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준의 여행만리]벽골제 쌍룡에게서 ‘精氣’ 받아볼까

조용준 2024. 1. 1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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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골제 쌍룡 뒤로 일출이 떠오르고 있다.

갑진년(甲辰年), 푸른 용의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1월은 수많은 결심이 모이는 달입니다. 단단한 눈뭉치처럼 결심을 다지기 위해 길을 떠나는 이가 많습니다. 그래서 새해에 떠나는 여행에는 언행이 좀 더 신중해지고 곧잘 의미를 부여하기도 합니다. 여행을 대하는 자세도 그렇습니다. 이왕이면 복된 기운을 받는 여행목적지라며 더할 나위 없겠지요. 이런 갈망을 담은 곳이 전북 김제입니다. 갑진년 새해 벽골제의 쌍룡에서 상서로운 기운을 받을 수도 있고 시간이 켜켜이 쌓인 법당이나 교회서 소망 기원도 할 수 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만경평야의 지평선을 바라보며 정기(精氣)를 받고 새해의 꿈을 그려볼 수도 있습니다. 아직 1월 여행지를 정하지 못했다면 용의 해를 맞아 인기 여행목적지로 거듭나고 있는 김제는 어떠신가요.

#벽골제의 쌍용에서 상서로운 기운을 받다

지금으로부터 1700여년 전. 백제 침류왕 때 지어진 벽골제는 김제의 상징적 관광지다. 백제 비류왕 27년(330)에 축조한 벽골제 제방은 약 3.3㎞로 추정되지만 현재 2.5㎞ 제방에 두 개의 수문 유적, 조선시대 중수비만 남아 있다.

당연히 있어야 할 저수지는 농경지로 변했다. 이 사실을 모르고 가면 다소 당황스럽다. 대신 물이든 논이든 벽골제의 제방에 오르면 사방으로 거칠 것 없이 펼쳐진 들판과 마주친다.

1700여년전 지어진 벽골제에 마련되어 있는 공원
강추위로 벽골제 한옥처마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그 들판에 조성된 벽골제 공원에는 신라시대 김제 태수의 딸 단야낭자와 고려시대 김제 조씨 조연벽 장군의 설화를 바탕으로 만든 쌍룡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늘 성질이 착해 사람을 도왔다는 백룡(白龍)과 심술궂어 때때로 벽골제의 둑을 무너뜨리곤 했다던 청룡(靑龍)이다.

벽골제 쌍용은 철근틀에 대나무를 엮어 만들었다. 용 한 마리의 길이가 54m. 몸통 직경이 2m에다 높이는 15m에 이른다. 실제 용이 있다면 딱 이 정도의 크기일 것 같다. 어느 쪽이 전설 속의 백룡이고 어느 쪽이 청룡인지는 알 수 없지만 금세 하늘로 차오를 듯 생동감이 넘치는 용의 조형물 앞에 서면 상서로운 기운이 느껴진다. 마침 어둠을 뚫고 쌍용을 비추며 떠오르는 장엄한 일출이라도 만난다면 용의 해 대운을 기대해도 좋을 듯싶다. 그래서 새해 벽두부터 벽골제를 찾아가는 것은, 그곳에 서면 거칠 것 없이 넓게 펼쳐진 세상과 용의 기운을 받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불밝힌 벽골제 쌍룡 뒤로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

#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광활한 만경평야

김제 사람들은 김제·만경평야를 일러 ‘징게맹경 외애밋들’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징게맹경’이란 김제와 만경을 뜻하는 사투리이겠고, 외애밋들이란 ‘김제와 만경을 채운 논들이 한 배미로 시원스럽게 트였다’는 뜻이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에서 묘사한 ‘징게 멩갱 외에밋들’그것이다.

김제 만경평야는 넓고도 좁다. 만경읍을 기준으로 진봉, 광활, 성덕, 죽산면 소재지까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드넓게 평야가 펼쳐져 있지만 차로 이동하면 10~2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 흔한 고갯길 하나 없이 도로가 일직선으로 뻗어 있기 때문이다.

끝없이 펼쳐진 만경평야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만경평야

하지만 자동차가 없던 시절 이야기는 다르다. ‘그 끝이 하늘과 맞닿아 있는 넓디나 넓은 들녘’은 누구나 기를 쓰고 걸어도 언제나 제자리에서 헛걸음질을 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김제시는 대하소설 ‘아리랑’이 시작되는 곳임을 기려 벽골제 맞은편에 ‘조정래 아리랑문학관’을 지었다. 만경평야의 모습뿐만 아니라 중국, 러시아, 일본, 하와이 등 일제강점기 민족의 수난과 항쟁의 현장을 직접 찾아간 작가의 취재 여정도 함께 보여준다.

뭐니 뭐니 해도 만경평야 제일의 볼거리는 끝없는 지평선이다. 간척지로 조성된 광활면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산이 전혀 없는 들판이다. 이름처럼 광활하다. 만경평야의 야산은 산이라 부르기에 애매한 수준이다. 진봉면의 봉화산(82.0m), 진봉산(61.3m), 나성산(60.9m)이 그나마 높은 축에 속하는데, 해발고도에 소수점까지 표시할 정도로 한 치가 아쉬운 높이다. 가도 가도 끝없는 길을 드라이브하는 것은 만경평야에서만 가능한 색다른 경험이다. 일직선으로 뻗은 도로변엔 전봇대만 듬성듬성 꽂혀 있고, 성덕면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는 신비로운 원근감의 풍경을 만들어준다.

# 오랜 내력 지닌 절집, 교회, 성당서 소망 기원

신년초에 김제 땅을 여행한다면 오랜 내력을 지닌 절집이나 교회 혹은 성당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김제에는 이름난 절집인 금산사가 있고, 100년이 넘은 내력을 지닌 금산교회가 있다.

논을 가로질러 펼쳐진 가로수길이 운치 있다.

또 소박한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단아한 풍모의 수류성당도 있다. 너른 마당을 품고 있는 금산사에서는 단연 미륵장륙상을 모신 우람한 목조 삼층 미륵전이 대표선수 격. 그러나 절집 뒤편으로 물러나 앉은 대적광전, 나한전, 조사전 꽃문살의 아름다움도 그에 못지않다.

금산사 아래 용화마을에는 100년 넘는 내력의 금산교회가 있다. 1904년 미국인 선교사 레위스 테이트 목사가 김제에서 가장 부잣집 마방(馬房)에 말을 맡기고 하룻밤을 묵었단다. 이때 선교사를 만나 감화를 받은 지주 조덕삼은 독실한 기독교인이 됐고, 1908년 사재를 털어 지금의 금산교회를 짓도록 했다.

금산교회는 모악산 너머에 있던 전주 이씨 집안의 재실을 해체해 지은 것. 한쪽 모서리 방향에 ㄱ자로 두 칸을 더 달아서 다섯 칸짜리로 만들었다. 교회를 ㄱ자형으로 지은 것은 당시 구습에 따라 남자석과 여자석을 따로 내기 위한 방편. 100년도 더 된 교회지만 기둥 하나 서까래 하나 상하지 않고 원형대로 남아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특히 고린도전서를 옮겨 쓴 천장의 상량문은 마치 어제 쓴 것처럼 선명하다.

여기에 한 곳을 더 보탠다면 금산면 화율리에 있는 크림색 외벽이 단아한 수류성당을 들 수 있겠다. 박해를 피해 숨어든 천주교 신자들이 이 자리에 처음 성당을 세운 지는 100년도 넘었지만, 지금의 성당건물은 6·25전쟁에 다 불타버린 것을 다시 세운 것이다.

◇여행메모

△가는길= 수도권에서 가자면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가는 게 간명하긴 하다. 그러나 경부고속도로로 천안분기점까지 가서 천안~논산 간 고속도로로 갈아타고 다시 공주분기점에서 공주~서천 간 고속도로로 갈아탄다. 이어 서김제나들목으로 나와서 김제 시내를 나와 29번 국도를 타고 가다 보면 왼쪽에 벽골제가 있다.

△볼거리= 미즈노씨네 트리하우스, 조정래 아리랑 문학관, 모악산 도립공원, 김제 메타세콰이어길, 귀신사, 신털미산 등이 있다.

김제=글 사진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jun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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