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이도 ‘극악’ 건설사 워크아웃, 과거 사례 보니 [스토리텔링경제]

신재희 2024. 1. 14.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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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당국 ‘역할론’ 두고도 의견 분분


태영건설의 기업재무구조개선(워크아웃) 절차가 채권단 96.1% 동의로 지난 11일 개시됐다. 우여곡절 끝에 첫발을 떼며 일단 한고비를 넘겼지만 이제부터가 워크아웃의 ‘진짜 시작’이라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당장 자산부채 실사 과정에서 추가로 발견될 우발 채무 규모나 태영건설이 참여 중인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 60곳 처리 하나하나가 복병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태영건설이 약속한 자구 계획을 제대로 이행할지, 실사 기간 중 필요한 운영 자금 조달이 제대로 이뤄질지도 변수다.

과거 진행된 건설사 워크아웃 사례를 보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사례가 많지 않다. 대부분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법정관리로 들어가거나 장기간 워크아웃을 거친 뒤에도 정상화에 실패했다.

부동산 PF 사업을 끼고 있는 건설사 구조조정은 대우조선해양·한진해운 등 국가기간산업보다 구조가 한층 복잡하다는 특징이 있다. 특히 이번 태영건설 워크아웃은 국내 금융시장 역사상 이해관계가 가장 복잡한 워크아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채권단·PF대주단 갈등 조정이 관건

건설사 워크아웃 돌입은 2013년 쌍용건설 건 이후 10년 만이다. 건설사 워크아웃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1999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8~2013년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한국 경제에서 대표적인 부동산 불경기로 꼽히는 시기다.

건설사는 대출 의존도가 높아 다른 업종에 비해 경기에 유독 취약한 업종으로 분류된다. 국내 건설사들은 건축물을 지을 때 사업비의 일부만 부담하고 나머지는 대출을 받아 충당한 뒤 나중에 분양 수익으로 대출금을 갚는다. 이같은 사업 구조 탓에 어느 한 곳에서 자금이 묶이면 바로 유동성 악화로 번질 위험을 늘 안고 있다.

과거 건설사 워크아웃의 말로는 대부분 좋지 않았다. 짧게는 2년에서 길게는 10년까지 워크아웃 기간을 거쳤는데, 알짜 사업 매각과 직원 감원 등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을 했음에도 법정관리에 들어가거나 회사 정상화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동아그룹·월드건설·풍림산업·경남기업·우림건설·벽산건설·중앙건설·금호산업 등이 모두 비슷한 사례다.

건설사 워크아웃이 어려움을 겪은 주된 이유는 건설사에 직접 대출을 한 주채권은행과 PF 사업장에 대출을 한 대주단 사이 갈등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신규 유동성 공급이 필요할 때 주채권은행과 PF 대주단이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는 과정에서 제때 자금을 지원받지 못한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부동산 경기가 단기간에 나아지지 않으면서 PF 시장에 유동성이 부족한 상황이 지속됐던 점도 주요 원인이다.

금융 당국과 KDB산업은행은 이번 태영건설 워크아웃 과정에서 ‘워크아웃 건설사 MOU 지침’(2012년 제정·2014년 개정)을 처음 적용하기로 했다. 해당 지침은 워크아웃 개시까지 발생한 부족 자금과 워크아웃 이후 PF 사업장 이외의 사유로 발생한 부족 자금은 주채권단, PF 사업장 처리 방안에 따른 필요 자금은 대주단이 각각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자금 부족 원인을 딱 잘라 구분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워크아웃 제도 자체가 법적 구속력이 없어 제대로 진행될지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이수건설과 동문건설은 몇 안 되는 건설사 워크아웃 모범사례로 꼽힌다. 이수건설은 모그룹 이수화학의 유동성 지원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동문건설은 뼈를 깎는 자구계획과 사주의 대규모 사재 출연이 워크아웃 과정에서 빛을 발했다는 평가다.

금융 당국 역할론에 의견 분분

기업구조조정촉진법 상 워크아웃 절차는 채권단에 의해 진행된다. 하지만 시장의 눈은 여전히 금융 당국에 쏠려 있다. 이번 태영건설 워크아웃 과정에서 금융 당국은 ‘우리는 거들 뿐’이라고 거듭 강조했지만 워크아웃이 정부 입김에서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이뤄진다고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태영건설이 채권단 요구 수용을 밝힌 것도 대통령실·국무총리실·금융 당국이 전방위적으로 압박한 뒤였다.

워크아웃 제도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시장 원리대로 회생이 어려운 기업은 자연적으로 도태되게 놔두면 되는데 인위적으로 기업 하나를 살리기 위해 비용을 투입하는 게 과연 맞느냐는 지적이다. 소위 ‘관치 금융’이 시장 질서를 왜곡할 수 있다는 비판도 꾸준히 제기된다. 워크아웃의 근거가 되는 기촉법 일몰 시기가 다가올 때마다 제도 자체의 효용성 논란도 반복해서 벌어진다.

정부는 태영건설 등 대규모 기업 파산 하나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일반 서민에게 미칠 파장을 무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태영건설이 도산할 경우 이 기업과 얽혀 있는 수많은 하청업체 소속 직원들, 분양계약자들에게 미칠 영향이 지대하다는 것이다. 태영건설이 공사 중인 주택사업장 중 분양계약자가 있는 사업장은 전국 22곳, 가구 수는 1만9869가구에 달한다. 부동산 PF 발 경제위기 등 건설사 하나의 도산이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될 가능성도 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최근 상황을 보면 대마불사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다만 무작정 정부가 나서서 기업을 살려주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원칙을 명확히 보여줘야 한다. 충분한 자구 노력과 사재 출연 등 대주주의 분명한 희생이 전제돼야 한다는 선례를 분명히 남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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