠키’를 찾은 오설화(30)씨의 눈이 빠르게 돌아갔다. 고추 부각이 붙은 시그니처 메뉴 ‘고추 쿠키’는 이미 품절, 나머지 진열대도 비어가던 중이다. 마지막 정애쿠키가 오씨 손에 들어갔다. 오씨는 “요즘 이 쿠키가 MZ들에게 인기”라며 “조금만 늦으면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다”고 말했다.

정애쿠키는 78세의 이정애씨가 운영하는 시니어 가게다. 북촌의 4평 남짓한 가게에서 2013년부터 10년 넘게 자기 이름을 내걸고 쿠키를 팔고 있다. 요즘 MZ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손님도 많이 늘었다.

노인이 홀로 운영하는 가게를 즐겨 찾는 20‧30세대가 늘고 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어린 시절 향수가 떠오른다고 입을 모은다. 할머니·할아버지가 직접 만들어주던 음식이 떠오르고, 그 음식에선 정이 느껴진다고 했다.

오설화(30)씨가 16일 서울 종로구 '정애쿠키'에서 쿠키를 구매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정애쿠키 단골인 오씨도 올 때마다 할머니집에 놀러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오씨는 인근 회사에 다니던 시절 이 작은 가게를 우연히 발견했다. 줄무늬 셔츠를 입고 진갈색 앞치마를 맨 채로 쿠키를 직접 만드는 할머니 모습에 한눈에 반했다.

오씨는 “일본 여행을 자주 가는데 일본에선 노인분들이 혼자 운영하는 가게를 자주 본다”며 “우리나라에서는 사실 이렇게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 하는 가게를 찾기가 어려운데, 그래서인지 여기 올 때마다 보물찾기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빙긋 웃었다.

정애쿠키 사장 이씨는 가게를 찾는 젊은이가 늘어난 것이 신기하다고 했다. 처음엔 ‘할머니’라는 소리가 어색했다는 이씨는 “지금은 다 내 손녀 손자 같다”며 “젊은 사람들이 뭐 하고 싶어도 용기가 없을 때 날 보면서 동기부여를 받을 수도 있고, ‘우리 할머니집 같다’는 느낌도 받는다니, 몸이 허락하는 데까지는 해야지”라며 웃어 보였다.

이정애씨가 16일 자신의 가게 '정애쿠키'에서 쿠키 반죽을 만들고 있다. 이한형 기자


고령 인구가 늘어나면서 이씨와 같은 60세 이상 창업자도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60세 이상 창업 기업은 12만9384개로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16년 이후 가장 많았다. 2016년 7만3471개와 비교해 보면 무려 76.1%나 증가한 수치다.

서울 용산구 백범로에 있는 ‘라면전문점’ 사장은 곧 아흔을 바라보는 윤연옥(87)씨다. 3평 남짓한 가게에 6명 정도가 앉아서 먹을 수 있는 일자형 테이블과 의자가 전부다. 메뉴도 단출하다. 라면 4종류뿐이다. 그래도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젊은 직장인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35년 전 전북 무주에서 상경한 윤씨는 목욕탕·파출부·구청 식당·설렁탕집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 ‘집에서 쉬면 뭐하나’ 싶어서 6년 전 이곳에 라면 가게를 열었다고 한다. 오랜 경험에서 나온 자기만의 라면 끓이기 비법이 있다. 물의 양을 정확히 계량하기 위해 라면을 담는 스테인리스 그릇에 80% 정도 물을 채운다고 한다. 그 그릇에 담긴 물을 끓이면 너무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라면 국물이 된다. 라면이 끓는 물에 풀어지기 시작하면 큰 집게로 서너 번 들어 올려 찬바람을 맞게 해 쫄깃한 면발이 되도록 한다.

서울 용산구 '라면전문점'에서 윤연옥씨가 손으로 빼곡히 적어놓은 장부를 넘기고 있다. 이한형 기자


윤씨는 일주일에 한 번씩 손수 배추김치와 깍두기도 담그는데, 라면과 환상 조합을 이룬다. 손님들은 “우리 할머니가 끓여주던 라면이 생각난다”며 “김치에서도 할머니 손맛이 난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가게를 찾은 강성배(32)씨는 “간판에 딱 ‘라면전문점’이라고만 쓰여 있어서 ‘맛집’ 기운이 났다. 가게 외관도 그렇고 할머니에게서도 내공이 느껴졌다. 맛도 좋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운영하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씨는 “젊은 친구들이 오면 나도 기분이 좋다. 마음 같아선 죽을 때까지 하고 싶다. 일단 목표는 95세까지 하는 거다”며 웃었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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