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출신 여성감독, '칸의 여왕'을 만나다

양형석 2024. 1. 17.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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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전도연-고수 주연의 <집으로 가는 길>

[양형석 기자]

2022년에 공개됐던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은 남미에서 마약조직을 운영하는 한국인 마약대부를 체포하기 위해 평범한 사업가가 국정원과 비밀 임무를 수행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최근 <서울의 봄>으로 자신의 세 번째 천만 영화를 만든 황정민이 목사로 위장한 마약대부 전요환을 연기했고 하정우가 홍어를 수입하기 위해 수리남에 왔다가 마약사건에 연루되는 사업가 강인구 역을 맡았다. 

2023년 11월 종영한 <힘쎈여자 도봉순>의 스핀오프 드라마 <힘쎈여자 강남순> 역시 모계 유전으로 어마어마한 괴력을 타고난 주인공 강남순(이유미 분)이 신종마약범죄의 실체를 파헤치는 내용의 드라마였다. <힘쎈여자 강남순>은 판타지와 코미디, 로맨스를 적절히 섞어 밝고 경쾌한 느낌으로 만들었지만 드라마에 등장하는 신종마약은 한 번 복용할 경우 엄청난 갈증에 시달리다가 끝내 사망에 이르게 되는 무서운 약으로 나온다.

이처럼 대중들은 마약을 소재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비교적 손쉽게 접할 수 있지만 사실 마약은 그 중독성과 금단증세 등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칠 수 있는 아주 무서운 약이다. 따라서 마약은 복용과 제조, 유통은 물론이고 단순운반만으로도 적발시 큰 벌을 받게 된다. 지난 2013년에 개봉했던 전도연과 고수 주연의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은 마약운반을 했다가 프랑스령 교도소에 2년간 수감됐던 한국인 여성의 실화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집으로 가는 길>은 청룡 여우주연상을 받았던 배우출신 방은진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였다.
ⓒ CJ ENM
 
감독으로 변신한 청룡 여우주연상 배우

할리우드에는 <분노의 역류> <뷰티풀 마인드>의 론 하워드 감독처럼 배우로 활동하다가 감독으로 전업한 인물들을 종종 볼 수 있지만 국내에서는 배우 출신 감독이 그리 흔한 편은 아니다. 하지만 방은진 감독은 배우로서 어느 정도 정점을 찍은 후 감독으로 변신해 자리를 잡은 흔치 않은 인물 중 한 명이다. 방은진 감독은 2004년 서울예대 영화과 겸임교수와 2013년 성신여대 미디어영상연기학과 전임교수를 역임한 경력도 가지고 있다.

1989년 연극배우로 연기활동을 시작한 방은진 감독은 1993년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신인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연극계에서도 알아주는 인재였다. 그렇게 연극배우로 커리어를 쌓던 방은진 감독은 1994년 임권택 감독의 <태백산맥>에 출연하며 영화배우로 데뷔했다. 그리고 1995년 박철수 감독의 <삼공일 삼공이>에서 '301호 여자' 송희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치며 청룡영화상을 비롯해 4개 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다.

방은진 감독은 이후 <학생부군신위>와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에서 잇따라 주연을 맡았고 2001년 <수취인불명>에서는 양동근이 연기한 창국의 어머니 역을 통해 대종상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그렇게 배우로 승승장구하던 방은진 감독은 2005년 엄정화 주연의 <오로라 공주>를 연출하며 상업영화 감독으로 데뷔했다. 방은진 감독은 <오로라 공주>로 황금촬영상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하며 감독으로서 능력을 인정 받았다.

2008년 이경미 감독의 <미쓰 홍당무>에 출연하며 배우로 돌아왔던 방은진 감독은 2012년 류승범과 이요원, 조진웅 주연의 < 용의자X >를 연출했고 2013년에는 전도연과 고수를 캐스팅해 세 번째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을 선보였다. <집으로 가는 길>은 무거운 주제와 <변호인> <용의자> 같은 강한 상대와 맞붙은 불리함 속에도 전국 185만 관객을 동원하며 선전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방은진 감독은 2017년 박성웅과 오승훈 주연의 퀴어 영화 <메소드>를 연출했다. <메소드>는 동성애를 소재로 삼은 영화의 특성상 관객들로부터 호불호가 크게 갈렸고 포털사이트에서 별점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2019년부터 평창국제평화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역임하고 있는 방은진 감독은 <사랑의 불시착>에서 윤세리(손예진 분)의 어머니 한정연을 연기했고 2021년에는 이준익 감독의 <자산어보>에서 변요한의 어머니 역으로 특별 출연했다.

타국에서 가방 운반 부탁을 피해야 하는 이유
 
 송정연은 교도소를 나온 후에도 귀국하지 못하고 프랑스 법원에서 지정한 허름한 숙소에서 생활했다.
ⓒ CJ ENM
<집으로 가는 길>은 지난 2004년 코카인이 든 가방을 운반하다 파리 오를리 공항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돼 프랑스령 교도소에 2년간 복역했던 한국인 여성의 실화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이 이야기는 지난 2006년 KBS의 <추적 60분>에서 다루면서 세상에 알려졌고 방은진 감독이 이를 각색해 영화로 만들었다. 물론 대한민국 정부의 재외국민에 대한 보호미흡은 논란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영화 속 이야기를 100% 사실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집으로 가는 길>은 마약을 운반하다 잡혀 프랑스 교도소로 들어간 아내 송정연(전도연 분)과 그런 아내를 구하기 위해 한국에서 불철주야 뛰어 다니는 남편 김종배(고수 분)의 시점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물론 관객들은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타국의 교도소에서 비참한 삶을 이어가는 송정연의 이야기에 더욱 집중이 될 수밖에 없고 최고의 배우 전도연은 이역만리 타국에서 절망에 빠진 송정연의 감정을 잘 표현했다.

전도연이라는 배우의 필모그라피는 그녀에게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긴 <밀양> 이전과 이후로 나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전도연은 <밀양> 이후 '칸의 여왕'이라는 수식어가 생기면서 무겁고 진지한 캐릭터만 들어왔다고 한다. <집으로 가는 길> 역시 전도연이 한창 '칸의 여왕'이라는 무게에 눌려 있을 때 찍은 영화인데 전도연은 이런 부담을 극복하고 <집으로 가는 길>을 통해 올해의 영화상과 맥스무비 최고의 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조각 같이 잘 생긴 남자배우를 이야기할 때 원빈과 함께 언제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배우 고수는 <집으로 가는 길>에서 프랑스 교도소에 갇힌 아내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남편을 연기했다. 고수는 <집으로 가는 길>에서 잘 생긴 얼굴이 지저분해 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는 열연을 펼쳤지만 지저분해진 얼굴조차 고수의 미모를 가리진 못했다. 고수는 <집으로 가는 길>을 통해 황금촬영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집으로 가는 길>의 송정연처럼 해외공항에서 가방을 운반하다가 교도소까지 간 것이 바보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이 같은 사례는 심심찮게 일어나곤 한다. 특히 저예산으로 여행을 하는 젊은 배낭 여행객을 상대로 해외의 공항에서 가까운 거리만 가방을 운반해주면 거액을 준다고 유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따라서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해외여행 시 짐을 들어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이 상책이다.

유럽영화제 여우주연상이 전도연 친구?
 
 폴란드 배우 요안나 쿨릭이 연기한 얄카는 교도소 내 송정연의 유일한 친구였다.
ⓒ CJ ENM
 
물론 영화적 과장이 있었지만 <집으로 가는 길>에서는 자국민을 보호해야 할 대사관 직원들이 오히려 송정연의 재판을 방해한다.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에서 두 번째 용의자 조병순을 연기했던 류태호는 <집으로 가는 길>에서 프랑스 내 한국대사관의 영사로 출연했다. 영사는 자신의 업무보다 높은 사람에게 잘 보이는 것에만 신경 쓰는 인물로 자신이 속한 지역의 교민 거주 여부보다 VIP에게 접대할 식당의 미슐랭 별 숫자에 더 집착한다.

지난 2020년 음주운전에 연루된 이후 한동안 활동이 뜸했던 배성우는 <집으로 가는 길>에서 영사관 직원 주과장 역을 맡았다. 처음에는 영사에게 송정연의 불구속 재판을 건의하기도 하지만 한 차례 거절당한 후에는 영사와 마찬가지로 송정연 사건에 철저히 무관심했다. 특히 송정연이 마약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단순운반만 했다는 진술이 담긴 한국에서의 재판서류를 프랑스 법원에 보내지 않고 방치한 인물이 바로 주과장이다.

2022년에 방송된 디즈니플러스드라마 <카지노>에서 황당한 결말로 드라마가 막을 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양정팔 역의 이동휘는 <집으로 가는 길>에서 PC방을 운영하는 김종배의 친한 후배 광식을 연기했다. 광식은 종배의 부탁에 따라 포털사이트에 '송정연을 돕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카페를 개설했고 PC방의 학생 손님들에게 댓글알바를 시키며 송정연 사건을 세상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는 2018년 칸 영화제 감독상에 빛나는 영화 <콜드 워>의 주인공 요안나 쿨릭이 교도소 내 송정연의 유일한 친구 얄카 역으로 출연했다. 교도관 헬보이(코린 마시에로 분)에게 험한 꼴을 당하던 얄카는 재소자들에게 집단구타를 당할 때 땅에 떨어진 엄마의 사진이 담긴 목걸이를 챙겨준 송정연과 친구가 된다. 폴란드 출신 배우 요안나 쿨릭은 2018년 <콜드 워>로 유럽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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