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일·권리·인권 찾는 과정 도울 것”

김동규 2024. 1. 17.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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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고등교육 과정을 마친 학생은 책상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뇌병변 장애를 앓고 있는 그에게 학교를 떠난다는 건 홀로 세상을 헤쳐가야 한다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그렇게 그늘진 곳에서 아파하고 있는 수많은 장애인의 고통이 그 누구보다 절절하게 다가왔다"며 "자신의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본인들의 권리와 인권을 찾아가는 과정을 알게 됐고 그들을 돕고 싶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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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 이웃 돕는 단체 이레미션
세운 뇌병변 장애 김광헌 대표
취약계층에 물품·생활비 지원
중증장애 청년 문화증진사업도


2008년 고등교육 과정을 마친 학생은 책상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뇌병변 장애를 앓고 있는 그에게 학교를 떠난다는 건 홀로 세상을 헤쳐가야 한다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크리스천이었던 그는 가장 먼저 하나님을 찾지 못했다. 그보다는 ‘이렇게 될 거면서 공부를 왜 열심히 했지’란 후회가 먼저 밀려들었다.

“하나님이 내 길을 인도하신다는 믿음이 있어도 눈앞이 너무나 캄캄했어요. 말을 한마디라도 내뱉을 수만 있다면 그나마 사회생활을 수월하게 할 수가 있었을 텐데 장애가 이렇다 보니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답답한 마음이 먼저 들었죠.” 김광헌(35·사진) 이레미션 대표가 당시 심정을 이같이 회고했다.

선천성 뇌병변 장애로 거동은 물론 말조차 할 수 없는 김 대표는 머리에 착용한 막대기 ‘헤드 포인터’ 하나만을 의지해 서면으로 작성한 자신의 사역 이야기를 16일 국민일보에 보내왔다.

2009년 김 대표는 길거리에서 휴지를 판매하는 지체장애 소년의 이야기를 어머니로부터 들었다. 들어가는 가게마다 문전박대와 모진 욕설을 들었던 소년이 불쌍해 주머니에 있던 돈을 모두 건넸다는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서 가슴 한켠이 아팠다고 했다.

김 대표는 “그렇게 그늘진 곳에서 아파하고 있는 수많은 장애인의 고통이 그 누구보다 절절하게 다가왔다”며 “자신의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본인들의 권리와 인권을 찾아가는 과정을 알게 됐고 그들을 돕고 싶었다”고 전했다. 그렇게 김 대표는 사역단체 이레미션의 첫 걸음을 뗐다.

이레미션은 소외 이웃들에게 물품을 지원해주는 사업을 비롯해 생활이 어렵지만 정부지원대상 요건을 갖추지 못한 이들에게 생활비 지원 사업, 최중증장애 청년들을 위한 장애청년문화증진사업 등을 펼치고 있다.

동역자가 따로 없는 그는 각종 홍보물과 홈페이지 디자인을 파워포인트와 그림판을 이용해 홀로 제작하고 있다. 헤드포인터로 고개를 움직여가며 목과 허리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처럼 아픈 이들을 떠올리면서 사역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15년이 흘렀다.

김 대표는 “장애인들은 섬김만 받고 주는 기회가 없으니 몸은 교회에 와 있어도 마음은 자기만의 공간과 세계에 머물러 있다. 하나님께 ‘올인’하지 못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갖지 않으니 우울해지기 십상”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한국교회가 이들을 보듬고 그늘에서 울고 있는 이들을 위해 예수님의 이름으로 자유케 해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동규 기자 k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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